명랑과 은둔이란 어울리지 않은 단어의 절묘한 조합

캐럴라인 냅_명랑한 은둔자

by 수수



현재의 나와 비슷한 나이 즈음이었던 캐럴라인 냅의 글이 <명랑한 은둔자>에게는 담겨 있다. 삼십 대 초반부터 마흔까지의 (그는 마흔 둘에 사망했다) 글도 있는데, 아무래도 삼십 대 중반 즈음의 글 그리고 책 제목과 같은 ‘명랑한 은둔자’ 등 초반 파트로 구성된 글이 공감이 많이 되기도 했고, 공감보다 뭐랄까 좀 계속 생각하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꽤 마음에 들었다.
생각했던 것들은 나의 외향의 역사에 대해서. 나의 수줍음과 쾌활의 공존에 대해서. 뭐, 그래서 내 외향의 발자취는 이렇다 저렇다 정리하진 못했지만, 나와 꽤 다르다고 생각했던 은둔자가 사실 정말 나와 다른가, 나는 그렇지 않는가, 생각하며 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조합의 “명랑”과 “은둔”에 대해 절묘하게 공감했던 것이다.
한 줌의 관계만이 아닌 확장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거나 자신을 몰아세웠던 냅의 삶의 궤적을 보며 오히려 요즘 나는 관계가 좀 더 간결해도 너무 좋은 걸? 이란 생각을 했다. 이 한 줌이지만, 밀도 높은 관계에 대해 괜찮다 생각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 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지점의 현재 삶을 생각하면서 냅의 과거와 그리고 현재를 (물론 이는 책에서의 현재이지, 과거이지만) 바라보았다. 하긴 냅처럼?? 그토록?? 혼자이지도 않고/못하는 나이긴 하지만 ;;
어쩌면 아마 냅은 그런 시간을 살아왔기에 혼자로서도 충분하고 강인했지만, 죽음을 앞두고 파트너와의 결혼을 진행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좀 의아했는데, 그의 글을 읽어가면서 어쩌면 혼자로서도 충분하고 오히려 누군가와 있을 때 여러 강박이 나오지만, 그가 그것을 뛰어 넘어 변화하는 삶으로서 결혼이라는 것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실제로 그가 어떤 마음에서 그랬는지는 너무 다른 이유일 수 있지만)
그리고 그는 이 책전에는 술에 중독됐던 과거의 거식증이라고 하는 외모에 대한 강박과 관련한 중독에 대한 경험이 있고, 그것에 대해 책을 냈던 사람이다. 이 책은 그의 사후에 나온 책인데, 이 책에도 중독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정리되어 있다. 그가 지극히 혼자여도 괜찮았던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타인들과 있을 때의 불편함과 불쾌함이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셨다는 것, 자신의 몸을 좋아하지 않으며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다는 것. 중독으로 인해 쉽게 얻을 수 있는 안정감이나 안도감이 사실 그때뿐이거나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냅은 자신의 경험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근육을 기르고, 마음을 자라나게 하기 위해 술을 끊고 먹고 토하는 행위, 몸무게에 안절부절 하는 행위를 그만 둔, 은둔자이지만 명랑한 냅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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