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웬델_거부당한 몸
‘몸으로부터의 소외를 줄이는 것, 몸을 더 잘 인식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고통받는 내 몸에 대해 인식하는 것을 토대로 이루어져 나갈 수 있음에 대해 인식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의제들을 이야기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이 사회에 존재했던, 지금도 여전히 너무나 강고한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장애를 포함하여 포괄에 대해 논의하면서도 여전히 중점이 되지 못한 것이 ‘아픈 몸’이라는 것이라는 데에 최근 많이 생각한다. 중점이 되지 못했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다 보니 ‘아픈 몸’에 대해 길게 생각이 뻗어가지 못했다. 그건 너무 두려운 문제로만 인식되곤 해서. 그러나 지금의 나나 당신이나 나이 들어가고, 어딘가 통증이 일고, 몸의 괴로움은 더 오면 왔지, 없을 일은 아닐 것이니 이것은 얼마나 누구에게나-의 보통의 평범한 삶의 모습인가. 지금처럼 내 몸에 일고 있는 통증이나 속도와 과정에 대해 인식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꽤 강한 관념 속에서 헤매곤 했다. 어떤 것을 소화하지 못하거나 탈이 났을 때 오는 부끄러움과 자괴감, 절망이나 수치심에 대해 그것을 뚫고 서기까지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고, 이는 여전히 내게 과제처럼 남아 있기도 하다. 또한, 내가 바라는 삶의 속도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속도와도, 내 몸의 소화하고 행위 하는 것과도 조금씩 다르다. 이 부합하지 않는 것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해, 거부당한 몸’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내 마음 어딘가 존재했을 장애에 대한 타자성과 장애와 질병에 대한 유연한 경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너무 피로하고, 잔잔하게 이는 두통을 감지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앞으로 얼마나 더 몸에 대해 인식하고, 파고들 것이 많을지에 대해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