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베를린에서
넷플릭스 제작 4부작 미니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
‘그리고 베를린에서’ 드라마는 브루클린 하시디즘 공동체에서 벗어난 여성, 에스티의 이야기이다. 베를린에서 촬영을 해서 뉴욕의 공동체 배경은 모두 실내와 세트 촬영으로 진행된 이 드라마는 다른 공동체와는 조금 다른, 학살과 전쟁 이후 트라우마를 기반으로 정체성을 갖춰간 폐쇄적인 유대인 공동체로 나온다. 그렇기에 내부에서만 결혼을 이어가고, 결혼한 여성은 출산을 이어가는 것이 마땅한 규칙을 가지고 있고, 여성이기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노래도 부를 수 없고, 성관계도 정해진 규칙에 따라 남성을 왕처럼 떠받쳐야 한다. 정략결혼 삶을 벗어나 베를린으로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온 에스티. 신의 이름으로 너무 많은 것을 규칙으로 요구하는 공동체를 떠나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자유를 찾아 베를린으로 온 에스티는 음악에 매료된다. 피아노를 배우는 것도 비밀이어야 했던 에스티가 음악을 듣고 보이는 반응이나 마지막 그녀의 노래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슬프고 아름답다.
아무도 이해 못하는 언어(이디시어)를 사용하고, 아무도 이해 못할 관습과 행동들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몰입되고 와 닿는 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드라마의 메이킹 필름을 보면 배우들과 스탭들이 실제로 유대인 공동체 출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디시어로 말하는 영상 매체에 놀라워했고, 큰 의미를 가졌다. 그들은 하시디즘 공동체를 추상적 혹은 그냥 상상한대로 보여 지지 않게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하시디즘 공동체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이 드라마가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여성은 출산하는 기계가 아니며, 여성이란 이유로 그의 행복과 그가 나아갈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
아, 물론 에스티의 남편인 얀키에게도 마음이 가긴 했다. 전통적인 공동체에서 나고 자라 그 안에서만 배운 것을 진리로 여기고 섬기며 사는 얀키가 엄마와 가족의 분부대로 에스티에게 했던 행동들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며 상징인 옆머리를 가위로 잘라 에스티에게 너는 이상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을 뿐이고, 나 역시 변화할게- 라며 에스티와 다시 시작해보자고 하는데.. 그런 그를 보며 다른 공동체 사람들과 다를 가능성에 맴찢이었으나, 에스티는 너무 늦었다고 자신의 길로 들어선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행복, 아니 이제 행복을 만들어갈 에스티의 삶. 누군가일 그 에스티를 절로 응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