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책, 글쓰기
- 고개를 들어
열일곱 살 추석 다음 날, 엄마는 집을 나갔다. 후에 알고 보니 시작부터 좋았을 리 없었던 부모의 헤어짐이었다. 틀어질 대로 사이가 엇나간 부모의 관계를 폭력인지도 모른 채 어설프게 돌리려 했던 아빠의 추석 여행은 역시나 엉망이 되었고, 엄마는 다음 날부터 볼 수 없었다. 별다른 말을 굳이 듣지 않아도 행복해보이지 않았던 둘이었기에 엄마가 아빠와 헤어지기를 바랐지만, 정작 엄마가 그렇게 사라지고 나니 너무 화가 나서 근 1년을 엄마랑 연락을 끊은 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갔다.
나는 엄마가 사라지고 하루도 빠짐없이 아빠랑 싸웠다. 시간이 잔뜩 흘러 생각해도 변함없는 기억인 걸 보니 정말 징글징글하게도 싸웠던 것 같다. 그 지긋지긋함을 견디지 못해 동생은 엄마에게 제발 데려가 달라고 호소했다. 나와 아빠는 남겨지고 엄마와 동생은 떠났다. 약 1년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아빠와 이혼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된 엄마는 나를 만나러 학교에 왔고, 그때 처음으로 고2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다시 사라지기 전에 엄마는 내게 “고개 들고 당당히 살아.”라는 말을 남겼다.
보고 싶지 않았던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시큰둥하게 엄마와 헤어지고 들어선 교실은 꽤나 무서워하던 수학 시간이었는데도, 나는 책상에 고개를 파묻었다. 소리 없이 숨죽여 울었고, 다행히 반 친구들은 모른 체 넘어간 것 같았지만 그 호랑이 같던 수학 선생님은 알면서도, 아니 알았기 때문에 그런 나를 그냥 둔 것 같다. 혼나지도 않고, 어떤 한 소리도 듣지 않은 채 그럴 수 있었던 걸 보면.
그리고 또 한 사람이 그런 나를 알았다. 밀린 눈물을 쏟아내듯 한참을 울고 고개를 드니 쪽지 하나가 있었다. 친구가 준 편지에는 “네가 흘린 콧물 다 봤어.”라는 문장과 함께 나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꽤 오랫동안 그 편지와 그 시간과 그 경험은 나를 웃게 했고, 나를 울게 했다. 민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풋- 하고 웃을 수 있게, 그러나 곁에 있음을 그만의 방식으로 알려준 진정(친구의 애칭) 때문에 나는 진정, 행복할 수 있었다.
인생은 온통 부조리하고, 살아가는 건 매일이 힘들다는 게 디폴트값인 사람이지만, 나는 어떤 한 시절이, 누군가와 나눈 경험이, 건네받은 목소리가 사람을 살아가게 하고 버티게 한다는 것 역시 의심치 않고 믿는다. (오랜만에 떠오른 진정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잘 살고 있는지 연락이나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