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공간

어쩌다 책, 글쓰기

by 수수

- 나라는 공간

다양하게 하고 있는 책읽기 모임 중 하나는 그림책 책방인 카페 하고에서 하고 있는 모임이다. 하고의 화장실은 어쩐지 누군가 똑똑 노크하지 않으면 좀 더 머무르고 싶은 공간인데, 그곳에는 책상과 의자가 예쁘게 세팅되어 있다. 그 위에는 당장이라도 글을 쓸 수 있을 것처럼 책과 노트 펜 등이 놓여 있는데, 혹시 무언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곳의 화장실은 역설적이게도 ‘자기만의 방’으로 존재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들만이 가져온 권력과 부와 명성에 문제제기를 하며, 여성이 자유로울 수 있는 두 가지 요소를 이야기했다. 하나는 정기적인 수입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만의 방이다. 화장실에 놓인 책상과 의자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이상한 조합이지만, 너무 이해가 가고 조금 서러우면서도 비밀 공간 같아 신이 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내게 자기만의 방은 무엇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살고 있는 느집(우리 집은 친구가 붙여준 애칭을 가지고 있다)의 식탁. 얼마 전에 산 식탁세트는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 최애 공간이 되었다. 탄탄한 나무 테이블이 있는 공간은 언제나 내 마음을 빼앗는 곳이었다. ‘아, 이런 테이블을 두고 글도 쓰고 친구들과 모임도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꿈이 펼쳐지는 건 테이블 하나로도 가능하다. 같이 살고 있는 하우스메이트와 내가 분리될 수 있는 각자의 방이 있음에도 나는 언제나 주방의 식탁에서 무언가를 하거나, 거실에서 생활한다. 그런 나와 자기만의 방을 생각하면서 ‘나의 방’의 공개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것은 안정적이고 안전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공간은 언제나 조금은 열려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부터 경험한 기숙사 생활, 어릴 적 친구들과 살았던 셰어하우스, 대구에서 경험한 주거 공동체 등 나의 삶은 오랜 시간 누군가와 함께였다. 한 번도 나만의 방이란 것이 없이 살아왔는데도 혼자만 점유하는 공간의 꿈을 꾸지 않았던 것 같다.

자기만의 방을 생각하면서 처음 예상과 달리 여러 가지로 뻗어나가서 글은 좀 잡을 수 없어지지만 일단 계속 써보기로 한다. 안정적인 공간을 늘 꿈꾸면서도 독점 공간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건 언젠가부터 나에게 새로운 공간 감각이 생겨서인 듯하다. 음, 나는 언젠가부터 나를 하나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미 하나의 공간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나로서 있을 수 있고, 나로서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 나라는 사람을 하나의 장소성으로 이해하다보면 내가 어디에 있건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으며 원하는 세계에 빠져들 수 있고, 펜이든 휴대전화든 노트북이든 글쓰기를 할 수 있고, 친구들과 보내는 다정한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

이런 인식은 왜 생겨났을까. 오랜 시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안정적이고 안전한 공간이란 내게 완료된 옛날 옛적의 꿈이 아니고 늘 현재진행형의 과정이어서 그런 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것이 나 혼자 있을 수 있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누구이든 혹은 어디서든 안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의 방을 열어두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나의 글쓰기와도 닮아있다. 일기장에 일기를 쓰지 않는 나는, 쑥스러워 목소리가 덜덜 떨려 와도 그 부족한 글을 내보이길 원하니까. 언제나 세상과 마주볼 수 있기를 바라고 조응하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니까 말이다. 글쓰기를 위한 나만의 방도, 도구도 모두 나는 나. 나라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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