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책, 글쓰기
-실패한 사람들
사무실 앞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였다. 어떤 남성 노인이 걸어오다 종량제 쓰레기봉투 옆에 버려진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든 녹다만 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그때 나는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주변에서 가장 저렴한 5,000원짜리 밥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요가를 하고 기진맥진하며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젊은 남성이, 어쩌면 내 나이 혹은 더 나이가 적은 남성이 버려진 봉투들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우걱우걱 먹고 있었다. 그도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시던 남성 노인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 시선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얼마 전, 김혜진 작가의 <중앙역>이란 소설을 읽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거리 생활을 하는 젊은 남성과 그가 사랑하는 거리의 나이 든 여성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거리의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의 사랑은 오죽할까. 그 소설을 읽고의 나에겐 요즘 거리의 무언가, 거리의 누군가들이 자꾸 보인다. 거리에서 봉투를 뒤지며 허겁지겁 무언가를 먹는 사람들은 너무 많다는 걸 요즘 발견하고 있다. 그렇다. 너무 많이.
그 앞에서 마음이 망연자실해진다. 나는 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생각 자체가 없이 살아왔겠지만, 그에게서 낯익은 사람들을 떠올리고, 나를 만난다.
기차 안에서 300억이 투자된다는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 광고를 봤다. 상상도 되지 않는 입이 턱 벌어지는 비용. 하기야 그것의 가능은 우리가 소비해서이겠지. 광고를 보며 나는 기차역에서 본 사람들, 그러니까 그 바깥에 아무렇게나 앉고 눕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과 가난한 나, 가난한 나의 부모에 대해 생각했고, 가난에 대해 생각했다.
실패한 사람들. 우리는 한결같은 실패한 사람들. 그러나 그 실패한 사람들이 단 하나 실패하지 않고 오늘도 해내고 있는 것은 오늘도 살아내는 것. 희망 따윈 진즉에 버린 판타지가 되었대도 꾸역꾸역 고된 이 하루의 오늘을 살아내는 것.
누군가의 삶도 함부로 내팽겨질 수 없다는 것을 놓지 않고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