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책, 글쓰기
- 명자야, 우리는
지난 금요일, 대구여성의전화 주최로 최현숙 선생님의 <보이지 않는 노년 여성의 성과 삶>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들었다. 진보정당에서 활동하셨던 선생님은 구술 생애 책들을 쓰고 계신다. 세상에 드러나 있는 이야기들은 권력을 가진 이들의 관점이거나 그들이거나. 존재했으나 보이지 않게 가려지고 드러나지 않았던, 다양하고 무수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구술 생애로 작업하고 있다. 그의 책들 중 두 권의 책에는 그의 엄마인 노년 여성 이야기를 담겨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중년에서 점차 노년의 여성으로 가고 있는 명자 생각을 했다.
가부장의 허울만 있지, 꼬박꼬박 월급을 가져다주는 남편이 되지 못했던 아빠를 대신에 생계 책임의 전면에 나서 실제로 가장이 되어야 했던 명자. 가정 폭력의 피해경험자이자 그가 가해 행위자이기도 했을 명자. 손도 크고 사람들에게 음식 해 먹이기를 좋아할 만큼 관계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었던 명자. 그 열정을 대다수를 돈 버는데 썼지만, 정작 돈은 벌지 못하고 차곡차곡 질병을 번 명자.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다는 책제목처럼 엄마는 어떻게든 나를 먹여 살렸다. 엄마가 사라지자, 아빠가 내주지 못한 학교 분담금 등은 증거가 되어 내게 남았다. 가난한 엄마가 얼마나 나를 악착같이 먹여 살렸는데, 그런데도 나는 왜 무책임한 아빠보다 엄마를 더 미워했던 걸까.
최현숙 선생님은 고통과 낙인에 대해서 청자가 어떻게/얼마나 ‘나’의 입장으로 듣는가에 따라 화자도 전략적으로 구사한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가 엄마가 툭 던진 폭력의 경험이 생각이 났다. 어쩌면 자신도 준비되지 않은 채, 인식하지 못하고 나왔을 그 이야기는 두고두고 엄마에게 내가, 적어도 그 순간의 내가 어떤 청자였을까의 질문과 생각을 주었기에 그 말을 듣고 엄마 생각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딸이라는 복합적인 감정과 경험들이 오갔고, 오가고, 오갈 관계에서 나는 어떤 화자로 그에게 목소리를 건네고, 어떤 청자로 그의 이야기를 들을까. 앞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관계 맺기로 서로의 삶에 자국을 남길 수 있을까.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삶이 조각조각 나에게 보이는 것은 진행형이니까. 이건 계속될, 그러나 여전히 어려운 나의 과제, 고민,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