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르 유서

구묘진_몽마르트르 유서

by 수수

요즘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정말 곳곳에서 눈물이 더 많아졌다.


구묘진의 <몽마르트르 유서>를 읽었다. <악어노트> 이후 두 번째 그의 소설이었다. 논바이너리 레즈비언으로 퀴어 문학을 남긴 구묘진이 <몽마르트르 유서>는 자신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 섹슈얼리티, 몸에 대한 자각과 사랑한/사랑해 온 여성들과의 관계에 대해 절절하고 애타는 편지이자, 소설이자, 저항이기도 한 목소리라는 생각을 했다. 스물여섯, 살아가기를 멈춘 구묘진이 남긴 <몽마르트르 유서>는 이미 영원하고 완벽한 사랑을 꿈꾸지 않는다 하나, 믿었던 것들이 실패하여 이제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것이지, 애초부터 믿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던 이의 뜨겁고 차갑고 날카로운 고통과 놓지 못하는 사랑의 이야기이다.


처음 읽었던 그의 소설에서는 서로가 사랑을 알았지만, 그 가능성을 허락할 수 없어 스스로를 가두는 인물이 나온다. 이번 소설에서는 비록 이별했으나, 서로 열렬하게 사랑했던 인물이 나온다.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상반되는 것 같지만, 제도권 바깥으로 미끄러져 ‘비정성’이라 배제당한 소수자의 정치사회적 역사를 생각하게 한다. ‘정상’이라고 유지해온 것들은 과연 무엇의 정답이고, 정상이란 것일까. 그렇게 우기고 구기며 가져온 것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었을까. 자신의 존재를 붙들고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었을까. 성소수자가 존재의 이유로 부당하게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사회의 울타리에 합당한 구성원으로 인식되지 못할 때, 과연 유쾌하게만 살아갈 수 있을까. 조에의 말. “저마다의 인간은 모두 이해받아야 한다”는 말에 우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슬픔의 시간에 놓일지라도 내일의 시간에도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90년대 이 소설을 남긴 구묘진은 유서라 이름 붙였지만, 그의 소설이 가진 힘이란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미끄러진 일상을 견디며 지나와 대만의 동성결혼 합법화 그리고 법제화 허용 첫 날에 혼인신고를 한 천쉐(‘같이 산 지 십 년’ 작가)가 있다는 생각을 어쩐지 놓지 않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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