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이 연필이기를 그칠 때.

김지승_아무튼, 연필

by 수수

‘아무튼, 연필’은 연필을 좋아하게 된 이가 그 좋아함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는 책이다. 그리고 이 책 어디에도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없지만, 이 책은 페미니스트가 쓴 글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는데, 북토크에 다녀오니 저자가 페미니스트로 여성적 글쓰기를 혼자 그리고 타인들과 계속 하고 있는 이였다.(그렇다 내가 몰랐을 뿐. 그는 아주 찐 케이 장녀 페미니스트였다) 그러다 보니 매우 흥미로운 읽기의 시간이 되었는데, 연필을 좋아하게 되어 연필의 역사를 톺아보듯 사람의 삶을 연결 지어 바라보는 시선에 연필은 잠시 뒤로 빠져 있는 것 같다가, 또 너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여 아니다 이것은 강력하게 연필 책인 것이다! 싶은 것이 아무튼, 연필이다 싶어지는 시간이었다.


예쁘다, 로 시작한 연필에서 나와서 나 그리고 나 아닌 사람들로 이어지는 세계를 연필을 매개로 쓴 글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연필에서 타자로, 타자에서 다시 연필로 즉, 쓰기로. 그는 이 책을 쓰고 다시 보니 그동안 인생에서 자기를 키우고 비추고 자라게 했던 타자들에 대해 쓰고 있던 걸 발견했다고 했다. 공적 기입란에 연필로 쓰지 마세요, 가 갖는 연필의 권위 없음과 잘 지워지는 것이 작가에게는 여성의 삶, 소수자의 삶과 이어졌다. 그렇게 연필의 속성으로 하여금 그가 이어지고 바라본 것들이 있었다. 지워진 약자의 목소리, 위태로운 여성의 자리,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 세계를 잇는 아이, 죽은 사람들. 그것은 내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들이었지만, 나는 한 번도 연필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재밌고, 중요한 지점이었다.


북토크에서 작가는 모두가 단단해지는 세계가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괜찮은은 세계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했고, 연필을 쓰면서 그가 배운 것이라고 했다. 결핍이 있어도 괜찮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픈 몸으로 그가 세상에서 부딪히며 배운 것이기도 하다. 나는 때때로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단단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가 약하다고 비웃고 말았던 연약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근래의 삶에 ‘아무튼, 연필’ 역시 들어오게 되었다. 김지승 작가는 연필로 쓴 글을 지우면 흑연은 지워지지만 필압은 남아서 그것이 잊혀 지지 않고 타자를 창조하는 글쓰기를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울컥했다.


1부는 연필을 다루면서 작가의 일상에서의 일들과 연필과 연관 짓기라면, 2부는 연필들이란 주제로 여성 작가들을 이야기 한다. 이때의 연필은 사물 그 자체의 연필로 보다는 쓰기적 행위이다. 연필처럼 잘 부서지고 지워지면서도 살아남은 여성들의 쓰기. 연필 덕후답게 사물로서의 연필도 물로 좋아하고 매력적이라 여기지만, 타자의 자리를 마련하고 타자와 손잡는 쓰기에 주목한 작가의 애정과 시선이 들어있는 쓰기들이겠다. 무엇에 대해 쓰는지 아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야, 라는 심정으로 썼다는 글들이 내게도 그 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와 닿았고, 뭉클했던 시간이었다. (밑줄 긋기와는 다르게 넬리 블라이 이야기가 나에게 매우 인상적으로 남았다)


생각한 것과는 또 너무 다르게 책이 마음에 들었고, 북토크는 더욱 그랬다. 그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김지승 작가는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은 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는 내가 연필 덕후도 아니고, 연필을 매일 쓰지 않지만 그럼에도 연필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에도 충분히 와 닿았다. 그건 바로 ‘연필을 아낀다’를 연필 쓰는 사람의 언어로 번역하면 ‘연필을 즐겁게 자주 쓴다’이다, 라는 말(글)이다. 덕질의 다채로움을 알게 된 놀랍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일단 나도 속기용 연필을 갖고 싶다)

아 추가로 남겨두는 것들.

1. 작가는 사물의 취미에 쓸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어떤 표출이 될 것을 유의했다고 했다. 그것이 그저 돈만이 아니라 누군가와의 역사, 맥락,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돈 쓰는 여유가 취미가 되지 않도록, 이란 말을 했다.

2. 아무튼 시리즈 중에서 이 표지는 좀 특이한 표지였는데, 북토크에서 궁금증이 풀렸다. 글쓰기에 참여하시는 분 중 재판을 하며 싸우는 성폭력 피해 경험자의 그림으로 그에게 아무 그림이나 좋다고 했다고 했고, 그 결과는 이 책을 읽으면 너무 이해하게 되는 코끼리와 다른 요소들이 어울려 이 표지가 짠! 연대의 방식은 여러 가지일 수 있고, 나는 이 연대의 방식을 듣고 기억해두는 연대의 방식들 중 하나로 선택한다.


<아무튼, 연필>, 김지승, 제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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