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은_퀴어 이론 산책하기
마무리 글을 읽으며 어쩐지 눈물이 나서 울었다. 매주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줌 세미나가 있어서 6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지난 한 달 동안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시간이 아니었다면 읽기의 마무리가 꽤나 밀려났을 것이고, 지금 이 책을 읽은 것이 얼마나 좋은 시간이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퀴어 이론에 대해 다룬 책은 늘 어려웠다. 이 책이 안 어려웠다는 건 아니지만, 또 동시에 이 책은 안 어려웠고, 현실 세계의 나와 가장 덜 괴리되고, 감각적으로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지금’도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사건들도 구체적이고 많이 담겨 있어서 더욱. 어떤 글을 읽으면서도 훗, 웃기도 하면서 산책 길 동행을 할 수 있었다. 이분법만이 아닌 그 사이와 사이의 수많은 것들의 이야기로 시원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새로이 알게 되는 무수한 것들이 있었고, 고민되기도 했다. (각주가 하나의 책이 될 정도로 너무 다정...) 무엇보다 계속해보겠다는 마음도. 페미니즘 운동과 트랜스 운동은 분명 연대할 수 있고, 연대해야 하고, 폭력이 아닌 방식으로 서로 대화하며 갈 수 있고, 가야한다.
‘타자의 고통을 가로채지 않는 애도의 윤리’라는 챕터 제목이 너무너무 마음에 남았다. 지난 5.17 집회에서의 신남성연대라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각이 나기도 했다. 무슨 차별이 있느냐며 입을 틀어막기 위해 떠들어대던 사람들의 모습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고, 누군가가 죽임 당할 때 애도하지 않는 떠듦의 모습이. 무언가를 주장하면서도 그것을 반대하거나 주저하는 사람들도 한편으론 이해하지, 라고 했던 마음에 나는 루인의 문장을 넣어두기로 한다. “우리는 이제 이해한다고 말해주기보다 불안과 안전의 권력, 폭력과 배제의 정치를 말해야 한다.”
홍승은의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를 폴리아모리 이야기만이 아니라 안전하고 평등한 삶과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너무 좋아하고 추천하는 것처럼, 이 책 역시 퀴어 이론 산책을 하면서(밑줄 긋기 엄청 많음) ‘수많은 다름과 충돌과 얽힘에 우선순위를 매기지 않고 함께 힘을 모을 방안을(p621)’ 찾아가는 여정으로, 불가능에 대한 요구를 함께 놓치지 않고 만들어가고 외치는 어떤 한 방면으로서도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