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운_올해의 선택
아니 이 소설 배치 순서 무엇...
기준은 절대적일 수 없지만 더 이상 젊지만은 않다는 것,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도 가난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바라보면 심장이 쿵쿵대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고 서로의 자리를 익숙한 모양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 결혼이라 명명해도 이 사회가 아무렇지 않게 아니라고 거부하는 삶에 대해, 함께 했지만 인정받을 수 없는 삶에 대해, 사랑의 모양을 타인의 허락을 구할 필욘 없다지만 이 사회에서 사랑이 아니라고 규정지어져 구석으로 몰리는 것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단편 소설들을 읽으면서 좀 따끔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 ‘사라왓부인모임’이라뇨. 이 소설 읽다 책 접어두고 넷플릭스 켜고 ‘보이프렌즈’ 본 사람? 누구? 나야 나... 어우 뭐야, 유치해. 하면서 사라왓 바라보고 있던 사람? 누구? 나야 나... 아니 이게 뭐람. 아니 그러다 다음에 배치된 소설은 울면서 봤다. 바로 전 소설 읽으면서 간질하고 웃겨가지고 깔깔대고, 나와 친구들이 보낸 코로나 시대의 시작도 생각하면서 읽다가 다음 소설 읽으면서는 읽어가면서 계속 울었다.
살수차. 우리를 불법으로 만든 공권력. 숨을 고르면서도 계속 눈물이 났다. 내 몸은 그날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청와대로 가자고 외치며 나갔던 그날.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그냥 물이 아니었던 그날. 앞 사람들이 경찰의 폭력에 밀리면 뒤 사람들이 다시 앞이 되고, 앞이 되어 나가다 경찰 무리 속으로 넘어져 밟히고, 팔이 꺾이고, 쌍욕을 듣던 그날. 가까운 거리가 경찰에 막혀 빙 둘러 와서 나를 찾던 친구들과 만나 껴안고 펑펑 울던 그날. 이 소설의 집회가 정확히 그 날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세월호 사건을 이야기하며 소리 치고 울고 껴안았던 그 폭력의 현장이 기억났다. 국가는 우리 모두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사람들에게 가해진 것은 살수차와 협박, 연행, 불법이란 낙인이었다.
그리고 그 집회를 우연히 바라보던 이들 중 누군가는 서서히 변화한다. 어제까지 알지 못했던 것들을 국가에서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폭력 속에 놓이게 한다는 것을 만나게 된다. 누군가는 그렇게 생활이 바뀌고, 운동을 시작하기도 한다. 운동과 일상이 어떻게 떼어질 수 있겠는가.
국가는 성소수자는 외면하고, 허락의 존재로 만들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고 말한 대통령 후보는 동성애를 감히 반대할 수 있다는 차별을 이야기했고, 우리는 여전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거리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차별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고 이어져 있다. 그 촘촘한 차별에 우리가 더 해나가야 할 것은 함께 하는 것. 너의 차별과 나의 차별을 구분 짓고 경중을 따지는 것이 아닌 것. 가난하다는 것이 사랑하는 것에 가로막힘이 되고, 피로가 되고, 이성애가 아니란 것이 사랑하는 것에 숨김이 되고, 아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라는 것을 지금 이 세계에서 여전히 소수자라 칭해지는 ‘이상한 사람들’이 외치고 있다. 나는 그 ‘이상’한 사람이 되고, ‘이상한 사람들’ 곁에 서고 싶다(고 쓰면서 서기로 했다, 고 다짐한다).
문학이라는 이름 속에 지금-여기의 사회정치적 소수자와 차별받고 배제된 이들의 이야기가 담기는 것이 쉼 없이 무언가들이 들이닥치는 우리의 일상과 같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이 소설은 역시나 가 닿을 것. 왜냐하면 운동은, 몸에 좋거든요.
울다 웃다 읽은 소설집, <올해의 선택>
<올해의 선택>, 황지운 소설집, 문학과 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