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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 연 Sep 15. 2022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

나는 1명이고, 나 같지 않은 사람은 여러 명인 것은 당연한 건데

"아니, 남들은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직장인데 너는 왜 그러냐."

"하여튼 너는 참 독특해"

"내 주변엔 너 같은 사람이 없어서 신기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려는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사는 건지 얼핏 관찰해보면 온통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거나 나는 하기 어려운 것들 투성이었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가 문제인가 싶어 직장도 지역도 옮겨 다녀 봤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나대로 살고 싶었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처럼 살지 않는 것이 너무 신경 쓰였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데 그들에게 진짜 나를 내보일 때면 늘 나에게 특이하다고 했고, 나는 같은 마음을 공유하지 않는 그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정말이지 특징이라고는 없는 평범하고 조용한 모범생이었다. 예민한 것도 아니었고 까탈을 부리지도 않았다. 부모님께 나를 키울 때 어땠느냐고 여쭈었을 땐, 

 "어릴 때 키우는 거야 수월했지, 커서 속을 썩여서 그렇지" 

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으니.(수월하게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싶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만) 

생각해보면 운이 좋게도 성장하는 동안 인생에 큰 고비랄 것 없이 부모님 울타리 밑에서 안전하게 자랐고,

타고나길 측은지심이 많고 공감을 잘하던 터라 인기가 있고 재미있는 사람까지는 못되어도 어디든 적당히 어울리고 크게 튀지 않는 모범생으로 지내왔다. 자라는 동안 순하고 착하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나는 내가 무던하고 순응적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된 그 순간부터 나는 상당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는 시시각각 낯선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까닭이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일일이 당황스러워했기 때문이다. 법적 성인이라는 지위를 획득한 후 이때껏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풍덩 빠져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경험을 나누어야 했던 탓이었겠지만, 내 딴에는 사춘기를 지내오며 나름대로 자아를 정립해왔다고 생각했었기에 스스로에게 내린 정의에 맞지 않은 나를 마주할 때마다 매번 당혹감을 느꼈다. 사실은 이때부터가 진짜 나를 발견하고 자아를 공고히 해나가는 과정이었던 것임을 몰랐던 탓이었을 것이다. 이맘때부터였을 것이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라는 고민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 늘 남들 같지 못한 나를 탓했다.


사춘기 즈음에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이질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주로 멍하니 길을 걸을 때였는데, 갑자기 나와 같은 시공간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나와 같지 않은 각각의 세상에 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내 앞을 지나가는 행인도, 저기 주택가 골목가 차량 밑에서 나를 빼꼼히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도,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 이 친구도 각자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었다. 두 눈을 감으면 화면이 꺼지듯 캄캄해지는 것처럼 각자의 감각수용기가 받아들인 정보에만 의존해서 뇌에서 형성되는 세상이 각각의 세상일 것이었다. 내 세상은 내 눈에 보이는 고양이었고 고양이의 세상은 그 눈에 담긴 나라는 사람인 것이다. 당시 나는 한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는데, 이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면 무슨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냐는 반응을 마주해야 했기에 아마 잊어버리고 산 것 같다. 

그때의 난 나의 고유성을 알았던 것 같다. 최소한 나는 나의 세상을 산다고, 나를 나로 받아들여줬던 것이다. 차라리 그때처럼 세상에 이질감을 느끼는 것이 지금처럼 나 스스로에게 이질감을 느끼며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것보다는 더 맞을 것이다. 도대체 자기 자신에게 이질감을 느끼며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 누가 나를 이해해 준단 말인가?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조차 스스로를 세상과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잣대로 보고 있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나는 왜 이럴까'가 아니라 '당신은 왜 그럴까'를 고민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잘못된 질문으로는 아무리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사춘기 때처럼 감각 수용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이제 우리는 아무리 함께 있어도 모두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최대한 비슷한 사람을 만나 비슷한 삶을 살며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을 뿐이다. 특히 성장을 원할 때에는 내가 원하는 집단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이 더욱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바람이 강해지다 보면 인지왜곡이라도 오는 것인지 나는 왜 다른 사람들 같지 않은 지, 혹은 다른 사람들은 왜 나 같지 않은 지에 대해 속상해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결국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다운 것은 무엇인지를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지 나는 다른 사람들과 왜 다른지를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르다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다시는 나 자신에게 의문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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