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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 연 Sep 15. 2022

결국 언젠간 거쳐야 할 과정이라면

10년 차 간호사, 결국은 질병 휴직했습니다.

2013년 간호사 면허증을 받아 들고 벅찬 마음을 달래던 그때가 벌써 9년 전이다. 내가 10년 차 간호사라니. 그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내느라 조각조각난 경력이라 어디 가서 내 연차를 말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10년 차라니, 꽉 찬 10년 차 훌륭하신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숨고 싶은 마음뿐이다. 반짝거리던 눈으로 꿈꿀 때의 나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는 그에 비해 너무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내 마음에 들어온 것은 2008년, 고3 시절 기대했던 수능성적에 못 미쳐 재수를 해야 하나 다른 진로를 생각해봐야 하나 고민하던 때였다. 현재도 임상에서 간호사로서 환자 옆을 지키고 계시는 고모가 내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그렇게 집에 초주검이 되어 돌아와 힘들어하셨던 것은 그만큼 이 일에 대한 애정과 사명이 크기 때문이라고, 온 에너지를 다 쏟을 수 있는 일이기에 이렇게 지칠 수도 있는 것이라며 간호사 일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그 길로 나 또한 간호학과에 입학한 이후 (모두들 그랬겠지만)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 의지만큼 따라가 주지 않는 몸, 나도 몰랐던 나의 나약함을 마주할 때마다 수없이 느껴왔던 자괴감과 순간순간의 수많은 선택들...


지금의 나는 결국 보건소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되었고, 우울증으로 질병휴직을 썼다. 몸을 추스르지 못해 마음이 무너진 건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몸이 무너진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선천적으로 약하다거나 질환이 있었던 것도 아님에도 잔병치레에 시달린 것은 꽤나 오래된 일이었다. 휴직을 하고 우울증 치료를 하면서 나는 침대에서 나와 바깥공기를 마시고 들어갔고, 방 밖으로 나와서 글을 썼으며, 집 밖으로 나와서 운동을 시작했다. 


결국 질병휴직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나약함이 너무 실망스러워 자괴감에 빠졌다. 그리고 이제는 결국은 한번 멈춰갔어야 할 때였구나 생각한다. 내가 언젠가는 했어야 할 글쓰기와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본래가 운동에는 취미가 없는 성격이지만 수영과 프리다이빙은 물속에 잠겨 무념무상할 수 있는 것이 좋아 계속하게 되었고, 요가 또한 몸으로 하는 명상이라는 생각으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 같아서 계속한다. 나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오는 사람이라 그것을 멈추고 바라보기만 해서는 해소가 되지 않기에 생각을 소화할 수 있는 글쓰기도 시작했다. 결국은 찾아오고야 만 우울증이라고 생각해서 패배감에 사로잡혀있었는데, 사실은 진작에 했었어야 하는 것들을 계속 뒷전에 두고 비틀비틀 간신히 나아가는 나를 붙잡아준 고마운 우울증이었다. 나는 나의 속도대로, 나의 길을 가면 되는 거라고 알려준 감사한 선물이었다.  


10대 때는 세상이 온통 물음표였다. 나밖에 모르던 어린 시선을 돌려 바깥을 보니 신기한 것, 이해가 안 되는 것들 천지였다. 어른이 되면 알게 되겠지, 그들을 막연히 부러워했고 다가올 미래를 기대했다.

20대 때는 성인이라는 옷가지 하나 걸친 채, 아이의 연약한 속살 그대로 세상에 내던져졌다. 순수함은 무지함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실컷 부딪히고 깨져보리라 다짐했던 스무 살의 나는 생채기 몇 개에 금세 고개를 떨구었다. 잔뜩 겁먹은 아이는 남의 피 흘린 이야기에만 몰두한 채 갑옷과 무기를 얻겠다며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그렇게 반짝일 시간은 허무하게 흘러가버렸다. 이때의 세상은 두려움이었다.

30대가 된 지금, 오늘은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며 인생은 나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소위 말하는 대박을 불러올 행운이나 나를 무너뜨릴 불행 같은 것은 없다. 내 인생은 그저 오롯이 내가 살아내는 오늘을 쌓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나를 믿으면 속도도 방향도 의심하고 흔들릴 것 없이 잘 살아낼 수 있다. 


오늘도 나를 믿을 힘을 기르려 요가 수련을 하고 왔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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