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 연 Sep 15. 2022

일기가 아닌 글을 쓰고 싶어

소설은 어렵고 에세이는 부끄럽지만

글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한 지 1년 6개월여의 시간이 흘렀다. 글이라기엔 단어의 나열이 문장의 나열로 확장된 수준이었을 것이다. 흰 모니터 화면 위에 내 이야기를 처음 써 내려갔을 때의 그 떨리고 어색하던 느낌을 기억한다. 당시의 나는 무엇이든 나를 구할 것이 필요했다. 내 안에는 답을 얻지 못한 질문들, 정리되지 않아 아무렇게나 쑤셔 넣어진 실마리들, 미처 아물지 못한 상처의 딱지와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도 모르는 채 표류하던 그 시간 속, 무엇이 끌고 왔을까? 글쓰기를 만났다.


나는 인연이 인생의 방향키라고 생각한다. 흘러가는 삶 속에서 우리는 여러 인연과 닿았다가 끊어지곤 한다. 그렇게 만나는 인연들은 우리의 여정이 급물살을 타거나 굽이치게도 하고 심지어는 역류시킬 때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인연은 선물이고 때로는 사고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선물 같은 인연을 통해 내게 왔다. 이전부터 글에 대한 호감은 있었으니 인연이 아주 없다고 할 순 없었겠지만, 생활에서 받아들이기엔 진입장벽이 결코 낮지 않았다. 많은 생각과 고민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 호감을 가지고 있던 한 작가님께서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서 나타나셨다. 내겐 글쓰기로의 초대장과 같았다.


감사하게도 처음 글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신 그분 덕분에 이제 내 안에는 글과 관련된 생각들과 인연들이 자리를 잡았다.  글 모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그 인연은 이어져 계속해서 다른 인연들을 만나고 있다.  성실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글을 놓지 않을 수 있도록 큰 도움을 받았다. 그 인연과 시간들은 결국 내가 앞으로도 글 쓰는 삶을 살고 싶게 만들었다.


둥둥 떠다니던 생각의 파편들은 글이 되면 술술 풀어져 정리정돈이 된다. 그 매력에 나는 자꾸자꾸 쓰게 되었다. 쓰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 많았던가 스스로도 놀라곤 한다. 오래 떠다니던 파편들은 정돈되어 처리되기도 하지만 글이 확장시킨 생각은 새로운 주제를 또 가져왔다. 머릿속의 단상들은 합쳐졌다가 흩어졌다가 하며 모두 글감이 되었다. 그 욕구를 따라가기가 버거운 내 문장력은 매번 신음한다. 노트북을 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동안, 멱살 잡혀 끌려오는 날엔 써졌고 실패한 날은 공쳤다.   


이렇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 좋을 대로 내 이야기를 쓰다 보니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은 자물쇠를 단 일기장에나 담아야 할, 하소연을 가득 담은 글이 아니었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은 나 아닌 독자가 있는 글, 타인을 설득시키거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글, 단 한 명이라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다. 그런데 내 글에는 내가 자꾸 넘치게 담겼고 그런 글들을 쓰다 보면 이게 일기인지 아닌 지 매번 자신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글을 썼는데 독자가 이것을 일기로 본다면 부끄러울 일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허구의 세계로 잠시 몸을 피해보기로 했다. 이 선택이 자충수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이야기 뒤에 숨고 싶었다. 징징거린다, 투덜이 스머프다, 수도 없이 들어온 이런 말들 때문일까? 아름답지도 않고 특별히 재미있지도 않은 내 이야기보다는 남 이야기하듯 그냥, 누가 이러이러한다더라, 옛날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더라,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할 것 같았다. 때로는 그렇게 다가오는 이야기가 더 받아들이기 쉽기도 했다. 현실은 너무 복잡하고 무겁기 마련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어쨌든 글은 써야 한다. 계속 써야 다듬어지고 계속 써야 쌓일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은 글 쓰는 삶을 향한 출사표 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멋진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언제든 다시 꺼내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