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힘든 이유
"화가 날 때는 보통 어떻게 하는 편이세요?"
소개팅을 하거나 썸을 탈 때 '화'라는 감정은 종종 화두에 올랐다. 나는 화가 잘 나지도 않을뿐더러 딱히 누구를 미워하지도 못하는 모태(?) 평화주의자다. 잦은 갈등을 유발할 것 같은 사람은 미리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에 주로 내가 먼저 묻곤 했다. 이렇던 나였는데 사람은 역시 늘 같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휴직 전 한껏 예민해 있던 시절, 그때의 난 화가 참 많았다. 어쩜 그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뿐인지 누군가 악의 없이 건넨 말에 잔뜩 날을 세우기도 했고 제멋대로 솟구치려는 눈물에도 화가 났다. 그리고 얄밉게도 이런 화는 주로 당혹감과 난처함과 함께 짝짜꿍 손잡고 나타났다
분노는 두려움에서 왔다. 그것은 어쩌면 나를 지키려는 절규 같기도 했다. 나의 두려움, 즉 나의 취약한 부분이 건드려졌을 때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도 모르게 으르렁거렸다. 겁이 났었다. 분노란 이런 본능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가 약하고 불안할 때 화가 많아지는 이유일 것이다. 여유를 가지면 화가 잘 나지 않는다. 겁낼 것이 별로 없다면, 행여 그렇더라도 기댈 곳이 있다면, 혹은 그것이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있어서 예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두려움도 무섭지 않다. 세상사 그럴 수도 있는 거라며 너그러워진다.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 동물은 으르렁 거릴 필요가 없다.
화가 나면 어떻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답할까?
"저는 정말로 화가 나면 말이 없어져요. 제가 화가 났다는 것은 제 안에 두려움이 무엇인가를 보고 반응했다는 신호거든요. 두려움이 드러난다는 것은 위기를 느꼈다는 뜻이기에 저는 재빨리 탐색모드에 들어갑니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즉 나의 어떤 두려움이 건드려졌는지 모든 일을 멈추고 즉시 탐색해봐야 해요. 차분해지지 않으면 울부짖거나 눈물이 터져 나오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말 거예요. 무엇보다, 화가 분노가 되면 그땐 정말 초 비상이 되기 때문에 저의 몸과 마음은 전력으로 경계태세를 취하고서는 결국 몹시 지치고 말 겁니다. 저는 그 상태가 정말 싫어요. 폐허가 되어버린 거잖아요. 본래의 제 에너지 상태를 찾는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죠."
두려움을 아주 없앨 순 없을 것이다. 결국 감정이라는 것은 본능의 영역. 모두 그 쓰임이 있고 존재의 이유가 있다. 두려움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며 특히 단기적 동기부여에 특효이다. 있는 것을 없애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안전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잘 바라보자. 가시를 곤두세운 고슴도치처럼 화를 잔뜩 세워 자신도 타인도 찔러대며 살 생각이 아니라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편이 낫다. 그렇다면 화가 날 일도 손에 꼽도록 줄어들 것이다.
화가 나를 잠식한다고 느껴진다면 생각해 보자. 나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섯 마음'은 초고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공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애락애오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