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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선 Feb 11. 2023

보름달

공유를 할 수 없다는 슬픔

어젯밤 잠들기 전 열어 놓은 실외 블라인더와 커튼 옆에서 자고 있던 나를 깨운 건 밝은 불빛이었다. 꿈을 꾼 것인지 갑작스레 쏟아져 내리는 눈을 치우러 온 거대한 *스노우 플로우가 불빛을 내며 열일하고 있다 생각했다. 눈을 비벼 겨우 넘겨 본 바깥엔 고요하고 컴컴한 새벽녘이다. 혹시나 내가 꿈에 취해서 이미 등교시간을 놓친 건 아닌지. 서둘러 시계를 찾았다. 새벽 5시를 이제야 막 넘긴 시각.

분명 불빛이 나를 깨운 것인데, 내가 생각한 스노우 플로우도 함박눈도 보이지 않는다. 눈을 다시 감았다.

다시금 밝은 불빛이다. 강도라도 잡을 기색으로 눈을 커다랗게 뜨고 밖을 내다보았다.

보름달이다. 거대한 크기도 크기지만 눈앞에 똑바로 떠서 나를 보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바라보니 눈이 부실지경이다. 자다가 깨서 제대로 못 보았던 것인지 이 보름달 앞에 자리 잡은 짙은 구름하나가 장난질을 했던 모양이다. 예쁘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어제 오후 아버지가 보내주신 서울의 보름달 사진과 문자메시지가 생각났다.  


'대보름달이 휘영청 떴다. 보름달의 정기를 받아서 올해 온 가족 모두 건강해라.'


우주에 달은 하나지만, 우리는 시간의 간격을 두고 '정월 대보름'을 핑계 삼아 다시 한번 안부를 물었다. 1월부터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해피 뉴이어'와 '새해 건강하세요'를 몇 번 주고받았지만, 이도 성에 안 차시는지 또다시 두 번의 문자를 보내신 것이다. 70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는 한국의 큰 명절이나 기념되는 날들을 반드시 챙기신다. 정월 대보름날 같은 날 챙겨 먹어야 음식들이나 전통 놀이등을 이야기하신다. 아버지가 명절음식을 좋아하시고 의미를 잘 아시기에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늘 가족을 위해 전통음식을 챙기시곤 했다. 벌써 20여 년 전이지만, 음력 1월 15일 대보름이 뜬 날은 팥을 넣은 꼬들꼬들한 찹쌀밥, 시원한 콩나물국, 갓 구운 김, 나물 다섯 가지를 먹었다. 뜬금없지만 오늘은 노르웨이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윤기 나는 쌀밥이나 오곡밥, 콩나물 국이 간절해졌다.


유럽에서는 특별한 연휴가 아니었던 구정. 오랜만에 (다행히 올해는 주말이었기에) 떡국과 산적을 만들었다. 큰 의미를 둔 것이 아니라 매주 똑같았던 나의 저녁메뉴를 바꾼 것뿐이었다. 올해는 떡을 구했기에 떡국을 해 먹었지만, 설날에 떡국을 챙겨 먹은 해 보다 그렇지 못한 해가 더 많다.

요즘 제철이라는 감말랭이가 있을 리가 없으며, 당연히 정월 대보름에 먹는다는 약밥, 오곡밥, 나물도 해 먹지 못하였다. 매년 챙긴 적이 없는 정월 대보름, 단오, 동짓날 등의 전통 풍속은 아예 잊고 산다. 아버지가 이렇게 문자메세지와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면 나는 애써 모른척하기도 하고, 상관없는 일인양 지나친다.

타국에서 한국의 명절이 공감 되지가 않는다.

'구정을 왜 또 챙겨, 이미 새해가 됐는데..'

'정월대보름이 뭐라고, 첫 보름달이라고? 지난달에도 보름달 본 것 같은데..'

중얼거리다가 의미 따위를 찾거나 음식을 해 볼 마음은 생기지 않고 짜증만 났다.


심통을 부렸지만 사실은 마음 한 구석이 휑 하다. 이제 와서 말하건대 나의 가족인 톰슨 씨나 아들 두 명이 한국에 대해 잘 모르기에 공유를 할 수가 없다. ‘오늘 정월 대보름이래…’대신 풀문이라고 말해줘야하고 레드문도 슈퍼문도 아닌데 왜 내가 구지 말하는지까지 설명해 줘야한다. 공유를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와 톰슨 씨가 함께한 시간이 20년이 채 안되기 때문에 그 전의 과거나 고향에 대해서는 각자 알아차려야 한다. 그 간격을 타국에서 말로 설명하기엔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주변에 명절을 공유할 한국인이 없다.

타국에서는 공유를 할 수 없는 무언의 슬픔이 있다. 그 슬픔은 종종 외롭거나 쓸쓸함으로 나타난다.


누군가는 식구들에게 전통 명절이나 한국 문화 등을 가르쳐 주면 되지 않느냐고 하기도 한다. 설날이 왜 1월 1일이 아닌지, 정월 대보름에는 무엇을 하는지, 추석에는 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보름달 아래에서 강강술래를 하거나 쥐불놀이를 하는지 등의 설명한 적은 꽤 된다. 톰슨 씨도 한국 사극을 보며 알게 된 부분도 있지만 공감하지는 못한다. 아이들은 한국어를 읽을 수 있지만 의미를 이해하고 알아듣는 것을 어려워한다. 다양한 한국말도 문화도 직접 경험하지 못하였다(나 또한 아이들과만 한국어를 쓰고 있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도 한국은 종종 방문하였다. 길게는 2주 정도였다. 문화 체험을 하기엔 짧았다. 한복을 2년마다 샀기에 아이들은 한복이나 세배정도는 안다. 한국 음식도 꽤 좋아한다. 그렇지만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아는 명절이나 고향이 공유가 되지는 않는다. 한국인끼리 만나서 나물 음식을 나누고, 어렵게 구해 온 캔에 담긴 식혜를 마시며 은근히 행복한 그런 기분은 절대 생기지 않는다.


오랜 타국생활로 무뎌진 나 같은 사람도 가끔 명절이라는 단어에 울컥한다. 명절, 한국스러움, 한국 음식, 한국말, 한국사람... 가까운 한국인이나 한국 식품점이 있다면 조금 나아질까.


'정월 대보름 그깟 것이 뭐라고..'

공유할 수 없다는 슬픔을 훌훌 털어버린다.   



*스노 플로우 (Snowplow): 눈 치우는 트랙터.   


이번 글은 희. 노. 애. 락. 애. 오. 욕 중 '애' (슬프다)에 관한 글입니다.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성 마음'은 초고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동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 애. 락. 애. 오. 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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