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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Feb 13. 2023

일 년에 한 번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는 이유

희로애락애오욕 중에 '애'


최근에 큰아이가  넷플릭스 시리즈 'Good doctor'에 푹 빠졌다. 역시나  그 시리즈의 주인공 '프레디 하이모어(Freddie Highmore)'의 팬이 되었다. 연기도 너무 잘하고 남자가 봐도 잘생겼다나.

그 배우가 바로  '찰리의 초콜릿 공장'의 주인공 역할을 했었던 사람이라고 하니 아이들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 아이가 이렇게 어른이 되었다고?"

내가 나이 든 것은 잘 모르지만, 남들이 나이 들어 변하는 모습은 왜 이렇게 신기한지....

며칠 전에는 굿닥터를 한참 보고 있던 아이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말했다.

"이번 에피소드는 너무 슬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막 나."

아이는 밤에 잠들기 전에 또 한 번 그 시리즈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슬픈 내용을 떠올리기만 했는데도 눈물이 난다는 것이었다.

한국 나이로 열세 살이 된 남자아이의 감성을 생각하니 나는 좀 웃겼지만, 울먹이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나에게는 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꼬마 아이 그대로인 친구가 한 명 있다. 바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제제다.

제제와 처음 친구가 된 것은 내가 고등학생 때였다. 사춘기 감성이 가득하다 못해 넘쳐흐르던 시절에 만난 제제는 날 수도꼭지로 만들었다. 소설 초반부터 날 울렸던 제제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가만두지 않았다.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뽀르뚜까'아저씨가 기차 사고로 하늘나라에 갔을 때는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고,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책을 덮었다.


한 번씩 이유도 없이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그건 크게 기쁠 일도 슬플 일도 없는 일상이 지루해질 때즈음이다. 감정을 소모할 일이 없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넘쳐흐르던 감성이 바짝 메말라버린 현실이 슬프다.


그럴 때 나는 라임 오렌지 나무를 타고 광활한 평야의 인디언을 좇는 제제를 소환한다. 다섯 살의 제제가 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려고 구두약이 든 통을 들고 거리를 떠도는 제제를 만난다. 어린아이스러운 장난질에 아버지에게 손찌검을 당하는 제제를 읽으며 나는 다시 펑펑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슬프다'는 감정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신체 반응이다.

동물들은 울부짖는 반면 눈물을 흘려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뿐이라고 한다.  


눈물이 흐르는 메커니즘은 꽤 단순해 보인다.  안구와 눈꺼풀 사이에 눈물샘이 있고 그것을 자극하면 눈물이 흐른다. 하지만 감정의 변화를 통해 눈물이 흐르는 이유는 절대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변연계와 관련이 있는데, 아세티콜린이라는 신경물질이 분비가 되고 자율 신경계를 자극하여 심박수가 빨라지고 근육이 긴장하면서 눈물이 흐르는 것이라고 한다.... (통곡하며 우는 바로 나의 모습이다.)


눈물은 슬픔을 표현하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건조한 마음밭에 뿌려지는 단비이기도 하다. 실컷 울고 나면 후련해지는 이유,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이 나는 이유는 눈물을 먹고 다시 자라난 다양한 감정의 새싹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작 주방에서 양파를 썰다 흘리는 눈물이 다라는 걸 자각할 때 책장에 고이 간직해 둔 책을 꺼낸다.

나는 어린아이로 돌아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를 만나 실컷 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다시 어른이 된다.

감정을 아끼며 슬플 일도 기쁠 일도 없는 일상을 씩씩하게 살아간다.

그러다 다시 마음에 단비가 필요할 때 이 책을 꺼낼 것이다.




드라마를 보며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다행이다 싶다.

내 아이에게도 슬픔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하나 생긴 것 같아 기쁘다. 간접적인 타인의 슬픔을 나의 슬픔으로 느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랐다.



"엄마, 나도 의사가 되겠어!"

아이가 울다 말고 말했다.

"그래, 너의 새로운 꿈을 응원할게. 꼭 의사가 되길 바라."


사실, 아이가 감정을 충분히 느끼는 것보다 새로운 꿈이 생겼다는 게 조금 더 기뻤다.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섯 마음'은 초고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동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 애. 락. 애. 오. 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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