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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엘리 Feb 15. 2023

슬프고 쓸데없는 질문

어차피 모든 것이 사그라질 텐데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 간 것이 4년 전 봄이다. 더운 한 여름과 추운 한 겨울을 피해서 따뜻한 봄을 골라서 갔다. 역시나 맑고 온화한 날들의 연속이라 외출을 하고 만나지 못했던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기에 그만이었다. 아버지가 방문해 보고 싶어 하셨던 경남의 시골 지역에 위치한 실버타운 방문 일정을 포함해서 부모님과 함께 경상도 지역 여행도 다녀왔다. 아버지는 은퇴자들이 모여 살며, 함께 취미 활동을 하고 제공되는 식사를 하고 의료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는 은퇴자를 위한 시설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다. 건물 외부에는 텃밭이 있었고 산책로도 조성되어 있었다. 일과 시간표도 있어서 아침이 되면 기상송도 흘러나오고 식사 시간에 식당에 가면 신선한 재료로 건강하게 조리했다는 식사가 제공되었다. 방 청소를 요청하면 청소도 해준다 했다. 요리와 살림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외부 강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하고, 바둑이나 노래, 탁구, 서예와 같은 공통의 취미 활동을 즐기는 소모임도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읍내로 가는 교통편도 제공되고, 바로 옆 건물에 요양 병원과 같은 의료 시설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노년을 보내기에 손색이 없는 시설로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실버타운에 대한 아버지의 짧은 소회를 들을 수 있었고, 두 번 다시 그 실버타운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


“노인들이 모여 산다는 것이 생각보다 좋아 보이지는 않는구나. 옆의 병원에서 몰려오는 소독약 냄새만 생각난다. “


사실,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노년을 아직 살지 않은 내가 섣불리 노인 냄새, 병원 냄새 그런 단어를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아서 잠자코 있긴 했지만, 그 시설에서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 생활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쇠약한 삶을 그저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 노년의 삶을 보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부모님과 여행을 다녀온 후 열흘 정도가 지났다. 건강이 좋지 않아 한동안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던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우리나라에 도착해서 작은 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 들러 인사도 하고, 대화도 했는데 불과 몇 주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작은 아버지의 상태가 심각해져서 여행 후, 아버지는 거의 매일 병원에 들르셨다. 아침에 병원에 다녀오셨는데 오후에 연락이 온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갈 준비를 하는 중에 아버지 친구분께 전화가 왔다. 아마 그날 모임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안 오시니 전화를 하신 듯했다. 수화기 너머의 질문은 안 들렸지만 아버지의 대답이 들려왔다.


“내 아우가 갔어.”

“아우가 저 세상으로 갔다고.”


아버지의 체념한 듯한 목소리가 느껴졌다. 짧은 통화가 끝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내내 거의 말씀이 없으셨다. 장례식장에 친척들이 모두 모였다. 성인이 되면서 왕래가 뜸했던 사촌들도 모두 만났다. 각자의 배우자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촌들도 있었다. 외국에 나와 살며 사촌들의 결혼식에도 참석을 못했으니 오촌 조카들은 당연히 처음 본다. 그중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사촌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는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단편들이었다.


“삼촌(사촌 언니와 나는 어릴 때 습관이 남아 있어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를 여전히 삼촌이라고 부를 때가 많았다.)이 모는 오토바이 뒤에 우리 둘이 타고, 옥수수 먹으며 장난치다가 오토바이에서 떨어진 거 기억나?”  

“그럼. 그럼. 결국 집까지 걸어갔잖아.”

“삼촌이 작은 어머니랑 결혼할 때, 작은 어머니가 엄청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도 그랬니? “

“응. 드레스 입은 공주님 같았지.”


장례식에 모여 산 자들이 죽은 자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지만, 그 밖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처럼 멍하니 앉아 있거나 작은 아버지의 아들처럼 슬픔에 눈물 콧물이 뒤범벅되어 거의 실신 직전의 상태까지 가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정말이다. 작은 아버지의 둘째 아들은 입관식을 할 때 주변 사람이 붙들고 있지 않으면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자지러지게 통곡을 했다. 서른 살 정도의 건장한 청년이 그렇게까지 우는데, 작은 아버지와의 정이 유난히 각별했구나 싶었다. 보고 있는 다른 많은 가족들도 작은 아버지의 죽음에 모두 많이 울었다.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아버지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기운 없는 나날을 보내셨다. 어지럽다고 병원에 한 차례 다녀오시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뉴질랜드로 돌아올 때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평소처럼 담담히 잘 다녀오라 말씀해 주셨다. 아버지는 따뜻하고 다정한 친구 같은 아버지라기보다는 호랑이처럼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셨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늙고 힘없는 아버지를 상상하는 것이 어렵다.


돌아오는 봄, 오랜만에 우리나라에 잠시 다녀올 계획이다. 아버지를 보지 못한 시간 동안 아버지는 어떤 노년을 보내셨을까? 은퇴 후에도 정해진 루틴에 맞춰 운동을 하고 공부도 하고 강의도 나가시고 했던 것을 알고 있지만, 아버지는 스스로 자신이 죽음을 향해 늙어가고 있다는 말씀을 가끔 하셨다. 아우의 죽음처럼 주변에서 사그라지는 것들을 그 사이에 얼마나 보셨을까? 늙음과 죽음이 동의어는 아닌데 자꾸 비슷한 말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가까운 사람의 늙음과 죽음이 젊고 살아있는 자들에게 얼마만큼의 슬픔으로 남을까? 우리나라에 방문할 날이 얼마 안 남으니 이런 쓸데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섯 마음’은 초고 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동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애락애오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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