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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Feb 16. 2023

이따금씩 슬픔이 밀려올 때

나이를 먹나 봅니다.


“나이 먹었나 봐. 가끔씩 이유 없이 눈물이 나.”


어느새 40대 중반이 코앞인 나이가 되어버렸다.

사실 그동안 바쁘게 살다 보니 나이 먹는 것도 모르고 내 나이가 몇 살인지 가늠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어째서 신은 ‘나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 세상 살아가며 의미를 둬야 하는 수많은 숫자들 때문에 이리도 복잡하게 살고 있건만, ‘나이’까지 만들어서 헤아리게 만드는 건지 원.


몇 년 전부터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져 간다.

우리가 십 대, 이십 대 때에는 오늘날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었지 아마..


“우리 늙는가 봐. 너는 흰머리 안나?”

“나는 흰머리 나서 새치염색 하고 다닌 지 몇 년이야.”

“얼굴에 기미가 생기지 않니?”

“나는 피부가 너무 건조해.”

“피부? 헤어? 그런 거 신경 쓰고 산지 오래다.. 그냥 살기 피곤해. 힘들어.”

“너는 노안 없어? 나는 노안 안경 껴.”

“건강검진 결과에서 나 뭐 나왔다. 너희도 매년 잘 받아. 아프면 서글퍼.”


결론이라 할 거 하나 없는 서로의 푸념들을 늘어놓다가 끝나버리는 우리들의 나이 듦에 대한 이야기. 해결책도 없고 누가 더 젊어 보이려는 발버둥도 없고, 그저 서로를 토닥이며 일하고 아이 키우고 살림하고 살기 바쁜 평범한 40대 여자들의 대화이다.


“누가 나를 챙겨주니. 남편도 애도 아니야. 우리 스스로 챙겨야지. 우리끼리 서로 챙기자. 돈 벌어서 뭐 해, 아프지 말고 관리하고 살자!”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서 고무적으로 결론을 내지만, 우리는 안다. 다들 비슷비슷 맞벌이 혹은 외벌이 하면서 애들 키우고, 애들 사교육도 시켜야 하고, 여행도 좀 다녀야겠고, 각자 떠안은 대출금이자를 갚고 나면 정작 나를 위해 투자할 만한 돈은 얼마 남지 않는다는 것을. 많이 벌면 많이 버는 대로 아이들과 살림에 들어가는 돈의 액수는 커지고, 적게 벌면 적게 버는 대로 내 몫으로 쓸 돈은 점점 덜 남기게 된다. 그게 현실 엄마고 아내인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렇게 살다 보면 물욕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늘어가는 것은 주름, 푸념 말고도 또 있다. 바로 눈물.

왜 이렇게 한 살 한 살 나이 들어 갈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걸까.


사실, 나는 살면서 울 일이 별로 없었다. 슬퍼하는 시간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에너지를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힘든 시간들을 잊어가곤 했다.

살면서 이따금씩 슬프거나 힘든 일을 겪을 때에는 눈물이 나곤 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흘린 눈물의 이유들이 다 의미는 있었지만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땐 그게 전부였고 그 상황만으로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나는 그때보다 더 단단해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사소한 것 들에서 자주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 감정의 기복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일까. 호르몬 탓일까.


몇 년 전부터 부모님의 건강, 부모님의 부재만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돈다. 두 분 다 아직은 건강하시지만 이제 70대 중반을 향해 가시는 연세에 쪼글쪼글해진 손만 봐도, 함께 걷다가 숨이 차 하시는 모습만 봐도, 괜스레 눈물이 핑 돈다. 엄마 아빠 없이 어떻게 살지?..


잘 크고 있다고 믿어왔던 아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한 번씩 내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할 때, 괜히 서글퍼 엉엉 울고 싶어 진다. 자식을 키워봐야 진정한 인생을 배운다고 했던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들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배워가며 겪어가고 있는 중이다. 남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문제라 하더라도 자식농사에 있어서의 고충은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 없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싶다.


남편이랑 원래도 주중에는 떨어져 지내는데, 지금은 멀리 타국으로 출장을 가서 오랫동안 못 보니 이따금씩 쓸쓸함이 밀려오고 타지에서 고생하는 그를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돈다. 반대로 나도 고생하고 있으니 눈물이 더 핑 돌고. 시차가 있어 서로의 시간대가 달라 각자의 안부를 묻는 카톡을 남기고 잠을 청한 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남겨 있는 그의 따듯한 말 한마디, 나를 응원해 주는 그의 메시지에 괜히 또 코끝이 찡해진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 돌아서면 남이라 한다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는 내 인생 최고의 동반자이고 40대가 되면서 주말부부를 해서일까. 매일 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더 애틋하고 그렇다. 사실 그는 내가 편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고, 그는 큰 덩치만큼 마음도 넓다. 적어도 ‘나’보다는..


그리고 누가 나를 몰아세우거나 닦달을 하면 예전에는 화가 났는데 이제는 눈물만 핑 돈다.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밀려오는 서러움에 복받쳐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일들이 더러 있다. 행여 누가 볼까, 나약해 보일까, 가족들에게 들킬까 싶어 큰소리로 엉엉 울지도 못하고 애써 눈물을 훔치기 바쁜 날들이 있곤 했다.


이 모든 것이 호르몬의 변화 때문일까. 나이 듦 때문일까. 아니면 둘 다 일까.

이따금씩 슬픔이 밀려올 때면, 극복할 수 있는 탈출구를 만들어야지 싶다.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먹을 것이라도, 공간이라도, 음악이든 책이든 영화든 다 좋다. 내가 20대 때 사랑했던 취미로 즐겼었던 무언가를 떠올려 봐야겠다.  언제부턴가 그런 것들을 누리고 사는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지고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잊힌 지 오래인 것 같아 살짝 슬퍼지지만, 나이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뭐라도 찾아야겠다.


나이 듦은 서글프지만, 내 나이도 누군가에게는 젊은 나이일 테고, 세월을 탓하기 전에 즐겁고 행복하게 나이 듦을 선택해야지. 이따금씩 밀려오는 슬픔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빨리 털어버릴 수 있는 원동력을 찾아내는 것도 현명하게 나이 듦의 방법이 아닐까.


건강하게 나이 듦을 선택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챙길 수 있도록.

이따금씩 밀려오는 슬픔들을 극복해내고 싶다. 그래야지, 암.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섯 마음'은 초고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공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애락애오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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