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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혁신파크 Dec 03. 2018

 '전기 사용 제로' 카페 들어선 서울혁신파크

서울혁신파크

차 주문할 때부터 낭패를 봤다. 모과차 두 잔을 주문하고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냈으나 거절당했다. "죄송하지만 여긴 전기를 사용하는 카드 리더기가 없어 카드 결제가 안됩니다." 카페 직원이 미안한듯 답했다. 마침 현금도 없어 결국 계좌이체를 통해 차값 1만2000원을 결제했다.

서울 3호선 불광역 인근의 서울혁신파크 정문 옆에 들어선 비전화카페. 전기를 전혀 쓰지 않는 국내 유일한 카페다.<비전화공방서울>


이곳에는 신용카드 결제용 리더기만 없는게 아니다. 흔한 냉장고도 없다. 그러니 아이스커피는 메뉴에 아예 없다. 커피도 흔히 보는 커피머신이 아닌 사이폰(압력 차이를 이용한 커피 추출방식) 방식으로 내린다. 사이폰이 주는 ‘기다림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에겐 딱이다. 유명 커피매장에서 파는 사이폰 커피는 한잔 값이 1만원이 넘는데, 여기선 6000원.

비전화카페에서 직원이 핸드로스팅기를 이용해 커피를 볶고 있다. <박순욱 기자>


커피 로스팅도 원시적 방법을 쓴다. 삽 비슷하게 생긴 핸드로스팅기에 커피콩을 넣어 가스불 위에서 직접 볶는다. 가끔씩 로스팅기를 흔들어 커피콩이 골고루 익도록 한다. 열을 적당히 발산시켜서 용기 내부의 온도를 적절히 유지하는 방식이라 3분 정도만 볶으면 맛있는 커피 원두가 만들어진다. 갓 볶아낸 신선한 커피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를 손님들이 지켜볼 수 있다.

이곳은 서울 은평구 통일로 684 서울혁신파크(서울시 운영)에 최근 문을 연 비전화카페다. ‘비전화’란 ‘전기와 화학물질을 안 쓴다’는 의미로 이곳 비전화카페는 전기를 전혀 쓰지 않는 국내 하나밖에 없는 특이한 카페다. ‘언플러그드 카페'인 셈이다. 전기 조명을 쓰지 않다보니 오전 11시에 문을 열어 오후5시에 문을 닫는다. 만약 날씨가 흐려 카페 내부가 어둡다고 여겨지면 테이블 위에 놓아둔 등유 램프를 사용하면 된다.

비전화카페 직원들. 비전화카페는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1시에 문을 열어 오후5시에 닫는다. <박순욱 기자>


지난 28일 오후3시 약속시간에 찾아간 비전화카페는 나무 땔감으로 불을 피운 난로 덕분에 카페 전체가 훈훈했다. 전기조명은 없었지만 아직 낮이라 어둡지는 않았다. 테이블은 4개 정도로 아담했다. 이 카페는 지난 17일 임시로 문을 열었으며 내년 봄에 정식 오픈한다.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문을 연다. 월, 화는 손님을 받지 않는다.

메뉴도 단출하다. 커피, 모과차, 국화차, 고구마수프, 직접 길러 당일 따온 야채로 만든 샐러드가 전부다. 모과차 원료는 이곳 서울혁신파크에 있는 모과나무에서 자란 모과를 말려 청으로 만든 것이다. 고구마는 강화 도 인근의 볼음도라는 섬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것이라고 한다. 샐러드에는 비전화 착유기로 짠 오일(깨, 호두, 땅콩)이 드레싱으로 들어간다. 대부분 직접 키운 재료로 만든 메뉴들이다.

더 놀라운 점은 비전화카페 건물을 일년동안 건축 비전문가들인 청년들이 직접 지었다는 사실이다. 나무로 벽체를 세우고, 볏짚(스트로베일)과 흙으로 60mm 두께 벽을 만들어 단열을 했다. 바닥과 지붕에는 왕겨(벼의 겉껍질)단열을 했다. 33제곱미터(10평) 남짓한 크기지만 완공하기까지 일년 이상 걸렸다.

비전화제작자들이 비전화카페 지붕을 올리고 있다.<비전화공방서울>

제대로 된 설계도면도 없이 그것도 일상적으로 쓰는 건축자재가 아닌 자연에서 그대로 가져온 볏짚, 왕겨 등을 주요 자재로 사용해 만들다 보니, 건축가들 눈에서 보면 어슬프기 짝이 없는 초라한 카페일 것이다. 그러나, 일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 하나하나 벽과 지붕을 직접 쌓아올린 카페 청년들 시각에선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카페 건물 짓기부터, 운영방식(전기 사용하지 않는 것), 메뉴도 모두 자연을 닮았다. 비전화카페는 자연을 닮은 카페다.

비전화카페가 임시 개장한 지난 17일 카페 직원들이 독일과자의 하나인 바움쿠헨을 굽고 있다. <비전화공방서울>

비전화카페 건물 짓기에 참여한 청년들은 1, 2기 비전화제작자들이다. 비전화제작자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일상 생활용품을 만들어 사용하는 방식으로 자기 삶의 자립력을 키우는 1년 과정 수행자들이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혁신파크에서 희망자를 모아 일년에 12명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매년 12명을 뽑고 있으며, 비전화카페는 1기 졸업생과 2기 재학생 총 24명이 공동으로 지은 합작품이다.

이들 비전화제작자들이 모여 개별적으로 혹은 공동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공간이 비전화공방이다. 비전화공방은 비전화카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김미경 비전화공방 단장의 안내로 가본 비전화공방은 목공소를 방불케 했다.

비전화공방서울 김미경 단장이 비전화 정수기, 도정기, 착유기 등을 비전화공방에서 제작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여기저기 나무로 만든 소품들이 어지러이 널려져 있었고, 한쪽에는 야외침대인 해먹도 2개 완성돼 있었다. 김미경 단장은 "이곳에서 햇빛 건조기, 비전력 도정기(손으로 돌려 쌀을 도정하는 기계), 야자활성탄을 활용한 비전화 정수기, 비전화 착유기, 인도식 난을 굽는 탄두르 화덕 등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상품은 판매도 하고 있다.

비전화공방 2층에는 직접 만든 태양열 식품건조기에서 배추와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태양열을 이용해 식품을 건조하는 장치다. 보통의 식품 건조기는 전력 소모가 크지만, 이것은 에너지 소비량이 제로다. 김 단장은 "야채나 과일, 나무열매 등을 건조식품으로 만들어 자급자족하거나 카페에서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전화제작자들이 만든 태양열식품건조기에서 배추를 말리고 있다. <박순욱 기자>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지만, 전기가 아닌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태양냉장고도 볼 수 있었다. 방사냉각과 물의 자연대류현상을 응용한 제품이다. 조만간 비전화카페에도 들여놓을 계획이다.

비전화카페와 비전화공방이 들어서 있는 서울혁신파크는 원래 식품의약품안전청, 질병관리본부 등이 입주해 있었다. 그러나 이들 기관들이 2010~2012년 충북 오송으로 이전해간 이후, 호텔 건설 등 다양한 활용방안이 논의되다가 박원순 시장 부임 이후 환경, 복지, 교통 등 복잡한 도시문제 대안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공감대가 조성됐다.

지난 2015년에 정식 개원한 서울혁신파크는 저성장, 고령화, 환경, 에너지 등 우리의 시급한 사회문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250여개의 사회적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사회혁신 플랫폼이다. 인원으로는 2000명에 달한다.

입주 기업 외에 일반인들도 편하게 들러 차를 마시고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체험형 공간들이 많다. 우선 미래청 1층은 대부분의 면적을 카페로 쓰고 있다. 커피, 차 한잔 시켜놓고 하루종일 책을 읽거나 컴퓨터 작업 등을 해도 눈치 주는 직원이 없다. ‘서울 시내 이렇게 넓은 카페가 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쾌적하다. 미래청 2층 별별모임방도 일반 시민들이 각종 모임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서울혁신파크 본부인 미래청 1층의 카페. 넓은 공간에 비해 이용 시민이 많지 않아 쾌적하다. 잠시 누울 수 있는 온돌 공간도 있다.<박순욱 기자>


서울혁신파크 장미정 홍보팀장은 "미래청 건너편의 상상청에도 일반인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특히 상상청 옥상은 미리 이용 신청을 하면 공연, 각종 모임, 삼겹살파티도 무료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혁신파크는 상상청을 비롯해 옥상 8곳을 시민들에게 개방, 다양한 모임장소로 제공하고 있다.

서울혁신파크의 건물 옥상에서 시민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미리 신청하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옥상이 8곳이나 된다. <서울혁신파크>


서울혁신파크의 본부 격인 미래청 건물 왼편에 있는 목공동(우드파크)은 목공예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 목공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 제품을 제작해 판매하려는 목공 기술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40~50대 남녀 작업자들이 나무를 베고, 모서리 마무리를 하는 등 작품 제작에 분주한 모습들이었다. 이곳 직원 김서하씨는 "간이 테이블, 의자, 책장은 물론 공기정화기까지 나무로 만든다"며 "동호회 회원들은 의자와 책상을 여럿 만들어 사회소외계층에 기부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목공 클래스도 운영한다.

서울혁신파크 목공동에서 참가 시민들이 작업에 몰두해 있다. <박순욱 기자>


장미정 홍보팀장이 그 다음으로 기자를 안내한 곳은 재생동이었다. 재생동은 업사이클과 리사이클을 위한 공간이다. 또 한쪽에는 버려진 장난감을 하나하나 분해해 새 장난감으로 만드는 장난감학교 ‘쓸모’도 입주해 있다. ‘쓸모'를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금자동이 박준성 대표는 "10년 전인 2008년에 장난감학교 ‘쓸모'를 만든 이후 전국적으로 40만명의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체험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한 해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장난감이 240만t에 달하지만, 이중 80~90%가 재활용되지 못하고 겨우 화력발전소 연료로 쓰인다고 한다. 박 대표는 "플라스틱은 연소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호르몬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박 대표는 1998년에 장난감을 재활용하는 사회적기업 금자동이를 설립, 버려지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분해해, 새 장난감으로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런이들은 이곳에 비치돼 있는 장난감 부속품들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장난감'을 만들 수 있다. 박준성 대표는 "이곳 서울혁신파크에는 나같은 혁신가가 2000명이나 모여 있어 규모 면에서는 세계 최고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혁신파크 재생동에서 장난감 재활용 사업을 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금자동이 박준성 대표. <박순욱 기자>


서울혁신파크에는 이밖에 서울시립미술관이 운영하는 분관인 SeMA창고가 있어 수시로 전시회를 연다. 외국 음식 등을 시식하고 직접 조리해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맛동도 있다. 맛동에서는 12월 6일, ‘초겨울 프렌치 밥상', 7일에는 러시아 가정식 수프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18일에는 일본 가정식 배우기도 진행된다. 미리 신청하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참가비는 1만원 안팎.

사회혁신 플랫폼 서울혁신파크는 3호선 불광역 2번 출구와 가깝다. 일요일은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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