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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혁신파크 Jun 26. 2019

서울에서 적정기술 맛보실래요?

강신호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장

적정기술에 대한 오해


서울에서 적정기술한마당이 열립니다. 그것도 국제행사입니다. 이런 이야기하면, '에이, 서울에서 적정기술로 할 수 있는 게 뭐 있어'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적정기술을 몇 가지 하드웨어 아이템이나 에너지 기술로만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실 적정기술이란 단어는 몇 가지 오해를 불러 일으켜왔던 게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잘 사는 나라인데 적정기술이 왜 필요해? 그건 못사는 나라 도와주는 기술 아닌감?" 라거나, "농촌에서나 필요하지 도시에서 무슨..."이라는 반응도 나옵니다.  


생태적이고 덜 소비적인 삶으로 전환을 꿈꾸는 사람들

우리나라에 적정기술이란 단어가 처음 소개된 계기는 ‘야생초 편지’의 저자이신 황대권 선생님이 1992년에 발간한 ‘백척간두에 서서’라는 책에서 언급하면서부터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공동체 사회의 근간이 되는 기술로 적정기술의 필요성을 주장하셨던 거지요. 비슷한 시기에 한글 번역본으로 소개되었던 ‘오래된 미래’에서도 적정기술이 등장합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는 적정기술을 통해 라다크 사람들에게 생태적 자립을 위한 방안으로 적정기술을 도입했습니다. 이렇게 적정기술은 1990년대 초에 문헌을 통해서 국내에 그 개념을 드러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까지에는 시간이 필요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적정기술이란 용어만으로는, 이것이 기술의 한 분야를 의미하는 건지, 또는 기술의 대중성이나 선호도를 나타내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잊히는듯 했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위해 쓸까


적정기술을 주창한 원조는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환경주의자였던 에른스트 슈마허입니다. 그는 자신의 명저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통해 ‘중간기술’이라는 용어를 소개했는데요, 유럽에서 최초 출간된 시점이 1973년입니다.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선진국 정부들이 나서서 후진국 원조에 중간기술 개념을 적용한 지원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마저도 70년대 말에 각 나라 정부의 수반이 바뀌면서 시들해지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요. 이 와중에 중간기술은 적정기술이란 용어로 바뀌기에 이르렀지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국내에 번역본으로 소개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중간기술이란 용어가 등장합니다. 선진국의 고급기술은 눈높이를 낮추고, 후진국의 저급기술은 눈높이를 높여서 그 둘의 수준을 맞춘 중간기술을 후진국 개발에 적용케 하자는 논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실정과는 괴리가 있다 보니, 출간 초반에는 관심도가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가치를 지닌 개념은 결코 저절로 사그라질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적정기술이 구체적인 행동과 운동으로 들불처럼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세탁기, 원형톱, 파쇄기, 믹서기 등을 작동시킬 수 있는 자전거 페달

국내에서는 적정기술이 환경과 생태, 에너지 자립의 키워드들과 함께 등장했습니다. 팽배해진 물질주의와 소비 위주의 생활 패턴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면서, 친환경 에너지 대안으로 주목한 것이 적정기술입니다. 그래서 로켓 스토브, 고효율 난로, 태양열 온풍기 등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장치들이 적정기술 버전으로 인터넷상에 공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의 많은 환경단체와 대안학교들이 적정기술을 교육주제로 설정하고 확산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적정기술 활동가들도 등장했고 협동조합이나 법인 형태로 사업을 벌이는 조직들도 등장했습니다.


적정기술을 가장 많이 접목하고 있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공동체들입니다. 살아가려는 목적의식이 같고 삶의 방법을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 이런 곳을 공동체라고 부르지요. 생태적인 삶의 방식을 취하면 생태공동체, 영성을 통해 모이면 영성공동체, 교육을 함께 하는 곳이면 교육공동체, 공동의 사업을 기반으로 하면 사업공동체 등으로 불립니다. 적정기술을 생활 속에 도입해서 실천하고 더 개선해나갈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조직이 있다면 바로 공동체입니다. 이곳에선 굳이 적정기술입네 하는 것 없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죠.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적정기술은 불편한 기술입니다. 게다가 별로 효율도 좋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우선 첨단 기술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복잡한 전기제어장치나 요란한 IC칩 같은 것을 써서 자동으로 제어되는 장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디자인도 투박합니다. 공장에서 녹이고 멋진 틀에서 찍어서 만드는 제품은 아예 꿈도 꾸지 않는 것이지요. 플라스틱 같이 환경에 유해한 재료이면 피하기도 합니다. 싼 재료를 일부러 선택하기도 하구요, 재활용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전문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전문가로부터 배워서 내가 만들어 쓰면서 개선도 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삶을 택합니다. 


우리 삶에서 주거의 기본이 되는 집짓기를 예로 들어 볼까요? 현대의 집짓기 기술은 대부분 화학제품에 의지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단열재와 외장재는 플라스틱류이거나 복합소재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능과 외관은 좋을지 몰라도 환경에 유해하고 비생태적입니다. 이런 재료들을 만드는 과정 중에 소중한 자원을 낭비해야 하고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해야 하며, 생산과 운송을 위해 에너지를 소비해야 합니다. 생태계와 섞일 수도 없습니다. 사는 동안 환경호르몬이 땅과 물, 대기 중으로 방출되고, 사람 또한 아토피 같은 원인 모를 질병에 시달립니다. 생태계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달리 적정기술의 원칙에 따르면, 지역에서 나는 자원을 우선으로 선택합니다. 나무가 많은 지역이라면 목조건축을, 좋은 흙이 주변에서 널려 있다면 흙벽돌이나 흙부대 집을, 또 벼농사가 활발한 곳이라면 스트로베일 하우스를 선택합니다. 이런 자연재료는 튼튼하면서도 단열도 잘되고, 무엇보다 친환경적이며 값도 저렴합니다.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품앗이처럼 돌아가며 집을 지으면 저렴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한 애착심과 공동체 의식도 강해져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좋아지지요. 각자 재능에 맞추어 누군 전기를 담당하고, 누군 미장을 담당하는 등 역할을 나누다보면 일자리가 분배되지요. 대도시처럼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각박해지지 않아도 됩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살지 말아야 할 텐데 하면서 관성처럼 살아야 했던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도하고 자립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적정기술의 철학을 이해하고 원칙을 따르려는 동안 이러한 감수성과 역량이 생깁니다. 이러한 전환의 시도는 결국 미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고, 다음 세대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환경을 넘길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서울의 적정기술


서울은 적정기술의 선도도시입니다. 왜 그러냐구요? 현대 과학기술문명의 부작용을 어느 도시보다도 많이 경험해 왔고, 그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실험과 시도가 좋든 부족하든 간에 본보기가 되어 왔지 않았을까요? 그 예가 바로 국내 최초의 에너지 자립마을입니다. 원전 하나 줄이기로 베란다 태양광, 미니 태양광이 아파트마다 보급된 것도 멋진 사례입니다. 따릉이 자전거로 마을 사이를 이동합니다.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사회적 경제의 근간이 되는 풀뿌리 조직들은 작은 경제 속에서 협업합니다. 서울혁신파크, 다시세운, 문화비축기지 등 도시재생과 혁신 프로그램들이 속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른 도시가 채 시도하기도 전에 이미 사례를 만들고 교훈 거리를 만들어 지역으로 전파하고 있습니다. 


‘적정기술은 농촌이나 못사는 사람들한테나 어울려요.’ 라는 인식은 오해입니다. 몇몇 하드웨어를 지칭하는 것이라는 선입견도 더더욱 맞지 않습니다. 적정기술이 이 시대에 필요한 이유! 그것은 바로 지구생태계와 인간 자신을 위한 철학과 지켜야 할 원칙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을 어떤 목적과 기준에 의해 개발하고 실행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적정기술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작은 것을 지향하는 동안 우린 공감하기도 쉽고 시행착오를 수정하기도 쉽습니다. 거창하지 않아서 실천하기도 쉽습니다. 


'이렇게 만은 살 수 없을 것 같은데...'라는 문제의식! 이것이 바로 적정기술의 근간입니다. 2019서울적정기술한마당!! 이번 행사는 국내외적으로 적정기술이 잘 실천되어 오고 있는 마을과 공동체 속의 적정기술 사례를 모으고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전환의 시대에, ‘적정기술을 맛보세요’라고 외치는 자리입니다. 도시든 지방이든 나이와 성별, 직업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여 실천할 수 있는 기술철학! 7월 5, 6, 7일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강신호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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