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혁신파크 정문 옆 참여동에는 일차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소박한 가정의학과 의원이 있습니다. 바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의료사협)의 네 번째 사업소, ‘건강혁신살림의원’입니다. 살림의료사협은 2012년 조합원과 지역주민에게 제대로 된 일차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살림의원(은평 구산역)을 개원했고, 이후 운동클리닉 ‘다짐’, ‘살림치과’ 등을 운영해 왔습니다.
진정한 주치의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고민과 실천을 지속해온 살림의료사협은 지난해 7월 서울혁신파크에도 건강혁신살림의원을 열게 됐습니다. 지역 내 섬 같은 공간이 아닌, 지역주민의 필요에 부응하길 원했던 서울혁신파크와 살림의료사협의 뜻이 어우러진 결과였습니다. ‘건강혁신살림의원’은 개원 초부터 ‘조금 별난 병원’으로 조합원과 각계각층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드러내놓고 시도하지 못했던 ‘주치의 만들기’, 본인 병력을 포함한 과거력, 가족력뿐만 아니라 사회관계망과 생활 패턴, 생체 리듬 변화와 주치의의 소견까지 함께 기록하는 ‘나의 건강 역사 차트’, 의원 정기 방문과 최소한의 상담 시간 확보 등 일반 병원에서는 불가능할 서비스 실현에 대해 의문과 기대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과연, 지난 1년 동안 건강혁신살림의원과 주치의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결실을 이뤄냈을까요?
의료진도 처음, 이용자도 처음인 주치의 프로그램은 설명회와 지인 소개 등을 통해 혁신파크 입주 단체를 포함한 다양한 분들이 등록해주셨습니다. 정기 상담을 비롯해 감기나 배탈 같은 소소한 건강상의 문제부터 외상의 처치, 2차급 이상의 의료기관으로서의 의뢰까지 다양한 계기로 많은 분이 의원을 찾아주셨죠. 한 연수 프로그램 참여차 파크를 찾아오셨다가 미래청 입구에서 다쳐 아침 첫 환자로 오셨던 분,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흉통을 호소하셨던 분 등도 기억에 남지만, “살림의원이 옆에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고 말씀하실 때 가장 보람을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만큼 의료 서비스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죠.
몸과 마음 건강을 위해서는 내가 건강의 주체가 돼야 합니다. 병원은 그런 건강의 주체들이 자신을 제대로 보살피도록 도와야 하고요. 예방이나 건강교육 사업 등이 그 예입니다. 살림은 주치의 프로그램을 통해 충분한 상담 시간을 확보했고, 정기 만남을 통해 내원자들의 문제가 단순히 질병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치의 프로그램을 예약제로 운영하면서 의료인과 내원자는 신뢰를 쌓고 책임감을 느끼게 됐으며 의료진은 내담자의 변화에 민감해졌습니다. 유대를 통해 일방적 처방이 아닌 대화로 조율이 가능해졌고요. 프로그램 참가자 역시 건강의 주체가 되기 위해 자신을 더 잘 파악하고 우선으로 여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병원이 마음 편안한 곳이며,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 변화도 가능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조합이 연간 7000만 원 이상의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살림은 진정한 일차 의료기관으로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노하우를 쌓아왔습니다. 주치의 프로그램 운용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 제안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살림은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지역 건강증진을 위해 의료인과 지역주민이 협동해 의료서비스 제공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살림의 행보는 협동조합 7원칙에 덧붙인 살림만의 3원칙을 살펴볼 때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살림 원칙
1. 약자 우선과 다양성 존중
불평등과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모두 함께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2. 적정 의료와 건강증진 활동
믿을 수 있고 지속가능한 의료를 실현하고, 내가 내 건강의 주체가 됩니다.
3. 호혜적 돌봄
돌봄이 정의롭게 분배되는 구조를 만들어, 나이 들고 아파도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듭니다.
개원 1주년을 갓 넘긴 건강혁신살림의원은 요즘 혁신파크 주변 주민들을 포함하여 조합원이 더 늘고 있습니다. 서울시공공보건재단과 협업을 통해 그간의 성과 연구가 진행 중이며 작년 12월 말 신규 등록을 마감한 주치의 프로그램은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제2막을 준비 중입니다. 지난 5월부터는 주 1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시작하여 진정한 몸과 마음의 주치의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살림은 소통을 기반으로 환자와 주치의가 함께 건강한 성장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나를 제대로 잘 알고 있어 언제든 나의 문제를 보여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 따뜻하고 편안한 의원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애정어린 잔소리는 기본이지요.
글 김신애 건강혁신 살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