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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혁신파크 Mar 26. 2020

똑똑한 마스크맵 뒤에 숨겨진 네트워크의 힘

코로나19로 보는 아시아 사회혁신 네트워크

지난 2월, 비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목동 행복한 백화점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시민들 (출처:한국일보)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의 감염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필수 아이템이 된 마스크. 불과 몇 주전만 해도 마스크를 찾아 약국을 전전하거나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습니다. 이제는 정부의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마스크맵을 통해 실시간 재고 확인이 가능해졌습니다. 제작 배경을 들여다보면 대만과 일본, 한국 등의 아시아권 시빅 해커(civic hacker,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가)들의 유기적 소통을 통한 활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서울혁신파크가 위치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사회혁신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는 혁신 사례입니다. 아시아의 혁신가들을 연결하고 서로 결집하여 더 큰 사회혁신의 물결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그 과정을 함께 살펴봅시다.





분노로 시작된 변화의 바람 : g0v (거브제로)

코로나19 환자의 급증으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면서 대만의 발 빠른 마스크 정책이 한국에도 알려졌습니다. 정부의 공공 데이터를 활용한 마스크 재고 정보 플랫폼 제작으로 시민들의 불안감을 덜어준 대만의 g0v(거브제로:이하 g0v)는 2012년에 만들어진 오픈소스 온라인 플랫폼입니다. 대만 오드리탕 디지털총무정무위원(장관)을 비롯한 시빅 해커(civic hacker)들은 g0v를 통해 정보기술(IT)과 데이터를 활용하여 정부 활동을 감시하고 있으며, 대만의 대표적인 사회혁신사례를 만들어 왔습니다. 서울혁신센터는 2018년부터 오드리탕 장관, g0v의 활동가들과 교류의 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서울혁신파크를 방문한 오드리탕 대만 디지털총무정무위원(장관) (우측) / 시민과 개발자들이 수집한 정부의 공공데이터를 시각화한 g0v (거브제로) 웹사이트


g0v은 2012년 당시 정부가 제작한 경제부흥대책 광고를 본 시민의 분노로 시작되었습니다. 어떠한 정보나 설명도 없이, ‘여러분, 경제는 정말 복잡해요. 설명하기도 어려우니까 그저 정부를 따라오기만 하면 돼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광고는 유튜브를 통해 급속하게 확산되었고, 시민을 무시하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에 분노했습니다. 이 광고 사태를 계기로 몇 명의 개발자가 모여 대만의 대표 시빅해커 커뮤니티 g0v를 만들었습니다.


시민과 개발자들이 정부의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여 시각화하는 작업은 단 3일 만에 완성되었습니다. 정부가 예산을 어떤 분야에서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투명한 정보가 제공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g0v는 해바라기 학생운동, 타이난 지진, 가오슝 가스폭발, 미세먼지 등 대만의 사회 이슈 해결에 적극 동참해 왔습니다. 또한, g0v에서 활동했던 오드리탕이 디지털총무정무위원(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시민과 시민사회, 그리고 정부와의 더 활발한 소통과 협업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g0v는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 대란에서도 활약했습니다. 오드리탕 장관은 마스크 실명제가 시행되자마자 “시민이 가게에 왔다가 허탕 치지 않도록, 마스크 재고를 미리 알 수 있는 지도를 만들고 싶다"라며 g0v에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마침 '마스크 맵'을 제작하고 있던 한 개발자가 오드리탕 장관에게 "정부의 마스크 판매 데이터를 공개하면 지도를 좀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익히 알려진 “마스크 맵'은 이렇게 정부와 민간 영역이 발 빠르게 소통, 협업하여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대만의 마스크맵 웹사이트(https://mask.goodideas-studio.com/) 화면



본격적으로 아시아 네트워크 구축에 시동을 걸다 : 아시아 공동 해커톤 (FtO)


g0v는 2018년부터 동아시아권의 시빅 해커들과 교류하여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습니다. g0v의 국제 교류 그룹인 intl은 주로 한국 빠띠, g0v 홍콩, 일본 Code for Japan 등과 많은 교류를 했습니다. 2018년 연말에는 대만-한국-일본 3국의 공동 해커톤을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 시민들이 공동으로 겪고 있는 문제를 찾아 연대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취지였습니다.


‘面海松 Facing the Ocean Meet & Hack(FtO)’ 라고 이름 지어진 아시아 공동 해커톤은 2019년 6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대만 타이난에서 g0v 해커톤과 공동 개최하였고, 가짜 뉴스와 여성, 교육 등과 관련한 사회적 과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가 탄생했습니다.


아시아 공동 해커톤인 FtO 행사 (출처 : g0v 페이스북)

현재 공동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 하나를 소개하면 동아시아 여성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 대만, 일본, 홍콩 여성들의 이야기와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 Plus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 성소수자) 등의 성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 들의 인권, 페미니즘 운동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아카이브 사이트 <Herstory>도 오픈하였습니다. 각국의 살아있는 역사가 타임라인과 매핑으로 시각화되어 있으며 총 5개의 언어(한국어, 중국어, 광둥어, 일본어, 영어)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커톤 행사와 공동 프로젝트는 단순한 교류를 넘어 서로의 경험과 기술을 공유하여 새로운 협업을 이루어낸 사례입니다.



전 세계를 강타한 긴급사태 발생 : 코로나19


아시아 공동 해커톤인 FtO가 정기 행사로 자리잡길 희망하며 아시아 시빅 해커들은 네트워크를 꾸준히 유지하고 활동해 왔습니다. 세번 째 만남은 2020년 봄, 한국 제주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긴급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코로나19의 대확산입니다.


일본 Code for Japan의 창립자인 Seki Hal은 일본의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자 바로 대만 정부와 g0v의 협업을 통한 마스크 플랫폼 제작에 관한 글을 발표했습니다. 그 글은 순식간에 일본의 시빅 해커들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지자체의 큰 관심을 얻었습니다. 이후 민간과 지자체(도쿄)가 협업하여 대만 사례를 벤치마킹한 <Tokyo COVID-19 Task Force>가 탄생했습니다. 코로나19에 관련한 최신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웹사이트입니다.


‘Tokyo COVID-19 Task Force’는 일본 지자체에서 보기 드문 형태인 오픈소스로 운영되는 사이트입니다. 도쿄가 프로그램 코드와 디자인 데이터 등을 저장, 공개할 수 있는 깃허브(Github)를 열자마자 800번 이상 코드 갱신이 진행되어 깃허브 내 트렌드 전 세계 1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Code for Japan의 슬랙(Slack)협업을 위한 클라우드 기반 업무용 메신저 서비스은 순식간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며 열정적인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대만의 g0v 활동가들도 동참했습니다. 코드를 수정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일본에 있는 대만 교민들을 위해 중국어로 번역하였습니다. 또한 오픈소스를 활용하여 홋카이도카나카와현 등 기타 지역에서도 코로나 19 현황 사이트가 만들어졌습니다.


일본 Code for Japan의 창립자인 Seki Hal (출처 : heroesoftech) / 지난 한달간 Tokyo COVID-19 Task Force에 기록된 코드 작업수

당연히 한국의 시빅해커들도 빠지지 않고 동참했습니다. 대만에서 마스크 관련 플랫폼이 생긴 후, 한국의 해커들은 g0v활동가들과 소통하면서 대만 활동을 참고했습니다. 정부를 설득하고 공공데이터 전면 개방에 성공하면서, 한국도 마스크 관련 플랫폼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만의 개발자들도 한국의 마스크 지도 제작에 힘을 보탰습니다.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어 연대의 힘이 발휘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한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시아의 각 도시가 지나 온 역사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우리가 직면한 유사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아시아 단위의 ‘소통’과 ‘협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바로 서울혁신센터가 아시아 사회혁신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된 출발점입니다.


네트워크의 힘은 평소에는 잘 안 보이기 때문에 그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혹자는  아시아를 벗어나 더 선진적인 사례를 찾으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아시아 내에서 '연결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나날이 진화하는 아시아의 사회혁신 실험들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만 봐도 한 도시의 문제는 이제 그 도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우호적 관계는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평상시 관계 구축에 힘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사례도 기존에 구축된 네트워크 덕분에 빠른 시간 내에 효과적인 협업이 가능했습니다.


국경과 언어를 뛰어 넘은 국제 연대가 한국에서의 사회혁신실험에도 더 큰 가능성과 기회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 차원에서의 국제 네트워크 구축과 유지는 경제적, 인력적 한계가 있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입주단체를 지원하고 정부와 시민 그리고 혁신가를 이어 주는 서울혁신센터와 같은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발휘됩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더라도 곧 새로운 문제와 재난이 국경을 넘어 발생할 것이며, 각 도시마다 환경, 주거, 고용 등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혁신 관련 중간지원조직은 자신들만의 해외네트워크를 발굴하고 구축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트워크를 통해 혁신가들의 작은 네트워크를 더 크고 튼튼하게 만들게끔 지원할 수 있습니다. 중간지원조직이 발굴하고 운영하는 네트워크는 조직 내에서 활용될 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다양한 범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유연하게 활용이 가능합니다.


지난 8월, 파크에서 열린 '혁신파크포럼'에 참가한 국내외 혁신가들 /  ‘사회혁신 공유 공간 공동협약’을 맺는 모습


2019년 8월, 서울혁신파크는 ‘더 큰 연결’(Preparations for Greater Connection)을 주제로 ‘2019 혁신파크포럼’을 개최했습니다. 국내외 사회혁신 기관들이 참가한 포럼에서 서울혁신파크가 ‘아시아 사회혁신기관의 허브’로 성장하여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사회혁신 네트워크의 ‘심장’으로 성장해 나간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서울혁신센터는 2019년부터 아시아권 사회혁신 유관기관과의 우호적이고 구체적인 관계를 구축해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구축해 온 아시아 네트워크가 지속적인 추진과 확장으로 더 튼튼한 연결망이 되어 구성원들이 서로 성장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ㅣ전환기획팀 우에마에 마유코

정리 ㅣ 홍보문화팀 박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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