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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혁신파크 Jun 08. 2018

[서울혁신파크 혁신가 이야기]유지의의 사진아카이브연구소

#05 유지의의 사진아카이브연구소

유지의 사진아카이브연구소<서울혁신파크>


큰 책상 하나와 천장까지 쌓아올린 서적들이 전부인 사무실. 세 명의 연구원과 ‘지역아카이브프로젝트팀’으로 구성된 사진아카이브연구소의 공간은 단출하다. 꾸준히 출간돼온 책들 속엔 흑백사진과 사진 속 사람들의 입말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저마다 다른 시절을 끌어안은 마을과 사람들은 무언가 전해야 할 말이 있기라도 한 듯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아카이브연구소는 2004년 이경민 대표에 의해 문을 연 이래 사진에 새겨진 역사 속 작은 귀퉁이들을 하나하나 수집하고 연구해왔다. 수집된 사진과 자료들은 빛바랜 민중들의 삶을 여실히 드러낸다. '민주화운동 사진DB구축사업'과 2010 인문주간 공모행사 '기억과 윤리적 삶', 한국 근대 예술사진 아카이브 ‘카메라당과 예술사진시대’, 그리고 최근 은평구를 중심으로 아카이빙한 <통일로 12고개>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기록들을 통해 과거의 또 다른 나를 만나곤 한다. 


실용과 속도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난 가치
 

사진아카이브연구소 유지의 연구원은 사진사를 연구하고 있다. 정리되지 않은 근대 사진들은 물론 자료와 구술채록을 통해 사라진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고 정리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먼지 묻은 오랜 사진과 기억이 쌓여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의 작업실이 된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거쳤고, 역사적으로 여러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들이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중요한 사진 자료들이 많이 유실됐죠. 예전엔 사진에 대한 예술적 지위가 낮았고, 작가가 남긴 결과물에 가족들마저 큰 의미 부여를 못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비교적 근래 들어서야 그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지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유품을 태우는 관습도 영향을 줬고, 전쟁 통엔 어떤 사진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죄가 될까봐 땅에 묻거나 태우는 일이 많았어요. 사진에 대한 담론화란 건 사진을 어떻게 이해할지 기반이 되는 생각들인데,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문헌들조차 충분히 남아 있지 않죠. 역사의 빈 공간들이 많아요. 그래서 생존해 계신 사진가 분들의 구술 채록을 통해 증언을 듣고, 아카이빙을 하죠. 한편으론 그분들이 당시 어떤 경로로 사진 문화를 접했고, 사진을 공부하고 작업하셨는지 함께 듣고자 해요. 기억에 의존하다보니 팩트가 부정확할 때도 있지만, 정황상 자료의 빈 곳들을 알게 되죠. 여러 사진가들의 구술을 통해 전체적인 상을 재구성할 수 있고요.” 

“지금까지는 개인과 공공이 모두 사진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지 않았어요. 당장 이익이 되지 않고 실용성이 없으면 관심을 잘 안 가졌던 거죠. 과거에 대한 기억들이 쌓여 현재의 정체성을 이루는데, 그런 인식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은평도 그렇지만, 한국사회 자체가 엄청 빨리 변해요. 몇 달만 지나도 새 건물들이 우르르 들어서 버리죠. 저는 그런 변화들을 계속 기록으로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화라는 건 사람들이 공간을 오가면서 만들어 낸 것들이 계속 축적되면서 풍요로워지잖아요. 새로운 것들을 그 위에 쌓아가야 하는데, 우린 전부 밀어내고 다시 짓죠. 그게 발전이고 진보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기록문화가 발전하지 못한 요인이죠. 서울혁신파크도 사람과 공간이 맺는 관계가 시간에 따라 변하고, 쌓이면서 문화를 만들겠죠. 이걸 다시 밀어버리면? 그 관계들이 또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관계들을 원형 그대로 유지한다는 게 아니라, 새로 갱신되는 관계들을 연속성 있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발굴되지 않은 귀한 것들을 순발력 있게 기록하는 것


유 연구원은 대학 때부터 사진을 찍고 배웠다. 학과 사람들을 수동카메라로 찍어주고, 약품 냄새 나는 암실에서 오랜 시간 기다려 사진을 현상하는 일이 좋았다고. ‘사진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장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는 그를 움직이는 동력 중 하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아카이빙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는 어떤 '안타까움’ 때문이다. 

“사진아카이브연구소는 사진 중심으로 기록 문화를 만들어 가는 중이에요. 이런 일은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이벤트성으로 끝나기 쉽죠. 지자체, 혹은 기관에서 하면 더 좋을 일이고, 조금씩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 기반이 부족해요. 사진의 특징 중 하나가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생산되고 있다는 건데, 그래서 사람들이 그 의미를 쉽게 잊죠. 저는 사진이 갖고 있는 기록의 힘을 믿고, 그 중요성을 사람들이 인지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것이 사진아카이브연구소 출발의 실마리이기도 하고요. 저희처럼 작은 단위가 아카이브 작업에 있어 순발력 있게 대응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아카이브연구소는 올 여름부터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원로 작가 디지털 자료집 제작 지원사업'으로 원로사진가 육명심 선생의 사진 아카이브 및 구술채록을 진행한다. 작가의 전작 목록집을 만들고, 자료 수집, 인터뷰, 연보 정리, 연구 논문까지, 한 사람의 생애를 정리하는 작업이 만만찮은 탓에 예정된 8개월의 기간이 짧게만 느껴질 것 같다고. 그런 그에게서 정리하지 못한 채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기억과 역사에 대한 조바심이 느껴졌다. 시간과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것이 어디 기억과 사진뿐이겠는가.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시간의 조각들이 우리가 사는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글, 사진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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