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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Mar 04. 2022

[픽션]극락식당

1-4

식당의 비상구로 조용히 사라진 사자는 어느덧 '저승행정센터'라고 쓰인 회색의 대리석과 콘크리트로 벽과 바닥이 이루어져 반질반질한 표면에 흑임자가 박혀있는 듯한 외벽, 그리고 푸른색과 짙은 녹색이 감도는 커다란 조선식 기와를 지붕으로 삼은 건물로 걸어 들어갔다. 저승행정센터의 입구에는 이승에서 사람들이 오고 다니는 '행정복지센터'라는 곳의 입구처럼 무인서류 발급 기계와 키오스크가 마련되어 사자처럼 저승행정센터에 볼 일이 있으나 서류만 발급받으면 되는 저승의 직원들 혹은 민원 영가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검고 붉은색이 섞인 기계의 겉면과 다채로운 색감으로 번쩍이는 액정화면이 사자의 창백한 피부에 비추며 하이라이트를 쏘는 것을 무시하며 사자는 눈앞에 보이는 '친절 봉사 성불'이라고 쓰인 통유리문을 밀었다.


띵- 동-


2135번 민원 영가님, 3번 창구로 오십시오


띵- 동-


2136번 민원 영가님, 5번 창구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사자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일반 민원 및 청구는 옆에 보이는 번호표를...."


회색의 와이셔츠와 베스트, 검은 정장 바지를 차려입은 저승행정센터의 안내직원이 '환대용' 미소와 함께 사자를 반겼다, 하지만 사자는


"센터장, 있나."


안내직원은 자신이 뭔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자신의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사자에게 다시 물었다.


"센터장 말씀이십니까?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미리 약속은 잡으셨는지요?"


"아니, 하지만..."


안내 직원은 간드러진 목소리로 재빨리 사자의 말을 끊는다. 머리를 곱게 빗고 자주색과 금색이 섞인 비녀를 꽂은 그녀의 머리카락은 흔들림이 없다.


"아무리 사자님이라도 센터장님과 그냥 즉석으로 면담을 하실 수는 없습니다, 미리 면담 신청을 하셔야...."


"후우.... 신참인 건가."


'신참'이라는 말이 사자의 입에서 나오자 잠시 주춤했던 안내 직원이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센터장님이 이곳에 항상 계시는 것은 아니고 외부 일정이 있을 때도 있기 때문에..."


사자가 주머니에 넣어놓기만 했던 백옥과도 같은 하얀 손을 꺼내 검은 모자를 잠시 벗고 이마와 눈을 덮었다, 짧게 자른 회색의 스포츠형 머리가 건물의 형광등 조명에 비쳐 빛나는 듯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벗은 검은색 중절모로 아직 그에게 자신의 상사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강조하고 있는 안내 직원의 얼굴을 덮었다.


"우, 우웁"


"안내, 그만. 다물어."


"사자님, 도를 넘으시는군요!"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화가 난 직원이 사자의 중절모를 잡아 치우며 화를 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사자의 안광이 잠시 두어 번 번쩍인다.


"5급 저승행정직, 저승행정센터 센터장 노서. 어딨나."


순간, 저승행정복지센터에 있던 모든 저승 직원들이 일하고 있던 서류들과 필기구들이 날아가거나 펄럭거리고, 민원 해결을 위해 번호표를 뽑아서 기다리던 영가들이 오싹함을 느낄 정도로 낮고 굵은 그의 목소리는 소리를 지른 것은 아니었지만, 크게 울리는 영파가 되어 멀리 그리고  저승행정센터의 내부가 모두 울릴 정도로 뻗어나갔다.


"허........ 이건...?"


그 울림을 바로 옆에서 느껴버린 안내 직원은 그 고운 머리에서 잔머리 카락들이 삐죽거리며 새어 나올 정도로 놀랐는지 미소를 머금은 실눈을 뜨고 있던 방금과는 달리 놀란 토끼눈으로 사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센터의 2층으로 이어진 계단에서 키는 작고 마르지만 얇고 가는 긴 수염이 양 옆으로 난 나이 지긋한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와인색 와이셔츠와 검은 정장 바지에 검은색 넥타이를 맨 사내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사자 앞으로 뛰어 오자마자 90도로 배꼽인사를 연거푸 그에게 날리며 입을 열었다.


"아이고, 사자님 오셨습니까! 오시면 바로 제 방으로 오시면 되는데 이런 누추한 곳에서 이러고 계십니까요!!"


사자는 붉은 안광이 사라진 회색의 눈동자로 옆에 있는 안내 직원을 빤히 바라보며 검지 손가락을 펴서 가리켰다.


"교육이 필요하군, 신참."


'5급 저승행정직, 저승행정센터 센터장 노서'라고 불린 남자는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있는 안내 직원을 길고 작은 눈으로 흘기며 이를 앙다물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웃는 얼굴로 사자에게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는 짤은 팔로 안내 직원의 어깨를 눌러 함께 90도 인사를 하게 만들며,


"이번 차시에 새로 들어온 직원입니다요, 저를 봐서라도 노여움을 푸시고 차라도 한 잔 하시지요, 사자님. 헤헤헤헤. 어허, 자네! 어서 사과드리지 못해!"


"죄, 죄송합니다! 제가 사자님을 몰라 뵙고 그만"


사자는 그녀의 손에서 검은 중절모를 잡아 건네 받고 다시 머리에 눌러쓰며 노서에게 눈을 돌리며 말했다.


"필요하다, 도움."


"네네, 분부만 하십시오, 나리."


"'명순'이라는 이름, '이상걸'이라는 영가의 아내. 사후 세계로 넘어온 지 오래된 것 같다. 찾을 수 있나."


"아이, 그러믄입죠. 차는 어떤 걸로 드시겠습니까, 나리."


"저번에 마셨던 것."


노서는 사자 앞에서 살짝 허리를 굽히고 왼쪽 팔을 앞으로 내밀며 앞으로 사자를 모시고 나아갔다, 혼잡스러운 센터 안이었지만 방금 전의 '영파'로 인해서 잠시 가라앉은 공기, 그리고 약간 다른 의미로 주목을 받고 있는 사자와 노서였기에 그들은 길게 늘어져있는 민원 창구와 업무 책상, 컴퓨터와 이런저런 기계를 사이를 뚫고 2층으로 나아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사자가 열무김치의 요리법에 대한 힌트를 얻으러 잠시 떠난 사이, 바에 남은 상걸과 마스터는 바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있었다. 생전 자신이 좋아하는 막걸리가 바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상걸은 생에서도 먹은 지 오래되었던 막걸리와 전이 곁들인 간단한 1인 주안상을 마스터에게 받고서는 기쁜 얼굴이었다. 얇은 달걀물에 지져진 굴전, 그 옆에 막 강판에 갈려 익혀진 감자전에 동그랑땡이 담긴 모둠전 한상. 그리고 사발로 들이키는 막걸리 한잔. 상걸은 굴전을 한입 하고는 그 한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크으... 이미 내가 죽었다는 것도 얼떨떨하지만, 죽고 나서 이런 곳이 있는 것도 놀랍고... 좋아하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놀랍군요, 요리사 양반."


상걸이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나게 즐기는 모습을 직관하고 있는 마스터는 흐뭇한 얼굴을 하며 자신이 만든 전과 막걸리를 한입 했다.


"호호, 별말씀을요. 저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적잖이 놀랐어요, 저승에 이런 곳을 만들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이승에서 갑자기 저승으로 오는 영가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시행할 줄 아는 옥황상제님과 염라대왕님께 감사해야겠지요, 호호.."


"아하... 그렇군요... 영들이 있는 세계가 이승보다 나은 것이 있기도 하네요."


마스터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고 하잖아요. 삶의 가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상걸은 다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어두워지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막걸리 한잔을 들이켠다. 그 모습을 본 마스터는 괜히 미안했는지 밝은 웃음을 띄며 상걸에게 물었다.


"보아하니 아내분께서 요리를 잘하셨던가 봐요, '명순'씨라고 했나요? 아내분은 어떤 분이셨어요?"


'명순'이라고 불린 아내의 이름을 들은 상걸은 이내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살짝 홍조가 도는 얼굴로 입을 연다.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굳이 내 아내라서가 아니라 누가 봐도 참 이쁜 여자였지요... 그녀를 처음 봤던 것은 읍내 빵집에서였습니다... 그날은 친구 녀석에게 빌린 양복을 겨우 차려입고 나갔었는데...."


상걸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들이 앉아있던 바의 배경이, 다시 휘리릭하고 돌아가며 상걸의 기억이 반영된 시공간으로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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