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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Mar 06. 2022

[픽션]극락식당

1-5

"명순을 처음 봤던 것은 내가 27살 때의 일이었소... 그때만 해도 남자가 20대 후반에도 결혼을 못하면 어디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옛날이었지... 헛헛.... 어렸을 때부터 태어나서 얼마 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소.. 그러다 보니 집안이 가난해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를 못해서 어머니를 도와 농사만 짓고 일만 하면서 집안 가장 노릇을 하다 보니 혼기를 놓쳤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소... 봄날이었지.."


상걸이 살던 도시의 읍내, 한적한 오후. 해는 따뜻하고 바람은 살랑이고 공기 중에 떠다니던 꽃가루와 꽃잎들이 그 전날 내린 봄비에 흐르고 길가 가장자리에 눈물 자국처럼 묻은 날이었다. '대한당'이라는 궁서체의 흰 글자가 짙은 갈색 바탕에 깔끔하게 박혀있는 간판이 걸린 빵집, '대한당'이라는 글씨가 붙어있는 통유리창 너머 고풍스러운 원목가구에 어색한 양복을 입은 사내가 앉아있다. 회색의 세로선이 보이는 어깨가 튼튼한 정장을 입고 동백기름으로 가르마를 정리한 그는 그날 아침 자신의 어머니가 간곡히 부탁하면서 말하는 장면이 문득 떠올라 눈을 감았다 떴다.


'상걸아, 이 애미가 이장님께 부탁해서 겨우 만든 선자리니까, 꼭 잘하고 오니라. 느이 아버지가 입으시던 양복을 새벽에 다려서 걸어놨으니 입고 가고, 한 벌 밖에 없으니 조심 하그라. 여기 읍내 은행 다니는 참한 아가씨라는데...'


"아이고, 엄니... 그래도 이걸 어제 알려주면 여자는 만나본 적도 없는 제가 어쩐데요..."


상걸은 침을 꿀꺽 삼키며 미리 주문해둔 애꿎은 우유만 목젖이 꿀꺽거릴 정도로 삼켰다, 진정될 것 같던 긴장된 마음이 풀릴 것 같으면서도 진정되지 않았다.


딸랑


정사각형의 유리가 창문처럼 장식된 빵집의 문이 열리며 단발머리, 하얀 피부에 하늘거리는 꽃무늬 원피스를 단아하게 차려입은 아가씨가 등장했다. 시간은 오후 3시, 빵집의 테이블에는 어색한 양복의 청년 외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자 자신이 오늘 만나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직감한 그녀는 곧장 상걸에게로 향했다.


"저.... 오늘 맞선 나오신 분, 맞죠?"


배꼽부터 심장, 머리까지 울리는 긴장감으로 시야가 좁아져서 우유 잔만 멍하니 바라보던 상걸은 자신의 귀 오른쪽에서 자신의 공간을 깨뜨리고 들어온 청아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자신을 찾아온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읍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잡티 없는 흰 피부, 크고 맑은 눈동자, 도시 냄새가 물씬 나는 향기와 꽃무늬의 원피스, 상걸은 놀라며 앉아있던 탁자와 의자를 치며 일어났다.


"으아!"


쨍그랑!


"꺄악!"


"으악!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가 탁자에 놓고 마시던 우유가 들어있던 유리잔이 넘어지며 깨졌고 우유는 그만 애석하게도 상걸이 입고 있던 양복을 덮쳤다. 상걸의 맞선녀, 김명순은 자신이 어깨에 걸고 있던 핸드백에서 연노랑색의 손수건을 꺼내어 상걸에게 건네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제가 이, 칠칠맞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잠시 우유를 맞아 시무룩해진 상걸을 위로하며 명순은 속으로 빙긋 웃었다. 어디인가 어수룩해 보이고 못 미덥게 보이는 사람이지만, 사람은 성실하고 착한 느낌을 받았다. 명순이 건네준 손수건으로 우유가 묻은 정장 바지를 닦는 상걸도 손수건에서 나는 희미한 여성의 향기에 자신의 마음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아는 세상의 여성들, 어머니와 여동생들 혹은 학교에서 보던 이웃의 자신과 비슷한 상황의 여성들과는 다른 세상의 여성.


"처음 뵙네요, 저는 김명순입니다. 읍내 농협에서 근무해요."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상걸이고.... 쌀농사도 짓고 보리농사도 짓고... 소도 몇 마리 키우고 하는 농부입니다.. 하하..."


그 이후로 잠시,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양 볼이 발그레 상기된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니 명순은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었고 상걸은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바 너머에서 자신의 양손을 부여잡은 채 얘기를 듣고 있는 마스터를 바라보며 상걸은 청춘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행복한 듯, 계속 얘기를 이어나갔다.


"우와... 예전에 봤던 드라마 같아요..."


"나 같은 초라한 농부로서는 감히 생각도 못 해볼 대단한 아가씨였어요, 그때 우리 마누라는... 후에 우리 집 사정을 생각해준 이장님이 한 번이라도 만나보기라도 해 주면 안 되겠냐는 부탁에 떠밀리듯 나왔지만 얘기를 조금 나눠보니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허헛, 내가 이런 말하기는 민망시럽구료... 그렇게 우리는 20여년을 함께 살았소... 아들 둘에 딸 둘.... 우여곡절과 많은 어려운 일이 있었고, 겨우 입에 풀칠만 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함께 마주 잡은 두 손을 놓치지 않고 살았소... 명순이도 우리 어머니께 잘했고 내 엄니도 명순에게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많이 알려주셨지... 그런데... 휴.."





"여기인가, 아마도."


상걸이 바에서 얘기를 할 때 보았던 그 시공간 속의 상걸의 읍내와 마을이 사자의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저승 1구역의 행정복지센터장 노서의 도움을 받아 저승 한성특별시에서 시외버스와 시내버스, 마을버스를 갈아타며 겨우 도착한 곳. 마침 계절은 사자가 마스터와 봤던 그 장면처럼 무더운 여름이라 사자는 이미 입고 있던 검은색의 중절모와 코트를 벗어던지고 반팔 셔츠와 얇은 면바지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흰 반팔 셔츠에 검은 넥타이와 검은 바지. 그는 창백한 손으로 어디선가 전통 죽선을 꺼내어 천천히 파닥이며 흐르는 땀을 식혔다.


"멀군, 예상보다."


저승은 태초부터 저승으로 오게 된 영들이 살아가야 할 땅이 무한하게 필요하기에 이승과는 시공간의 크기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한히 광활했다. 영들의 수가 워낙 많기도 한데, 살던 위치가 겹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아서 영들 사이에 불만이 없도록 같은 지역에 서로 겹치지 않게 살도록 정책을 만든 옥황상제의 배려였다. 그 덕분에 이승에서는 인구가 10만 정도 되는 소규모의 도시가 저승에서는 20만 혹은 30만까지도 수용할 수 있을 정도 크기의 도시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렇기에 이승에서는 거리와 시간에 상관없이 영체로 마음껏 어디든지 오갈 수 있는 사자들마저, 저승에서는 이승에서 사람들이 교통수단을 통해 이동을 하고 여행을 하는 것처럼, 특정한 영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먼 거리를 저승의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이동해야 했다. 이승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거주하는 존재가 '영체'라는 것 외에는 이승과 비슷한 것이 많은 곳이 저승이었다.


사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노서가 손수 건네준 주소지를 다시 확인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는 작은 플라스틱 막대기가 살짝살짝 움직이며 그가 달달한 간식을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승안천시 중앙동 안락 1길 127 저편e세상 아파트 404동 601호'


저 멀리 눈앞에 보이는, 번화가와 산맥, 논밭들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키 큰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사자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


"이제는 별게 다 들어오는군."


그래도 평범한 일개의 영이 아닌 사자인지라 빠르게 걸음을 걸어 검은 대리석 벽에 금색의 글씨가 양각으로 박힌 '저편e세상'이라는 장식이 반기는 호화스러운 아파트의 거대 신전과도 같은 입구를 지나 입구 한쪽에 걸려있던 '저편e세상 단지 안내도'를 보고 404동의 601호로 향했다. 이승에서 볼 수 있는 큰 아파트 단지와도 같은 구조,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영과 주변의 정자에서 쉬고 있는 젊거나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모습의 영들.


"신도시 계획, 여기가 첫 시범도시라고 했었나. 어색하군."


영들의 주거 취향을 존중하여 맞춰주겠다는 옥황상제의 도시계획에 따라 원래는 한옥으로만 구성되어있던 모든 도시들은 그 외에 한옥이나 양옥의 단독주택, 작은 규모의 연립주택,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가집이나 벽돌집, 시멘트 집, 황토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 그리고 아파트 단지로 구성된 신도시등으로 나뉘어 시범사업에 들어갔는데 찾아온 곳을 보아하니 사자가 도착한 곳은 아파트 신도시 사업의 시범도시였다.


이승의 아파트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404호 앞에 도착한 그는 문 좌측에 달려있는 비디오와 스피커가 외장 된 초인종을 누르려다 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을 보고는 문고리를 잡고 열었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진한 녹림이 우거진, 살짝 울퉁불퉁한 검회색의 돌판이 깔린 실내정원이 나타났다. 하얀색으로 칠해진 철선으로 이루어진 의자와 탁자에 마주 보며 차를 마시던 두 명의 여인 중 단발머리에 사자만큼 피부가 하얀 피부의 영은 자신의 집이 열리며 창백한 검은 정장의 사내가 들어오자 토끼눈으로 입을 열었다.


"누, 누구세요? 어떻게 들어오셨죠?"


"실례하지. 문이 열려있더군, 초인종을 누르려 했는데."


사자는 주머니에서 황금의 도깨비 얼굴이 새겨진 '사자의 패'를 꺼내 보이며 자신을 보고 얼어붙은 두 여인, 정확인 두 여자의 영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좋은 결과를 보이고 있지는 않았다. 사자가 이미 저승세계로 넘어온 영을 찾아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찾아가게 된다면 보통 그것은 그리 좋지 않은 이유로 가는 것이었다.


"영을 찾고 있다. 이상걸의 처, 김명순."


"저예요, 무슨 일이시죠?"


무덤덤하고 변화 없는 냉정한 얼굴로 사자는 두 영에게 뚜벅뚜벅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사자는 두 영의 주위가 살며시 떨리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겁을 먹은 것이다. 이승에 남은 영의 '처리'를 위해서라면 그것은 사자에게 반갑고 유리한 상황이겠지만, 영들과의 대화가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중요한 일이다, 얘기 좀 하지."


"네?"


두서도 없는 사자의 단도직입적인 요구 해 무섭고 당황한 고(故) 김명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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