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로 Mar 09. 2022

[픽션]극락식당

1-6

김명순(정확히는 '저승의' 김명순)은 자신의 경험으로는 2번째로 눈에 담는 흑백으로 맞춰 입은 신사다운 복장의 사자가 자신이 사는 집에 찾아오자 생각보다 당황했지만 사자에게서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알고 그를 손님으로 맞이했다.


영가들에게 사실 저승사자라는 존재는 그리 달갑지는 않은 존재이다, 자신들이 이승의 삶에서 저승으로 떠나올 때 처음으로 맞닥뜨려서 저승으로 '끌고' 오는 존재이기 때문에 저승사자의 방문이 없는 한 그 목숨이 계속 이승에 남아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에 있는 것이 낫다'라는, 아주 먼 옛날 저승으로 우연히 불청객과도 같은 방문을 했었던 조상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닌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승에서 '살아있다'라는 느낌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영가들에게는 영겁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강제로 떠나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기분이기 때문이었다.


각 영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저승에서의 또 다른 삶이 시작되는 것에 대해서 적응을 하고 나면 그래도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시간 속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영'으로 사는 것도 꽤 괜찮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영가도 많았지만, 그래도 평범한 영가들이 저승사자들에 대해서 갖는 반감은 적지 않았다. '저승사자만 오지 않았다면...'이라는 생각을 갖는 영가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명순과 또 다른 여인이 앉아있던 테이블에는 또 다른 하얀색의 철제 의자가 놓여지고 그 앞에는 또 다른 찻잔이 놓여져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카키색의 찻잔 그릇 위로 중간중간 주름이 올라온 카키색의 자기 찻잔에 담긴 결명자차를 한 모금 들이킨 사자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두 영가의 시선을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김명순, 너에게서 필요한 것이 있다."


사자를 보면서 아직 겁먹은 것이 풀리지 않아 긴장된 얼굴의 명순.


"제가 사자님을 위해 무엇을 해드릴 수 있죠?"


"열무김치, 너의 남편 이상걸이 너의 열무김치를 먹고 싶어 한다."


'이상걸'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머리 위로 물음표와 느낌표가 오가는 명순, 자신의 오른편에 마주 앉아있던 여인을 바라보자, 명순의 시선을 받은 여인도 물음표를 띄우며 답한다.


"이서방이...? 설마... 죽은 겐가..."


"어머... 엄마, 벌써 그렇게 되었나 봐. 저승에서만 사느라 시간 개념이 있어야지, 그 인간이 이제야 죽을 나이가 된 건가요?"


김명순에게 '엄마'라고 불린 여인과 김명순이 동시에 자신을 쳐다보면서 묻자 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저승 출입심사 전, 식당에서 대기 중이다."


"그런데 열무김치를 먹고 싶어 한다고요?"


"그렇다, 너희들도 이곳에 오기 전에 그 식당을 지나쳐오지 않았나."


여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저도 거기서 우리 엄마가 저 어릴 적부터 만들어주었던 열무김치를 달라고 해서 당시 사자님이 열무김치를 갖다 주었는데... 그때 당시에 식당 주방에 건네주었던 열무김치의 요리법이 남아있지 않은 건가요?"


명순이 눈썹을 위로 올리며 신기하다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사자는 무미건조한 표정을 유지했다.


"식당의 마스터가 그 열무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을 보아, 그런 것 같더군. 그리고 식당의 마스터와 담당 사자는 저승 영가복지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인사발령이 새로 나게 되어있다. 그 기록을 남겨놓지 않았다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겠지. 네가 그 식당에서 식사를 했던 것이 언제였지?"


명순은 눈을 오른쪽 위로 굴리며 곰곰이 생각하다 자신의 '엄마', '오순례'를 바라보며 물었다.


"엄마, 내가 여기 언제 왔지? 기억해?"


"으응.... 나도 잘 모르겠구나... 그때의 그 열무김치 비법은 내가 주기는 했어... 그래서 열무김치 하는 건 누워서 떡먹기이고 말고.."


명순은 고운 분홍 빛깔의 한복 저고리와 노란 치마를 차려입고 옥색 비녀를 말아 꽂은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와 함께 양옆으로 나풀거리는 명순의 짧은 흑단발.


"아니, 엄마, 그 열무김치 만드는 법은 나도 아는데... 내가 마흔셋에 죽었던 것은 기억하는데 말이야..."


'열무김치 만드는 법을 안다'라는 얘기가 나오자 사자의 눈썹이 잠시 꿈틀거렸다, 열무김치의 요리법이 있다면 명순이나 오순례가 언제 그 열무김치의 요리법을 식당에 건네주었는지는 상관이 없었다. 그가 필요한 것은 마스터에게 건네줄 요리법이기에.


"그럼 됐다, 너희가 언제 저승으로 와서 요리법을 건네주었는지는 상관이 없다. 나에게 열무김치 요리법을 건네줄 수 있겠나."


사자의 명령과도 같은 부탁에 명순과 순례의 입에서 열무김치를 만드는 비법이 기계처럼 새어 나오고 그것을 머릿속에 담아 기억해 마스터에게로 가져가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은 신경 쓰지 않는지, 이상걸에게 열무김치를 해줄 요리법을 달라는 말에 명순은,


"죄송하지만, 내가 그 인간에게 해줄 열무김치는 없네요."


그 대답과 함께 사자와 두 영가가 앉아있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순례의 눈은 크게 떠졌고, 사자의 오른쪽 눈이 왼쪽 눈보다 크게 떠지며 얼굴에는 힘이 들어갔다.


"뭐?"


명순은 사자로부터 고개를 휙 하고 돌리며 차 한잔을 호로록 마시더니 식탁이 '타앙'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내려놨다.


"싫다고요, 제 말 못 들으셨어요?"


"....... 이유는?"


"자기 마누라 죽어가는 데 얼굴도 내비치 않은 인간인데, 내가 뭘 주고 싶겠어요?"

 

"........ 허."


하얗고 큰 눈동자에 흑단발, 그리고 꽃무늬 원피스를 입어 바람이 불면 어딘가로 날아갈 것 같은 전성기의 모습을 가진 명순의 영이 그러한 대답을 할 것이라고는 사자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사자의 생각으로는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이었다.


"얘, 그만큼 시간이 지났으면 좀 용서해줄 만하지 않니...? 그래도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그랬던 사람이잖니. 이미 저승에 온 건데.... 이서방도 곧 이쪽으로 올 거고..."


명순과 사자 중간에 불안한 눈빛으로 샌드위치처럼 끼여서 얼음처럼 굳어가는 분위기로 안절부절못한 순례, 그녀를 명순은 높은 목소리로 쏘아붙인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그때만 생각하면 내가 서러워서 정말... 흑흑... 그 나이에 아이들을 남겨놓고 저승에 와야 했던 내 마음을 엄마가 알아? 내가 아픈데도 그 인간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어. 나쁜 인간."


"그래도 이서방이 저승에서라도 먹고 싶다잖니... 그 열무김치 어떻게 하는지만 사자님께 알려드리면 되는 건데."


"내가 주기 싫다니까! 그렇게 먹고 싶었으면 내가 살아있을 때 잘해주고 많이 먹었어야지! 그렇게 나를 애들과 고향에 남겨두고 떠나지 말았어야지!"


"에휴...."


"엉엉.... 엉엉엉.... 나쁜 인간! 이제 와서 뭘 달라고? 염치도 없어! 그렇게 주고 싶으면 엄마가 주던가!!!"


"야, 내가 해주던 열무김치랑 네가 이서방에게 해주던 열무김치는 다르다고 네가 얘기했었잖니."


"그러니까, 싫다고!"


사자는 명순과 순례 사이의 '상걸'에게 열무김치를 먹이게 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논쟁을 보며, 그저 온순한 영혼으로만 보였던 명순과 성실한 농부처럼만 보였던 상걸의 부부 사이에는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저승의 '사자'가 되어 심장이라는 것은 없어진 지 오래인 그였지만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후우......... 멋지군."


그는 손으로 자신의 눈을 덮으며 지친 한숨을 내뱉었다. '하루'라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저승에서, 하루가 더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바 혹은 식당의 부엌 편에 앉은 마스터와 상걸은 아직 끝나지 않은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상걸과 그의 아내와의 러브스토리가 막 끝난 참이라 달달해진 눈빛으로 마스터는,


"상걸 씨는 어떤 남편이었어요? 아내분한테 엄청 잘해주셨을 것 같아, 공처가? 사랑꾼?"


"허허허.....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아내한테 못해줬던 것이 많아 미안하기만 해요. 그저 고생만 시키고 호강은 못 시켜줬죠.."


마스터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상걸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 그런 게 있었어요? 뭘 그렇게 못해주셨는데요?"


"음... 아내에게는 너무나 미안한 일이죠.... 돈 몇 푼을 더 벌겠다고 다른 곳에서 일을 하러 갔었는데..."


그들을 둘러싼 바의 배경이 다시 한번 휘돌아치며 시공간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스터는 상걸의 기억 속, 그와 명순이 아이들과 살던 집에 서 있었다. 이미 어둑어둑한 땅거미가 옅게 내려앉은 하늘과 그에 대조된, 시멘트 벽과 기와로 이루어진 집, 불투명한 유리로 장식된 미닫이문은 환하게 밝았다. 하지만 그 너머로 들려오는 대화의 내용은 그 밝은 집에 어두운 바람을 몰고 오는 것 같았다.


"여보, 지금 뭐라고 한 거예요? 어디로 가겠다고요? 그럼 우리도 가는 거예요?"





작가의 이전글 [픽션]극락식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