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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Mar 12. 2022

[픽션]극락식당

1-7


당황하고 놀란 명순의 외침에 상걸의 답은 의외로 덤덤했다, 이미 이러한 반응을 예상했던 것처럼.


"아니오, 나 혼자 가겠소. 더 이상은 농사일이 힘들어 못하겠으니, 서울에 좀 다녀오리다. 요즘은 서울에서 사람을 많이 필요로 하고 돈도 많이 준다니 우리 애들 대학교까지 보내려면 내가 이렇게라도 일을 많이 하는 게 낫지 않겠소."


녹색 새마을 모자에 회색 점퍼를 입고 팔짱을 낀 상걸이 말을 마치자, 자주색 면티에 알록달록한 무늬가 들어간 고무줄 바지를 입은 명순이 일어나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렇다고 그런 결정을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하는 게 세상 어디 있는 일이에요, 지나가는 동네 사람  하나라도 붙잡고 물어봐요, 당신이 하는 얘기가 맞는 건지."


"하지만 더 이상 지금처럼 하는 소작농의 농사일로는 애들 키우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당신도 알잖아, 여보. 애들이 장학금을 받는다고 해도 대학교에서 공부하며 먹고살려면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당신 혼자 그렇게 가서 일하고 돈 많이 벌어온다고 해서 살림살이가 얼마나 나아진다고요, 거기다가 우리 애들은 아직 집에 아빠가 필요해요. 여보, 가지 말아요, 네? 집이 조금 부족해도 우리 준이, 훈이, 연이랑 나랑 어떻게든 꾸려서 먹고살자고요."

 

명순의 두 뺨에는 상걸을 붙잡을 진심이 담긴 눈물방울이 상걸의 모습을 굴곡지게 비추며 흘러내렸다. 옷소매로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자리잡기 시작한 눈가를 닦아내는 명순의 모습과 반대로 상걸은 굳게 다문 입을 열지 않은 채 팔과 다리를 꼬은 채로 애꿎은 벽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들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듯 방안의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아니야, 내가 없다고 해도 애들에게는 당신이 있잖소. 적어도 우리 애들은 나처럼 자라서 농사만 짓을 줄 아는 인간이 되게 하지는 않을 거야. 겨우 입에다가 풀칠만 할 수 있는 이런 삶은 이제, 나는 지쳤소. 고래 등 같은 넓은 기와집에 큰 정원이 있는 그런 집을 갖고 사는 것은 아니라도, 당신과 우리 애들 호강시켜주겠어. 서울에서 일하면 지금 내가 농사로 버는 돈의 두, 세배는 더 쳐서 받는다고 하오, 이미 일하기로 결정된 거, 내일 새벽에 첫차 타고 가리다. 애들한테는 잘 얘기해주시오. 딱 1년 정도만 다녀오겠소, 내 가끔 편지하리다."


"여보! 어쩜 그렇게 당신만 생각하나요! 당신 없이 그렇게 받은 돈으로 애들이 대학교도 가고 내가 호강한다고 해도 우리가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요? 진정 그렇게 생각하냐고요!"


명순이 그의 팔을 잡고 매달리며 울자, 상걸은 명순의 팔을 뿌리치며 입을 열었다.


"사람은 돈이 있어야 행복한 거야! 나는 우리 준이, 훈이, 연이가 나처럼 소작농으로 빌어먹으면서 사는 꼴은 못 보겠어. 보란 듯이 돈 벌어서 애들도 출세시킬 거라고."

 

그러자 명순은 이를 꽉 물며 함께 소리 지르며 맞받아쳤다.


"그놈의 돈, 돈, 돈! 언제 우리가 집에 돈이 많아서 웃으면서 살았나요! 나는 우리가 먹을 것은 좀 없고 농사일로 새벽부터 고생할지는 몰라도 당신이랑 애들과 함께 끼니만 때워도 즐거웠어요, 여보, 서울 가지 말고 지금처럼 살아요. 애들은 공부도 잘하고 있으니 우리가 조금만 도와주면 알아서 잘할 거라고요. 흑... 흑...."


"얘기는 끝났소, 이미 서울에도 내일부터 일하기로 했어, 더 이상 말 꺼내지 마시오. 내가 보내주는 돈으로 잘 먹고 잘 모을 생각만 하라고."






이상걸이 자신의 회상을 그만두자 마스터와 이상걸이 앉아있던 식당의 배경은 다시 원래의 원목 인테리어로 돌아왔고 상걸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새벽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서울로 떠났지요... 물론 이런저런 일을 돈이 되는 건 닥치는 대로, 개처럼 돈을 번다는 말은 그럴 때 쓰는 말인 것이오."


"그 후로 아내분과 자식분들과 연락을 한 적은 없으세요?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는데, 자식들 입장에서는 많이 서운했겠어요."


상걸은 쓴웃음을 지으며 손에 잡고 있던 탁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마스터에게 한잔을 더 부탁하는 사발을 내밀며, 그리고 한잔을 더 받았다. 벌컥거리며 막걸리 한 사발을 다시 비우고, 입을 닦고, '쓰읍'하는 추임새가 이어졌다.


"그랬을 거요, 내가 한 달에 한 번은 바쁜 와중에도 편지와 돈을 함께 보냈지... 큰아들 준이 녀석은 꼬박꼬박 내게 답장을 하며 아내와 가족의 안부를 알려주었소, 내가 그렇게 집을 떠났음에도 그 녀석은 내게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지. 내가 떠난 것이 싫었지만, 이 아빠의 마음을 이해한 거야, 아마 벽 너머로 나와 아내가 다투는 소리를 들은 것이겠지요... 속 깊은 녀석...."


마스터가 막걸리 주안상에 안주로 내어온 고기완자가 그 입에서 이상하리만치 푸석푸석하게 느껴졌다. 분명 처음 먹을 때에는 부드럽고 고깃 조각이 부슬거렸는데 말이다.





한편, 사자가 방문한 김명순과 그녀의 친정어머니 오순례가 함께 앉은 김명순의 정원에서도 그들 가족의 뒷얘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오순례는 저고리 품에서 난꽃이 자수로 박힌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고 있었고, 김명순은 눈물을 머금은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사자에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그 인간이 떠나고 나서 매달마다 편지와 돈이 도착했지만 나는 그 인간이 밉고 또 미워서 답장은 하지 않았어요, 돈은 아이들을 위해서 은행에 잘 넣어놨지만."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한 줄은 몰랐네... 훌쩍... 난 그저 네가 김서방이랑 잘 살고 있는 줄만 알았지..."


여느 드라마나 신파극에서 볼만한 상황과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사자는 그저 강 너머 불구경을 하듯, 그의 업무가 연장되고 있어서 귀찮지만 일의 해결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명순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나."


"나와 자식들을 고향에 버려두고 혼자서 돈 벌겠다고 올라간 그 사람을 나는 많이 그리워했어요, 자식들이 있어도 외롭고 쓸쓸했지요. 어떤 이유로라든 나를 혼자 내버려 두고 그가 가버렸다는 사실이 가장 슬펐습니다. 신혼 때에는 나와 내가 만든 열무김치만 있어도 평생을 잘 살 거라고 하던 사람이 그렇게 변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그렇게 몇 개월 마음고생을 하다 보니 어느 날은 복통이 심하게 찾아와서 갑자기 쓰러져버렸어요."


"그것이 죽음의 시작이었나."


김명순은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를 연신 읊조리며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읍내의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왕진을 와서 하는 말이 몸이 고생을 많이 해서 위쪽에 심한 궤양이나 암 같은 것이 생긴 것 같다고 하더군요. 정확한 검사를 하려면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럴 돈이 없었어요. 남편이 얘기한 대로 우리 먹고살기에도 빠듯했으니까요..."


".... 그 병 때문에 세상을 떠났군?"


명순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배가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그 인간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이를 악물고 견뎠습니다. 큰아들이 이장댁에 가서 서울에 있는 남편에게 내가 위독하다고 제발 집에 와달라고 연락했으니, 좀만 참아달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는 많이 늦었어요. 그 이후에는 어떠한 말을 해도 용서하기가 쉽지 않았죠, 심지어 저승에 와서도요."


사자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차를 후루룩 들이키고는 명순의 눈을 마주 보며 답했다.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강한 미움이군, 그 원한이 남아서 나쁜 영가가 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야."


"밉지만, 나는 그 인간을 여전히 사랑했으니까요. 내가 죽던 날은 함박눈이 오는 어느 겨울날이었어요. 양옆에 친정어머니와 아이들, 이웃 사람들이 내가 죽을 것 같다는 말에 모두 달려와 나를 붙들고 있었죠."


"너를 위해 그 사람들이 달려와 준다니, 너는 꽤 괜찮은 삶을 살았나 보군. 홀로 외롭게 저승으로 오는 영가도 많은데."


명순은 눈물이 말라붙은 하얀 얼굴을 끄덕였다. 그리고는 빙긋 웃었지만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끝까지 고통을 참으며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텼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지막에 그 인간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죠. 나쁜 인간, 나쁜 인간, 나쁜 인간!"


다시 명순의 눈에서 눈물이 새어 나왔고 그 입에서는 서러움을 토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사자는 다시 차를 후루룩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였군.... 조금 어려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쉽게 풀어질 수도 있겠어...'


생각을 마친 사자는 명순에게 몸을 기울이며,


"네가 말하는 '그 인간'이 지금 저승에 들어오기 전, 그 식당에 와 있다."


"그렇죠... 사자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 인간의 마지막은 어땠나요..? 괜찮았나요?"


자신의 생각보다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자 사자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직접 물어보는 것은 어떤가. 너의 죽음 때문에 모르는 이야기가 그에게 묻혀있을지도 모른다. 원한다면 그에게 데려다 주지, 이러한 특혜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옆에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던 오순례가 김명순의 어깨를 잡으며,


"그래, 야, 사자님의 말이 좋구나. 김서방도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지 않겠니. 여기는 내가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너는 퍼뜩 다녀오너라, 어서."


명순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을 다 닦고 결심을 한 듯한 그녀의 맑은 눈이 붉게 오른 흰 뺨과 함께 사자를 향해 움직였다.


"그래요, 나도 그 인간에게 묻고 싶고 듣고 싶은 말도 많아요. 좋아요, 그 인간을 보러 가겠어요. 저에게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열무김치를 가져가겠어요, 그 인간의 입에 들어갈지, 얼굴에 던져질지는 모르지만."


"그럼, 준비되는 대로 저승 입구로 가는 버스를 타지."


일이 수월하게 흘러가자 사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한편으로는,


'열무김치가 내 옷에 튀면 꽤 귀찮겠군. 검은 옷을 입어야겠어.'


라고 생각한 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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