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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Mar 16. 2022

[픽션]극락식당

1-8

"명순아, 그러면 조금만 있어봐. 한번도 본적 없고, 귀한 내새끼 울리는 나쁜 사위지만 이거라도 좀 가져가."


명순이 사자와 함께 길을 떠나기 위해 움직이자 순례는 명순의 정원 내에 있는 방을 향해 몸을 일으키며 명순의 이른 출발을 만류했다. 명순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엄마, 그 인간은 엄마가 해준 반찬 먹을 자격 없어. 내가 해줬었던 열무김치에 백반이나 먹이고 보낼거니까 가만 있어요."


"그래도, 정말로 김치에 밥만 줄 수는 없잖니."


순레는 어디선가 네모났고 튼튼해 보이는 투명한 강화플라스틱에 담긴 울긋불긋한 반찬들을 가져와 분홍색 파스텔톤에 노란색의 테두리가 둘러진 보자기로 주섬주섬, 이제야 겨우 볼 수 있게 된 사위를 위해 싸매기 시작했다.


"엄마, 이쁜 딸내미 속썩여서 일찍 죽게한 인간을 뭐가 이쁘다고 이렇게 줘!"


"그래도 곧 볼 사람이잖니."


"어이구, 진짜! 이해를 할 수가 없네!"


양손을 휘두르며 씩씩거리는 명순의 짜증에도 순례는 고개를 저으며 묵묵하게 반찬을 포장해서 사자에게 건냈다.


"뭔가, 무겁군"


순례는 사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제가 생전에 만들던 배추김치와 총각김치를 좀 쌌습니다. 같이 가서 우리 김서방이랑 같이 잡숴요..."


"알겠다, 장모가 건내줬다고 전하지."


"고맙습니다, 복 받으실거에요."


"복이라....명복을 얘기하는건가..."


저승사자라는 특수한 위치에 있는 사자는 이해할 수 없는 감사의 표현을 뒤로 하고 명순과 사자는 도시 중심에 있는 저승터미널로 향했다. 반찬통을 쥐고 있는 반대쪽, 왼손목을 빡빡하게 감고 있는 스피릿-와치(Spirit-Watch, 저승사자들이 공통적으로 착용해야하는 손목시계)를 힐끔 확인한  사자의 눈에는 상걸이 저승입국심사를 해야 할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들어왔다. 식당에 입장한 후 12시간이 지나면, '옥황상제의 특별한 행정명령'이라는 예외 조항이 아니라면 영가들은 무조건 저승입국심사를 받으러 가야했기 때문에,


'사자의 문을 사용해야겠군, 늦겠어.'라고 생각한 사자는 명순에게,


"계획을 변경한다, 사자의 문으로 가야겠어."


"네? 우리 버스타고 가는 것이 아니었나요?"


"시간이 없다, 버스를 타고 가게되면 상걸은 이미 심사를 받으러 간 후다. 이승에서 남아있던 너와의 업보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 심사의 결과는 좋지 않겠지."


저승사자들은 그들만이 사용하는 특수한 시공간 통로가 있다는 것을 소문으로만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제로 함께 지나가게 될 줄, 명순은 죽어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자의 문은 사자님들만 쓸 수 있는게 아니었나요?"


명순이 궁금한 얼굴로 그게 가능하냐는 듯 묻자, 사자가 답했다.


"첫째, 우리는 시간이 없다. 둘째, 내 마음이다."


"......헐..."


"잠시 이것을 좀 들어라."


사자는 한손에 열무김치가 가득 들어있는 보따리를 쥔 명순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내밀었다, 명순은 짐을 건내받으며,


"사자님, 그이를 보러가기 전에 한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한손으로는 스피릿와치의 어플로 사자의 문의 목적지를 설정하고 본인의 저승사자패를 꺼내어 최종 인증을 하고 있던 그가 명순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답했다.


"무엇이지."


명순은 어떠한 것을 결정했다는 또렷한 눈과 앙다문 입으로 사자에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인간이 열무김치를 이런식으로 그냥 먹게하고 싶지 않아요."


순간적으로 사자의 몸이 잠시 멈추고, 그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사자 특유의 냉랭한 눈으로 명순을 바라보았다.


"무슨 의도지."


온 몸에서 섬찟섬찟한 냉기가 느껴지는 듯 했지만 명순은 굴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에요, 열무김치를 그냥 먹이고 싶지 않아요."


사자와 명순이 서로를 바라보고, 말 없이 정적이 흘렀다.


-띠링. 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사자님. 사자의 문, 개방.-


눈치 없는 사자의 문만이 경쾌한 신호음을 내며 떠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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