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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Dec 09. 2023

[미식일기] 철원막국수, 철원

철원에서도 막국수를 먹습니다, 매콤 달콤 쫄깃하게 맛있게 먹습니다

딱좋아뼈다귀천국에서 천국에서 뼈구이를 먹는 미식 경험을 한 후, 이쁜 여자와 나는 철원군 동송면 동송읍에 있는 나보다는 나이가 어리지만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농부 Y군의 자택에서 철원군에서 생산된 맛있는 꿀사과와 함께 다과를 곁들인 담소의 시간을 보냈다. 담소를 지내던 도중에 가문 대대로 철원군에서 살아온 Y군의 가족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Y군의 할머니께서는 종종 철원에 처음 시집을 왔을 무렵을 얘기하셨었다고 한다.


Y군 왈,


"우리 할머니가 곧잘 하시던 말씀이, 우리 할머니는 정선에서 오셨거든, 철원에 처음 시집을 왔을 때 신기했던 것은 겨울에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쌀밥을 먹는 것이 제일 신기하셨데."


으레 대한민국의 대부분 사람들이 '강원도'라는 곳을 떠올리면, 강원도 사람들은 주로 '밈'처럼 사용되는 감자, 옥수수, 고구마, 메밀을 주식으로 삼아서 먹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지금처럼 농사기술이 발달하지 못하고 평균적인 생활 수준이 지금보다 낮았던 먼 옛날이나 그랬을 것이고, 지금은 다들 다른 지방에서 먹는 것처럼 쌀밥과 고깃국에 이런저런 반찬을 곁들여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하지만 Y군의 할머니가 어린 10대 후반 혹은 20대에 철원으로 시집을 왔을 무렵인 수십 년 전의 철원은 당시에도 '겨울'에 '가난한' 집도 쌀밥을 먹었을 정도로 쌀이 풍족하게 재배되었던 곳임을 나는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한탄강을 비롯한 큰 강줄기와 넓은 평야를 가진 철원군은 분명 지금은 강원도에 속한 곳이기는 하지만 굉장히 추운 것과 산이 많은 곳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강원도'와 같은 특징을 가진 곳은 아니니까, 그리고 분명 '쌀'이라는 것은 강원도에서는 귀한 작물이었을 테니까. 철원 출신인 다른 친구에게도 듣기로는 철원은 한반도의 남과 북을 이어주는 중간에 있는 도시라 물동량과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서 서울 다음으로 잘 사는 도시 중에 하나였어서 그런 거라고 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그렇게 쌀이 풍족하게 많아서 주식으로 삼을 만한 곳인데 왜 메밀로 국수를 만들어 먹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일까. 아마도 서울, 경기, 평양 쪽에서 냉면을 만들어 먹은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했지만 아직 스스로 결론을 내기에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형, 그래서 내일은 뭐 먹고 떠날 거야?"


내가 철원을 방문한 이유는 Y군을 만나는 것 외에도 철원에 있는 미식을 경험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 Y군이 나에게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나는 이미 머릿속에 미식 경험을 위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내일 철원식 막국수 먹고 갈 거야. 딱히 '철원식'이라기보다는 그 막국수 집 스타일의 막국수라는 것이 요점이겠지만. ㄴㄷㄹ막국수를 갈까, 철원막국수를 갈까 고민 중이야."


ㄴㄷㄹ막국수와 철원막국수를 들은 Y군과 그의 아내의 얼굴이 작은 웃음이 돌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ㄴㄷㄹ막국수도 유명하기는 하지만 거기가 영... 음... 옛날 같지는 않아, 단골들은 잘 알 거야. 근데 철원막국수는 처음 듣는데?"


철원막국수는 내가 2년 전 철원을 처음 방문했을 무렵에, 브런치에 미식일기를 연재하기도 이전에 방문했었던 철원의 막국수 집이었다. 물막국수를 주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양념장이 미리 풀어져있는 방식이 인상 깊었던 곳.


"거기가 신철원에 깔끔한 건물들 많은 골목에 있더라고."


"아, 거기 고속터미널 옆에 있는 곳이구나? 가보지는 않았는데."


"내가 지난번에 왔을 때 갔었는데 맛이 괜찮아서 이번에 가볼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숙소에서 나는 여러 매체들을 통해 각 막국수 집에 대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했다. 나는 가능하면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며 먹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내가 애초에 추구하는 것은 즐거운 미식경험인데 나에게는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부터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의자에 앉기까지 오래 기다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어떠한 막국수 집은 주말에 막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서 1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굳혔다, 아무리 유명하고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건 상관없다, 오래 기다리는 것은 즐겁지 않은 경험이다.


다음 날 아침, 근남면에 있는 숙소에서 저 멀리 이북땅에 뿌리를 내린 산봉우리들과 하늘을 구경하고 근처 문혜리에서 간단하게 브런치를 해결한 우리는 주상절리 하늘길을 관람하고 철원을 떠나기 전 막국수를 음미하러 신철원으로 향했다. 군더더기 없이 잘 포장된 길과 우후죽순 올라온 빌딩들 사이에 자리를 잡은 커다란 기와집, 거기에 '백년가게' 이름을 얻은 오래된 막국수 집 '철원막국수'.


가게는 고래등 기와지붕을 갖추고 사람들을 환영하는 대문을 활짝 열고 모바일 예약 시스템과 '백년가게'라는 간판과 많은 매체들에 출연한 경력들을 자랑하는 사진과 광고판들로 가게 외부를 장식하고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가게의 맞은편에 건물 하나 정도의 크기가 되는 너비의 전용 주차장이 평소에 얼마나 많은 손님들이 이 막국수 집을 방문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메밀면에서 나온 면수를 주는 막국수 집이다.


나무와 기와로 이뤄진 대문의 문턱을 넘어서 들어가니 식당으로 바뀌기 이전에는 굉장히 잘 사는 'ㅁ'자 형태의 기와집이었는지 커다란 안마당이 바로 등장을 했고 입구에서 맞은편은 큰 부엌, 양 옆과 부엌을 넘은 안채 쪽에도 손님들을 맞이할 수 있는 자리들이 많았다. 나와 이쁜 여자는 가깝게 있는 홀 안쪽으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막국수와 녹두전 등을 함께 즐기고 있었다. 이전에는 바닥에 앉아서 먹는 좌식 형태였는데 2년 사이에 의자에 앉아서 조금 더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 입식으로 바뀌어있는 모습에 내가 이전에 왔던 그 막국수 집이 맞나 싶은 변화였다.


"선생님, 여기 비빔으로 2개 주세요."


지글지글하게 구워져 나온 두툼하고 노릇노릇한 녹두전이나 철원에서 맛볼 수 있는 지역 막걸리를 한잔이라도 맛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아침에 먹는 브런치가 배를 두둑하게 채우기도 했고 강릉까지 장시간의 운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막국수만 점심을 만족하고 가야 했다. 주변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관광객이 많아 보였고 나이대나 구성도 굉장히 다양했다. 지역에서 나름 굉장히 유명한 식당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나는 2년 전에 여기 왔었을 때 물막국수를 먹었는데 육수에 이미 양념장이 다 풀어져서 나오더라고, 다른 지역에서는 못 봤던 방식이라 신선했었어."


2년 전에 내가 철원에 혼자 와서 철원막국수에 왔을 때, 물막국수를 주문했었는데 시뻘건 바탕에 검은 국수들과 상춧잎들이 고명으로 나오길래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물막국수인데 양념장이 섞여있다니? 당시에 내가 홀에 잠시 들어오신 주방장으로 보이시는 분께 


'철원식 막국수는 이런 건가요?'라고 여쭸을 때 그분께서는


'철원 막국수는 원래 이래요.'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물론 이게 철원의 모든 막국수 집이 이렇게 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철원막국수'의 막국수 방삭이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영동, 영서 지역에서 막국수는 막국수 집들마다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철원막국수의 물막국수는 이전부터 이랬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영동 지방의 막국수가 익숙한 나에게는 새로운 세계의 막국수였다. 그리고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비빔막국수가 우리의 앞에 도착했다.


무생채와 상추가 독특한 고명


새끼손가락만큼이나 굵직하고 붉은 양념된 무채와 상추, 먹음직스럽게 붉은 양념장이 듬뿍 올라가 있는 모습, 면을 젓가락으로 들어 비비면서 보니 까맣게 탱글거리는 모습에 까만 점이 가득하다, 툭툭 끊어지는 면발이 아니라 다른 밀가루를 조금 섞어 넣어서 쫄깃해 보이지만 껍질을 함께 넣어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메밀면이다. 사실 껍질이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순 메밀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나는 메밀면을 좋아하지만.


"어, 바닥에 고기가 있네."


"그러게, 국수를 다 먹고서 마지막에 먹으면 되겠다, 냉면 같네."


막국수를 다 먹고 나서는 양념장을 입은 수육 한 조각, 잊지 말자


자장면을 비비듯이 국수로 슥슥 양념을 메밀면에 부딪혀 비빈다, 함께 뿌려져 있던 참깨가루들이 검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고소한 식감을 뿜어낼 거라는 기대감을 준다. 한 움큼 젓가락으로 말아 올려서 입안에 넣어본다.


면발이 좋다, 식감도 좋다


"음...!"


쫄깃하고 찰랑거리는 식감의 메밀면에서 부족하지 않은 메밀의 구수함이 코로 슬그머니 눈치를 보면서 올라온다, 그리고 철원막국수 양념장 특유의 달착지근한 맛이 약간의 매운맛과 혀에 감긴다. 입안에 들어온 막국수의 흐름을 목으로 넘길 때마다 메밀껍질의 꺼끌 거리는 식감과 달콤한 감칠맛이 혀 위의 빈자리를 채운다.


"여기 면발도 적당히 괜찮은데 양념장도 느낌이 좋네."



다시 한번 젓가락을 들었다, 무생채와 상추를 함께 면발과 잡아든다, 평소에 동치미 육수로 된 순 메밀의 심심한 맛을 주는 막국수를 더 좋아하지만 오늘은 철원막국수의 양념과 면발에 취향을 맞춰본다. 매콤 달콤한 양념장의 맛과 아삭거리고 오독거리는 구수한 메밀향 사이의 식감도 상당한 매력을 뽐낸다. 이제 생각이 정리된다, 왜 철원에서도 막국수가 발달했는지에 대한 나의 유추가.


'쌀이 풍족해서 주식으로 쌀밥을 못 먹을 걱정은 없으니까, 메밀국수는 별미처럼 먹은 것이지. 겨울에 먹을 것이 부족해서 주식의 일부로 심심하게 먹을 수밖에 없었던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매콤 달콤하고 쫄깃하게, 겨울철의 별미로 먹었을 거야. 그러니 물막국수도, 비빔막국수도 간을 더 강하게 해서 맛있게 먹은 것이 아닐까. 먹을 것이 풍족한 지역에서 먹었던 냉면들의 형태가 그러했던 것처럼.'


후루루루룩


오독오독 아삭아삭


쫄깃하고 구수한 국수의 기본적인 맛에 철원막국수 특유의 양념장 맛을 더한다, 간이 강하다고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고춧가루와 설탕, 간장의 맛들이 진부하거나 지루한 맛을 주지 않는다. 철원에서 자랑스럽게 생산하는 오대미를 비벼먹고 싶을 정도로 맛 좋은 양념, 거기에 식감을 더해주는 무생채와 상추로 과해질 수 있는 맛을 조절해 주고 막국수에 또 다른 식감을 더해준다. 이게 평범한 비빔 막국수이지 뭐겠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먹고 있으면 어느새 맛있게 다 먹어버렸다. 맛있는 막국수집들의 특징은 그렇다, 별거 아닌 것 같이 평범하고 아는 맛이지만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쫄깃한 식감과 구수한 메밀의 식감 그리고 가게들마다 다른 육수의 조합과 식감, 양념의 다양한 변화로 결국은 맛있음을 선사한다.


금방 내 뱃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은 비밀이 아니다


결국 나는 철원막국수에서 식사를 하는 중에는 말을 많이 하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맛이 좋아서 먹는 것에 집중하느라 말을 안 하며 먹을 수도 있지만 나는 맛이 좋은 음식일수록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말이 많아진다.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그러하다. 우리가 앉아서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테이블을 자주 채우고 비우며 왕래가 잦은 손님들, 수십 년을 한 곳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한 막국수 집의 저력이 보이는 시간이었다.


"그 많은 것을 그새 비웠네."


거의 15분도 안되어서 다 비워버린 나의 그릇을 보며 아직 한창 식사 중인 이쁜 여자가 웃는다.


"맛있으니까, 그냥 먹게 되네."


쫄깃하다가 아삭하고, 달콤하다가 매콤하고 감칠맛이 폭발하는 막국수의 매력에 나는 정신없이 그릇을 비운 것이다. 그랬던 것이 분명하다. 철원에 다시 올 때에도, 철원막국수가 맛있는 막국수를 계속하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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