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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Dec 02. 2023

[미식일기] 딱좋아뼈다귀천국, 철원

겉바속촉 직화 뼈구이, 등뼈요리의 신세계

필자와 이쁜 여자는 각자의 생일인 날의 중간 정도 되는 시기에 처가(이쁜 여자의 친정)가 있는 춘천으로 간다, 사랑스러운 딸과 그보다는 조금 덜 사랑스러울 수도 있는 (장모님을 존경하는) 사위의 생일을 한 번에 챙겨주시는 장모님의 부름을 받아 가는 것이다. 그리고 춘천에 가는 김에 농사를 짓는 필자의 친구를 만날 겸 철원을 잠깐 여행하기로 했다.


금요일과 토요일, 춘천에서 귀한 끼니들을 대접받고 처가의 식구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낸 후에 이쁜 여자와 나는 철원으로 차를 몰고 향했다. 철원에 가는 것은 거의 2년 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번 방문 때에는 나만이 시간과 여건이 좋았기 때문에 혼자서 차를 몰고 철원에서 농사를 짓는 Y군을 만나러 가고 좋은 식재료도 얻어왔었다. 당시에 고석정을 비롯한 철원의 자연경관을 보며 꼭 이쁜 여자도 나중에 데려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생각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철원은 오늘 영하로 떨어지네"


"역시 철원이야, 시베리아보다 더 추운 곳이지."


당최 러시아의 시베리아보다 더 추운 철원에다가 어떻게 수도를 세울 생각을 했을지 몰라도 산과 강이 흐르고 너른 평야가 있으면 농사를 짓기에 좋으니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괜찮은 수도 예정지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도에서는 거의 유일할 정도로 전라도의 곡창지대와 비슷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평원을 보유하고 있어서, 감자와 옥수수, 메밀과 고구마 등만을 먹을 곳 같은 강원도에서 쌀을 주식으로 삼아온 곳이니까. 철원의 입구에 다다르자 대표적인 겨울철의 철새도래지인 것을 자랑하듯 커다란 학을 표현한 도시의 정문이 보였고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의 옛 상관이자 태봉국을 건국했던 궁예를 귀엽게 미화해 놓은 마스코트가 우리를 반겼다.


"궁예 아저씨가 굉장히 귀엽게 생겼네"


"그렇지, 드라마 태조 왕건을 봤던 사람들은 충격적인 괴리감을 느낄 거야."


"저렇게 생긴 모습으로..."


"'누구인가?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하면서..."


"사람을 쇠몽둥이로 때려죽이는 폭군의 결말을 맞았다고 하면 누가 믿겠어."


어렸을 적 태조 왕건에서 유명한 중년 배우가 연기했던 그 궁예를 기억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철원의 귀여운 궁예가 익숙해지지 않았다. 철원에는 시가지가 2군데로 나뉘어 있는데, 원래부터 있었던 옛시가지인 '구'철원과 새로운 모습으로 지어진 신시가지인 '신'철원이다. 처음 철원으로 오는 길을 타고 들어오게 되면 깔끔한 신철원을 지나쳐서 좀 더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구철원으로 들어오게 된다. 나는 2년 전 철원에 방문했던 기억을 더듬어 철원의 중앙시장 근처에 공영 주차장이 많은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가 철원에서 처음으로 방문할 식당도 구철원 시가지 중심에 있기도 했으니까.


"여기 어디 근처에 공영주차장이 많았는데... 아, 저기 있네 공영주차장."


조금 혼잡스럽고 좁기도 한 구철원의 중심지로 들어온 우리는 커다란 어느 대형 교회 앞에 위치한 널찍한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군장병들을 위한 쉼터와 여러 요식업 가게들이 몰려있는 골목의 뒤였는데,


'콤마님, 철원에는 드립 커피하는 곳이 없어요.'라고 하셨던


구 바리스타님의 말과는 다르게 최근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코나'라고 하는 드립 커피 집을 발견하여 여유로운 커피와 미식일기 연재를 마치고 우리는 구 바리스타님이 추천을 해준 돼지등뼈 구이집인 '딱좋아뼈다귀천국'으로 향했다. 구철원의 중앙시장 골목으로 들어가면 조금 큰 골목의 뼈다귀집 앞에서 단단하고 튼튼한 사장님이 푸른 앞치마를 매고 토치를 들고 뼈다귀를 굽고 있는 집이 있는데, 바로 그곳이 '딱좋아뼈다귀천국'이다.


"사람들 말대로 진짜 사장님이 가게 앞에서 뼈를 굽고 계시네."


우리는 뼈 굽는 일에 한창 바쁘신 사장님께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는 가게로 들어섰다. 철원과 이 가게를 방문했던 여러 유명인사들의 싸인과 옛날 밥집의 분위기가 나는 메뉴판, 가게의 천장 근처 보관 찬장에는 뼈다귀구이 소스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이는 한약재들과 시래기 말린 것들이 모아져 있었고 가게의 안쪽에 보이는 작은 주방에서는 다른 직원분들이 한창 바쁘신 모양이다. 가게는 홀과 안쪽의 방을 포함해서 5,6팀 정도가 앉을 수 있을 정도, 아담한 가게이지만 철원만의 분위기를 가진 정다운 곳이었다.


"뭐 드릴까요?"


"저희 뼈구이 순한 맛으로 2인분 주세요."


"네~ 여보! 홀에 뼈구이 2인분 있어요!"


"어어!"


우리의 주문이 끝나자마자 주문을 받아주신 아내로 보이시는 사장님께서 '여보'이신 바깥에서 뼈를 굽는 사장님께 뼈구이가 필요하다는 주문을 바로 건네주신다. 그럼, 식재료는 역시 직송이 맛있고 말고.


딱좋아뼈다귀천국의 뼈구이는 2인분부터 주문할 수 있는데 순한 맛과 매운맛이 있다, 순한 맛도 이미 충분히 매콤하니 매운맛을 원하시는 분들은 정말 매운 것을 잘 드시는 분들에게 추천하겠다.


주변 식탁들을 돌아보니 녹색이나 푸른색 소주 몇 병에 뼈다귀전골을 드시는 분들도 많았다.


"여기가 뼈다귀전골이나 해장국도 맛이 좋지만 그래도 제일 맛있는 것은 뼈구이라고 그러더라고."


"그래?"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곧바로 주방에서 커다란 뚝배기에 시래기가 푸짐하게 담긴 붉은 국물이 식탁으로 날아온다.


딱좋아뼈다귀천국의 우거지국, 뼈다귀전골의 육수가 된다


"뼈구이를 시켰으면 우거짓국은 그냥 드려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목례로 사장님께 감사를 표하고서 우거지를 조금 숟가락에 올리면서 바로 우거짓국을 먹어본다.


호로록


"으아아..."


"아, 이거지..."


뜨끈하고 얼큰한 우거짓국의 매콤한 맛이 입과 속을 덥히며 들어가고 진한 뼈국물의 풍미가 그다음으로 우리를 집어삼킨다. 철원의 동장군으로 인하여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녹아내리는 맛이다. 이렇게 뜨끈하고 진한 우거짓국을 서비스로 준다니, 뼈구이는 얼마나 맛있으려나.


덜컹, 딸랑!


"뼈 구워왔어!"


가게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밖에서 군용 방상내피(깔깔이)를 입고 목장갑을 끼고서 바비큐 그릴 위에서 토치로 뼈를 구우시던 사장님이 이제 막 구워진 등뼈들을 한 양동이를 들고서 부엌에 전달하신다. 그러자 홀에 계시던 여자 사장님이 받아서 주방으로 갖고 가신 뒤 얼마 후, 그릴에 노릇노릇하게 익어 진한 갈색의 모습을 가진 등뼈구이가 순한 맛 소스에 촉촉하게 발려서 이쁜 여자와 나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매콤하고 달콤하면서 가게 곳곳에 모습을 보이는 한약재들이 소스에 재료로 들어갔는지 한의원의 약재냄새가 우리의 후각세포를 덮었다.


훈연향의 매콤달콤한 고기구이의 냄새가, 구워진 살결의 모습처럼 코 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먹어볼까."


우리는 뼈가 달린 커다란 고깃덩이를 뜯어먹는 어느 만화의 주인공들처럼 비닐장갑을 한 손에 끼고는 우리의 머리만큼이나 커다란 뼈를 잡고서 입으로 직접 뜯어먹기 시작했다. 직화에 그을려 갈색과 검은색으로 호랑이의 무늬와도 같은 옷을 입은 뼈구이가 치아에 단단하게 닿는다.


바사사삭


'이렇게 등뼈가 바삭하다고?'


그랬다, 내가 등뼈구이를 집어서 씹으니 분명 '바삭'하는 소리가 크게 내 머리에 울리면서 처음은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등뼈의 살이 내 입안으로 굴러들어 온다. 치아 사이에서 씹히면서 달콤함과 약간의 매콤함이 적절하게 섞인 맛이 혀에 수분감을 더하면서 입안의 기분 좋은 습도를 올린다. 왠지 모르게 건강해지는 기분을 주는 약재와 매콤 달콤한 소스, 거기에 직화로 구워진 불맛의 고기가 바삭하고 촉촉한 식감으로 내 입안을 정복하고 있었다.


"와, 어떻게 등뼈에서 이런 맛이 나지."


"등뼈요리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기분이야. 돼지등뼈의 신세계네. 이걸 어떻게 한 사람당 두 개만 먹지, 아쉽게."


주의: 보이는 것보다 더 맛있을 수 있습니다


여태까지 내가 먹어보았던 돼지등뼈 요리는 감자탕, 해장국 그리고 속초에서 곧잘 가는 뼈찜. 돼지등뼈는 주로 푹 끓여 먹거나 쪄먹는다는 것이 나의 오래된 관념이었는데 '구이'라는 것은 새로 들어온 개념이다, 그리고 나는 등뼈를 구워 먹는다는 이 새로운 개념을 '르네상스'만큼이나 환영한다. 철원 딱좋아뼈다귀천국의 뼈구이는 나에게 등뼈요리의 르네상스를 소개해주었다.


나는 순식간에 바삭바삭한 겉면의 속살들을 이로 갈아버리듯이 긁어먹었다, 매콤 달콤한 소스가 계속 나의 입안으로 폭포수가 넘치게 하니 이것을 멈출 수는 없다. 다시 커다란 뼈를 집어 들고, 그릇에 코를 박고서 국밥을 마시듯, 나는 뼈에 입을 묻고서 살코기를 뜯어먹는다.


바사삭 바사사삭


조금 커다란 살코기라서 기다란 살이 쭈욱 결을 따라서 올라온다. 나는 국수를 먹듯 길게 찢어진 살코기를 후룩 말아 올려 먹는다, 촉촉한 살점에서 기름기가 반짝반짝, 크리스마스트리의 구슬처럼 영글거린다. 씹으면 씹을수록 차갑고 단단했던 등뼈 속의 기름이 업화의 불로 녹아내려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이 달콤하고 매끄럽게 입안에서 흐른다. 매콤 달콤한 소스와 쫄깃하고 부드러운 육질, 고소한 등뼈 살코기의 기름기가 입안 구석구석 흘러들어 간다. 지금은 고급 호텔에서 요리사가 그릴에서 구워준 한우 스테이크 부럽지 않은 고기의 맛을 나는 철원에서 즐기고 있다.


바삭한 겉과 촉촉한 속살, 살 사이사이로 흐르는 기름진 고기의 풍미와 육질


그릴과 토치로 불에 직접 닿아 바삭하고 훈연의 맛이 나는 바삭함에 그 안은 쫄깃하고 부드러운 기름진 홍수의 속살. 이것이 잘 구워진 바비큐의 스테이크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야, 여기 진짜 맛있다."


"내 말이."


우리가 들어와서 주문한 지 얼마 안 되어 옆자리에 앉은 휴가 복귀 전에 딱좋아뼈다귀천국을 방문한 군인들이 우리처럼 뼈구이를 한입 맛보면서 조용히 얘기한다. 그들은 매콤한 소스에 같이 곁들여 먹으면 맛있다는 김가루가 뿌려진 주먹밥을 함께 먹고 있다.


"그 주먹밥을 소스에 찍어먹으면 더 맛있어!"


군인들의 주먹밥과 뼈구이를 먹는 모습을 보던 '뼈구이담당' 남자 사장님께서 뭘 모르는 손님들에게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지도를 해주신다. 손님을 생각해 주시는 참된 사장님이라고 생각했다.


'아, 우리도 주먹밥 하나 시켜 먹을걸.'


저녁 식사 후에 농사꾼 친구 집에 가서 함께 다과를 먹어야 하기에 일부러 주먹밥을 시키지 않았는데, 그냥 시켜서 같이 먹을 걸 하는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괜찮다, 뼈구이가 워낙 맛있었으니까. 한우구이만큼이나 맛있는 돼지등뼈구이를, 그것도 불에 직접 구워진 것을 먹었으니까.


철원의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날에도 바깥에서 그릴과 토치로 등뼈를 구우며 바삭함과 촉촉함과 기름진 고기의 맛을 책임지는 딱좋아뼈다귀천국의 등뼈구이 장인, 박수받아 마땅한 사장님이다. 다만 필자의 눈으로 봐서는 연세가 어느 정도 있으신 것 같으니 혹시나 가게가 갑자기 없어지거나 사장님들이 바뀌시기 전에 더 자주 오고 싶은 마음이다.


어느 날 갑자기, 뼈구이가 생각난다면 또 철원에 올 것이다. 직화 등뼈구이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내 입안에 기름진 오아시스를 샘솟게 하는 일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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