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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Nov 25. 2023

[미식일기] 순돌이곱창, 군산

돼지와 대파, 연탄구이, 식도락가 애태우는 화끈한 불맛

비응항에서 활력 넘치는 식재료들의 해물짬뽕으로 입이 즐거웠고, 항구의 거리와 방파제, 관광객들을 위해 조성된 공원등을 걸어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록 짠내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워낙 거세서 모자가 날아갈 것 같아 머리를 덮은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바닷물에 반짝이는 햇빛만을 바라보며 걸어야 했지만 식사 후에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시킨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비응항을 걷다가 오랜 시간의 인내 후에야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신시가지로 향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보다는 로스팅이나 필터 드립을 하는 카페에서 싱글 오리진 드립커피를 마시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신시가지의 어느 행정복지센터 맞은 편의 카페에서 드립 커피로 '미식일기' 연재가 끊기지 않는 노력을 행한 나는 해가 천천히 새금만을 넘어서 내려갈 때쯤에야 군산의 구시가지 골목에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골목으로 향하며 좁은 골목들을 버스로 빠져나가는 동안에 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소고기뭇국으로 유명한 곳을 갈 것이냐, 떡갈비와 곰탕으로 유명한 곳을 갈 것이냐... 둘 다 군산의 터줏대감과도 같은 식당인 만큼 평도 비슷하고 오래되었기에 방문하기에는 좋지만... 흠...'


소고기뭇국으로 유명한 곳은 유명한 맛과 역사만큼이나 긴 기다림을 감내해야 하고, 떡갈비와 곰탕으로 유명한 곳은 내가 떡갈비의 많은 양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고민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긴 줄을 서서 음식을 먹는 것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면 편하게 미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가 생각이 났다, 우연히 군산에서 묵게 될 숙소 근처에 평이 좋은 어느 곱창구이 집을 스치듯 봤던 기억.


'거기가 어디였더라... 숙소에서 1km 반경 안에 있었는데 말이야.'


나는 다시 지도 어플을 뒤적거리면서 그곳을 찾아내었고 많은 사람들의 평을 보면서 다가올 저녁을 준비하기로 했다. 기가 막힌 곱창구이 맛 때문에 몰려드는 사람들에 비해서 가게가 좁고 요리를 해내는 양이 적어서 회전율이 낮아 매장에서 먹기는 굉장히 힘들지만 포장을 해서 가져갈 수 있다는 얘기가 있는 것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좋았어, 오늘 저녁은 여기다, 순돌이곱창. 막창과 곱창을 구워서 2인분은 거뜬하지."


나는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미리 전화를 하기보다는 매장으로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구시가지를 걸으면서 느끼는 것은 코로나19의 여파를 심하게 맞기도 했고 상권의 이동이 급격하게 빨랐는지 '임대'라는 광고가 내걸린 건물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자주 오가는 길거리에도 심심찮게 그런 건물들을 보았지만 경쟁력이 있는 가게들은 여전히 살아남은 모습이었다. 어느 곳이나 관광객들에게 매력을 보이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이러한 일은 남의 일이 아니게 되겠지.


"비어있는 매장이 많고 날이 어두우니 유령 도시가 따로 없네... 어이쿠.."


나는 군산우체국 건물을 지나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 중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연탄구이 냄새가 나는 어느 가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좁은 골목에 유일하게 불이 켜진 순돌이곱창


"저기구만, 딱 보면 알겠네."


나는 꼴을 먹기 위해 모여있는 양 떼처럼 식당 앞에 줄지어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옛날 가정집의 백색 형광등, 사람들의 낙서와 글들이 페인트처럼 도배된 아이보리색 벽지와 나무와 한지 혹은 유리로 된 미닫이 문으로 된 안쪽 방들. 홀과 안쪽 방들을 합쳐서 먹을 수 있는 자리는 겨우 열 자리나 될까? 그리고 내가 들어온 가게의 입구 왼쪽에 계산대와 바로 그 안 좁은 곳에서 연탄구이를 하고 계시는 나이가 지긋하신 사장님들, 설거지와 손님응대와 주문을 받고 있는 자녀부부로 보이시는 사장님들. 연탄냄새와 전화소리와 사장님의 응대소리, 술을 먹고 안주를 마시며 대화하는 사람들의 대화소리 등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치열한 소리들이 어울려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손님들을 맞이하는 사장님을 붙잡고,


"선생님, 저 포장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네? 네? 네, 그런데 좀 오래 기다려야 돼요, 한 1시간 정도 넘게요."


직, 간접적으로 주문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서 이미 이마에서는 바닷물이 방파제 위로 넘쳐흐르듯 땀이 흘러내리시는 남자사장님의 눈빛에서는 '제발, 더 이상 주문이 안 왔으면 좋겠어.'라는 간절함이 느껴졌지만 나도 '내가 군산에 언제 또 올 줄 알고요.'라는 절박함이 승리를 했기 때문에,


"저 숙소가 근처라서 괜찮아요, 저 곱창 하나 막창 하나, 이렇게 두 개 주세요."라며 홀에서 먹던 포장을 해서 먹던 숙소와 이 식당의 거리가 무슨 연관인지는 몰라도, 빠르게 연락처를 말씀드리자,


"네, 다 되면 전화드릴게요!"라며 그때 바로 날아오는 또 다른 주문과 함께 나의 주문을 접수하셨다.


나는 주문이 끝나며 맛있는 저녁식사가 어느 정도 보장이 된 단계에 이르자 가벼운 발걸음으로 군산에서 머무르는 숙소인 '화담여관'으로 잠시 돌아갔다. 공동 주방에서 먹는다면 어떠한 음식이라도 먹어도 괜찮은 숙소의 규칙 덕분에 나는 순돌이곱창에서 고생하지 않고 포장으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후끈거리는 냄새와 열기 가운데 사람들과 함께 섞여 먹는 낭만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지만 저녁식사를 혼자라도 편하고 느긋하게 즐기는 것이 나는 더 좋은 것이다.


화담여관의 방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며 드러누워있기를 수십 분이 지났을까, 반가운 전화가 도착했다.


"음식 다 되었습니다, 찾으러 오세요~!"


"네, 바로 갈게요!"


세상에서 제일 빠른 발걸음을 밥을 먹으러 가는 발걸음이겠지,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빠른 발걸음으로 순돌이곱창을 향해서 갔다. 다시 한번 구시가지를 지나서 우체국을 지나 회색으로 빛이 바랜 담장 위로 꽃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니 내가 주문하러 왔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곱창과 술 한잔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유롭고 느긋한 발걸음으로 순돌이곱창으로 들어가,


"곱창 하나, 막창 하나 맞으시죠?"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라는 말을 남기며 유유히 인파 속을 뚫고 나왔다. 한 손에 들린 검은 봉지 안에 번쩍거리며 빛나는 알루미늄 포장용기에서 뜨끈뜨끈한 냄새의 곱창과 막창을 들고 당당히, 그리고 샤뿐 거리는 발걸음으로 나서는 나는 기다리던 손님들의 질투와 부러움이 섞인 눈빛 혹은 눈총을 받으며 숙소로 향했다.


'하하! 이럴 때에는 포장하는 내가 승리자!'


나는 거의 날아가듯이 화담여관으로 돌아와 공동 주방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의 곱창과 막창 볶음의 은색 뚜껑을 열었다. 제대로 연탄에 구워진 불맛의 향기와 매콤한 파, 기름진 돼지 부속의 풍미가 나의 코와 이마를 훑으며 피어오른다. 마침 '공동' 주방이지만 아무도 없는 저녁 시간대이기에 나는 어느 일본 미식 만화의 중년 아저씨가 된 것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순돌이곱창의 곱막창볶음. 보이는 것보다 많습니다, 불향이 가득 올라옵니다


"처음은 막창부터 먹어볼까, 크고 실하네."


막창은 500원 동전만큼 크고 그 안에는 속이 가득 차 있는 녀석으로 처음을 골라서 입에 넣는다.


쫄깃쫄깃


'아아....!! 이건 정말...'


막창의 크기가 실하고 맛도 좋다


동네에서 주문해서 먹던 일반적인 프랜차이즈의 야채곱창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 입안에서 터진다. 한입 씹을 때마다 연탄과 석쇠 위에서 막창과 곱창을 구우시는 사장님의 손길이 생각났다, 연탄의 열기와 훈연의 냄새가 코로 올라오며 완벽한 전처리로 고기비린내와 내장의 냄새를 깨끗이 지운 막창의 탄력 넘치는 식감. 거기에 막창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기름진 고기의 맛, 불에 그을린 바삭함과 야들 거리는 겉표면, 약간의 매콤함과 깔끔하고 은은한 단맛이 살짝 섞인 양념장. 진하게 매콤 달콤한 맛이 아니라 심심하게 느껴진 정도의 매콤함과 달콤함은 접근성이 좋다, 거의 모든 이에게, 나를 포함하여.


'으아...! 이거 막창의 연탄맛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구나. 입안에서 맴도는 막창의 고소함과 달착지근한 이 매콤함으로 감칠맛이 폭발하네. 연탄에 구우는 거의 대부분의 고기는 다 맛있는데, 이건 또 다른 차원이지.'


나의 젓가락질이 빨라짐에 따라서 고개도 함께 빠르게 끄덕거리면서 입과 턱의 저작운동도 속도를 더한다, 나는 막창에 이어서 곱창을 집어서 먹는다.


으적으적


곱, 막창과 함께 다른 부속도 가끔 보인다


막창만큼의 기름맛과 고기맛은 없지만 곱창의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특유의 식감과 펜네 파스타처럼 빈 중심 공간에 잠들어있던 순돌이곱창의 감칠맛 넘치는 소스가 입안과 혀 위로 쏟아져내려 오며 맛의 만조를 이룬다. 나는 잠시 곱창을 입안에 머금다가 다시 씹기를 반복한다, 이 막창과 곱창 한 조각 한 조각만으로도 '이것이 연탄구이의 매력이고 정석이다'를 외치는 맛이다. 이 맛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오랜 기다림을 견뎌서라도 먹게 되는 맛이 분명하다. 그래서 손님들은 순돌이곱창 앞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언제 불릴지는 몰라도 망부석이 되어버리는 것이겠지.


'이번에는 순돌이곱창볶음의 중심 식재료인 대파를 먹어볼까.'


대파는 불에 구워 먹으면 알싸한 풍미와 달달한 맛이 이미 보장된 재료, 흰 부분과 연둣빛 부분을 여럿 잡아서 입안에 털어 넣는다.


으적으적 아삭아삭


순돌이곱창은 대파를 빼놓을 수 없다


대파의 매콤함과 알싸함이 처음 내 입을 감싸돌지만 이미 곱창과 막창에서 나온 기름의 맛이 입안을 보호하고 있다, 덕분에 향긋한 대파향기와 단맛만이 내 치아 사이에서 터지면서 고기에서 묻어 나온 훈연의 맛과 함께 돼지부속만으로는 질릴 수 있는 식감에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는다. 대파로 인해서 개운한 입안이 되어 다시 고기를 먹어도 처음 먹는 입으로 돌아가는 마법, 고기와 채소(향신채)의 환상적인 조화다.


"이거 하루 종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맛인데"


그래서인지 순돌이곱창 안에 들어갔을 때에는 곱창, 막창 등 구이와 함께 녹색이나 하늘색, 투명한 유리병이 안 올라가 있는 탁자가 없었다. 나는 탄산수로 음료수를 삼으며 다시 곱창과 막창을 잡고서 입안으로 가져간다, 나는 커다란 캠프파이어를 피어 올린 캠프장에서 불에 타는 나무와 공기의 냄새를 맡으며, 바람에 따라 춤추듯 흩날리는 불씨들 사이로 곱창과 막창을 구워 먹는 낭만 속에 있는 상상을 한다.


입안에 은은한 매콤함과 달콤함이 먼저 닿으면서 동시에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불향이 고기 사이사이에서 피어오르고 저절로 눈을 감는다, 눈꺼풀이 눈 위로 덮여서 어두워지는 것인지 연탄의 풍미가 어둑어둑한 연기로 변해 내 눈동자를 가리는지는 몰라도. 캄캄한 연기의 훈연향 사이로 쫄깃한 식감에 끝까지 고소하고 달달하기도 한 돼지의 맛이 나를 떠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 과하다 싶으면 다시 알싸한 대파 조각을 잡고 씹는다.


아삭아삭


매콤하고 알싸한 풍미가 나의 눈을 다시 열고 그다음의 젓가락질을 하게 한다, 입안을 개운하게 열어놓은 대파가 다시 막창과 곱창을 부른다, 무한한 연탄구이의 풍미가 나를 잠시 식사하는 그 시간 속에 매어놓는다. 순돌이곱창에서 선물해 준 연탄구이의 맛은 내 추억 속에 또 다른 닻이 되어 내려간다. 언제든 끌어올리면 나는 잠시라도 군산에서 연탄구이를 먹던 순돌이곱창의 시간으로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볶음 한 조각에 많은 것이 담겨있다


1시간도 채 안되어, 나는 2인분의 곱창막창구이를 모두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소고기뭇국과 떡갈비, 곰탕을 포기하고 선택한 나의 결정은 옳았음을, 나는 스스로 인정했다.


'순돌이곱창을 먹기 위해서라면, 군산에 한 번 또 올 수 있어.'


이쁜 여자가 이 맛있는 곱창막창볶음을 먹으면 얼마나 좋아할지 생각해 보며 나는 식사를 마친 후 또 한 번의 식사를 위해 꿈나라로 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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