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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Nov 18. 2023

[미식일기] 비응반점, 군산

바다맛이 나는 친근하고 신선한 해물짬뽕, 갑오징어와 주꾸미가 헤엄치는 맛

군산 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과제빵점인 이성당에서 야채빵, 팥빵과의 즐거운 만남을 마친 나는 비가 장대처럼 쏟아지는 군산 옛시가지 도로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버스를 타러 향했다. 사실 처음부터 구시가지에 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고등학교 근처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배차 시간이 굉장히 사악해서 거의 1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수준이었다, 필자가 거주하는 강릉에서도 그런 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만큼 많지는 않았기에 인내심을 금방 잃어버렸다. 바로 지도 어플을 작동시켜서 다음 식도락 일정으로 계획한 비응항의 '비응반점'을 가기 위한 대중교통을 찾았다, 그렇게 비가 오는 공기를 뚫고 나는 군산 옛시가지의 어느 은행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비응항으로 향했다.


"어유!! 아저씨이!!"


버스를 타고 가면서 옛시가지를 빠져나가다 보니 도중에 내려야 할 어느 승객을 내려주는 것을 깜빡해 버린 버스기사에게 큰 소리로 알려주시는 어느 할머님의 모습도 보고, 군산 시내에서 비응항까지는 새만금의 내륙 부분을 오랫동안 지나갈 정도로 긴 거리이기 때문에 비응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 버스기사님들께서


"중간에 기름 좀 채우고 갈게요!"라고 하시며 잠시 다른 길로 빠지셔서 주유소를 들리실 때 승객들도 잠시 내려 햇빛도 좀 쬐고 스트레칭도 하고 흡연실에서 담배를 태우기도 하는 여유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전부터 군산에 내린 폭풍 같은 소나기 덕분에 편의점에서 부랴부랴 비닐우산을 사 오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2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맑은 하늘의 태양이 군산의 갯벌을 비추기 시작했다.


'신발이 조금 젖기는 했지만 괜히 편의점에서 우산 안 사기를 잘했군.'


버스를 타고 가며 창문을 살짝 열어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구시가지를 지나 휘황찬란하고 사람들이 가득한 신시가지를 보면서 군산에서도 또렷한 상권의 이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직접 볼 수 있었다. 매번 다른 지방에 가면 가능하면 택시나 자차를 운전하기보다는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 타는 것을 즐기는 이유는 해당 도시의 매력과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곳에서는 어떠한 음식이 발달했고 그 이유는 뭘지 등등 그들의 식문화를 유추해 보는 것이다. 물론 도시의 풍경을 보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해당 지역의 위치나 환경, 역사 등을 생각하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이다. 식문화라는 것은 결국 '사람'이 겪는 모든 여건에 의해서 결정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시내버스가 1시간을 좀 더 달렸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만금에 위치한 공업단지 부근에서 내린 이후에 혼자 남은 승객이 되어버린 나는 시내버스의 종점이자 반환 장소인 비응항에 내려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에는 콘크리트, 시멘트, 강철 구조물로 이루어진 방파제와 공원과 그 너머에는 밀물 때라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서해안의 바다, 바다와 포구를 빙 둘러쌓으며 지어진 여객선회사와 낚시꾼들을 위한 서비스센터, 그 외에는 횟집들과 음식점들로 가득 찬 곳이 비응항이었다. 바다의 풍경을 보러 가기도 좋고 근처에 짬뽕을 맛있게 하는 곳이 있다며 추천해 준, 펌킨 사장님의 후배인 군산시민 MJ님의 말을 따라서 온 곳. 날씨는 굉장히 맑은 군산이었지만 바닷가 근처라서 그런지 엄청나게 강한 해풍이 내 머리와 옷을 거칠게 쓸어 넘기는 덕분에 쓰고 있는 벙거지 모자를 가방에 넣어놓고 다녀야 했다.


"어이쿠, 모자 잃어버리기 전에 얼른 짬뽕이나 먹으러 가봐야겠다."


비응항의 거리는 격하게 관광객들을 환영하는 날씨 덕분인지는 몰라도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점심을 위한 목적지인 비응반점의 상황은 달랐다. 가게 외벽부터 많은 매스컴에 노출된 증명을 하듯 방송에 나온 장면을 광고로 붙여놓은 비응반점의 미닫이 문을 옆으로 드르륵 밀자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네, 한 명이에요."


"편하신 곳에 앉으세요~"


가게의 사장님으로 보이시는 분이 카운터에서 나를 맞이하고 테이블로 안내해 주신다, 그리고 가게를 둘러보니 굉장히 넓은 가게에 거의 30개 정도는 되어 보이는 식탁, 멀리 가게 홀의 삼분의 일 정도 크기로 되어 보이는 큰 주방에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글씨로 된 메뉴판의 글씨들. 바깥에서 걸어 다닐 뻔했던 모든 사람들은 다 여기에 와서 짬뽕을 먹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사람들이 비응반점에 모여서 한마음 한뜻으로 뜨끈한 짬뽕과 이곳의 특별메뉴인 갑오징어 탕수육을 먹고 있었다.


'이 동네 손님들은 다 여기서 끌어모으는 건가, 대단하시네.'


버스에서 내려 비응반점으로 걸어오면서 잠깐 보았던 비응항의 풍광을 미루어보아 비응항에 낚시꾼들을 포함한 관광객들이 꽤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횟집은 대형 방송사의 유명한 드라마 촬영지라는 광고까지 붙여놓은 것으로 보아서 내가 손님이 유독 없는 날의 유독 없는 시간에 온 것이겠지. 주변에 사람이 많든 적든 맛있는 가게에는 손님이 몰리는 것이 냉혹한 현실, 식당의 위치를 뛰어넘는 경쟁력을 갖춰야 손님들은 좋은 가게라는 것을 알아보고 모여드는 것이다, 결국 가격이 적당하고 맛이 좋은 곳에 손님들이 오는 법이니까. 여하튼, 나는 나대로 식도락을 진행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랑 둘이서 왔다면 이곳의 별미인 갑오징어 탕수육을 먹어봤을 텐데, 욕심부리지 않고 적당히 먹자.'


나는 아쉬운 마음을 물에 담아 몇 번 들이키고는 홀에 계시던 직원분께 주문했다.


"해물짬뽕 하나만 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비응항이 항구인만큼, 낚싯배나 고기잡이배의 수만큼, 횟집이나 해물짬뽕을 전문으로 한다는 식당들이 많이 보였는데 그중에서도 꼭 이곳 '비응반점'을 추천해 준 이유를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꼭 여기에 와서 해물짬뽕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기에 짬뽕 한 그릇에 집중하고 싶었다, 다른 것 없이.


갑오징어, 주꾸미, 대파, 양파가 가득한 비응반점의 해물짬뽕


많은 손님수에 비례하듯이 음식이 나오는 회전율도 상당히 좋아서 내 짬뽕은 거의 10분이 채 되었을까? 내 앞에 등장했다. 누군가가 '이건 무슨 음식인가요?'라고 묻지 않아도, 한 번에 보고서 말할 수 있을만한 음식의 모양새. 강릉에서 먹는 해물짬뽕처럼 민들조개나 홍합과 같은 어패류를 담고 있는 짬뽕은 아니다, 이곳은 서해안이니까. 이곳이 갯벌과 새만금을 갖고 있는 도시 중에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큼직하고 두터운 살집을 자랑하는 갑오징어와 튼실한 주꾸미, 그리고 한입크기로 시원하게 썰린 양파들이 이 음식은 시원한 맛이 나는 '해물짬뽕'임을 자랑했다. 바다의 생물들이 뛰어놀고 있는 것과 같은 그 짬뽕 끄릇 안에 나도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좋다, 숟가락을 먼저 들었다.


'먼저 국물부터 먹어보고 싶은 짬뽕의 모양이군, 어디...'


숟가락으로 해물짬뽕을 조금 섞어주고 그 후에 국물을 한두 입 맛보기로 했다.


"오....."


달착지근한 맛이 난다, 달콤하고 꿀과 같은 단맛이 아니라 채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단맛이 먼저 혀를 적신다, 대파, 양파와 애호박, 당근이 들어간 것을 보면 예상할만한 맛이다. 그리고, '

 

"오오오.....!!"


비응반점 해물짬뽕 국물의 첫 단맛은 속임수였다, 짬뽕 국물이 입안에 밀물처럼 순식간에 흘러들어오자 국물 가득한 해산물로부터 나올 수 있는 시원한 맛이 혀와 입안을 훑고 지나간다, 상쾌하고 시원하다. 강릉에서 먹던 짬뽕순두부나 민들조개, 섭으로 국물을 뽑아서 만든 육수의 맛과는 살짝 다른 입안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단맛과 어우러지는 시원한 맛. 재미있는 맛이다, 동해안의 탁 트이고 푸른 바다와 같은 시원함이 아니라, 밀물과 썰물을 받아내는 갯벌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생명체들의 생명력을 담은, 여운이 긴 은근한 단맛과 시원함을 간직한 짬뽕의 맛이라, 이래서 같은 짬뽕이라도 지역마다 특색이 다르다니까. 그렇다면 이 육수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의 맛을 음미해 볼까, 나는 갑오징어를 먼저 사냥한다, 주꾸미는 그다음이다.


바다의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해물짬뽕


우적우적


"갑오징어와 주꾸미가 거의 갓 잡은 것처럼 신선하고 탱글거리네."


나의 미식일기를 이전부터 읽어온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수산물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수산물보다는 육고기를 더 많이 선호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비응반점에서 먹는 해물짬뽕의 수산물들은 내가 이전에 먹었던 두족류들에 대한 편견을 잊어버릴 정도로 살아있는 맛을 뿜어내었다.


갑오징어의 살이 두툼하고 쫄깃하다


'씹을 때마다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하듯 꿈틀거리고 탱글거리는 이 갑오징어와 주꾸미의 육질, 쫄깃함과 씹는 이 식감이 환상적이야.'


자신이 갓 잡힌 후에 죽기 전에 폭발시키던 마지막 발악에 쓰던 그 힘이 아직도 그들의 육체에 간직되어 있듯이, 비린내라고 하는 죽음의 향기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생명의 향기만이 남아 신선함과 상쾌함을 그 자체에서 뿜어내고 있는 덕분에 내 입안에 조수간만의 차가 일어나고 있는 듯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 조수간만은 바닷물이 아닌 나의 침샘에서 터져 나오는 소화액과 침으로 가득 찬 것이지만 말이다. 나도 모르게 짬뽕의 면발이 불어 오르는 것은 신경 쓰지도 않고 아삭거리면서 달달한 큰 양파조각들과 함께 갑오징어와 주꾸미들만 먼저 집어서 먹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씹으면 씹을수록 활력으로 날뛰던 이 식재료들의 힘을 받아서 나의 저작운동과 식사행위에 사용하는 힘도 함께 상승하는 기분이다. 쫄깃하면서 야들야들, 탱글거리는 식감에 신선한 바다의 맛으로 헤엄치는 갑오징어와 주꾸미를 먹고 나니 그제야 짬뽕의 재료들 밑에서 자고 있던 면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매번 짬뽕을 만들 때마다 면을 즉시 뽑아서 만드는지 밀가루의 구수하고 풋풋한 맛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만족스럽다.


'그런데 이 국물의 맛이 왜 그렇게 친숙하지, 어디에선가 먹어봤던 맛인데.'


이 국물 속에는 바다가 담겨있다


분명 처음 먹어보는 짬뽕인데 그 음식의 맛이 내 음식에 대한 추억 속 어디인가에 자리 잡고 있는 맛이다. 고춧가루와 해물로 낸 육수, 거기에 알싸한 대파, 양파와 애호박에 마늘, 이 조합 내가 집에서 곧잘 끓여 먹기도 하고 전라도에서도 많이 먹는 음식 중에 이런 게 있었는데, 뭐였더라? 갑오징어와 주꾸미가 들어가서 시원한 바다의 맛이 가미되었기는 하지만 이 육수의 근간은 분명 채소와 고춧가루의 달착지근한 매콤한 맛이다. 먹으면 먹을수록 계속 먹고 싶은 은은한 달콤함에 구미를 확 잡아당기는 매콤함과 한국적인 향신료의 풍미. 아, 그거다, 내가 즐겨 요리하기도 하는 그 음식.


"고추장찌개와 비슷한 국물 맛이어서 그렇구나! 비응반점의 해물짬뽕은 대파가 더 많이 들어가서 매운 단맛 때문에 조금 다르지만, 이 매콤한 달달함은 거의 비슷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인 고추장찌개와 육개장 등 매콤한 고추와 갖은 채소의 육수 같은 근본의 맛, 거기에 은은한 단맛에 따라 들어오는 감칠맛이 포함된 육수는 거의 한국인들의 입맛에 90% 이상의 확률로 잘 통하는 맛이 분명하다. 이미 사기와도 같은 육수의 맛을 준비해 놓고 거기에 무조건 맛있는 수산물들이 듬뿍 들어간 터라 누가 먹어도 대부분 맛있다고 할 수 있는 맛이다. 나와 같은 육식주의자가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육고기로 맛을 낸 짬뽕만큼이나 맛이 좋다고 생각할 만큼 비응반점의 해물짬뽕은 육수와 채소, 해산물들이 펼치는 고유의 맛과 그들 사이에 어우러진 식감과 풍미가 치밀하고 완벽을 위해 짜인 맛임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항구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유지할 수 있으셨던 거야, 암 그렇고말고.'


비응항 비응반점의 해물짬뽕, 그 한 그릇 앞에 담긴 바다와의 조우를 즐겁게 마친 나는 따사로운 햇살과 거친 풍압이 나를 반기는 비응항으로 향했다, 이제는 진짜 바다를 보면서 비응항을 즐길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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