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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Nov 11. 2023

[미식일기] 이성당, 군산

대한민국의 가장 오래된 빵집에서는 단팥빵을 사면 단팥을 줍니다

군산으로의 식도락을 결정한 것은 내가 호주로 떠나기를 결정하기도 전, 몇 달 전 단골 카페에서의 우연한 만남에 의해서였다. 단골카페에 놀러 온 사장님의 군산 사는 후배분을 카페에서 만나 차 한잔을 마시며 담소를 나눈 후 그로부터 군산에 있는 맛있는 음식들을 추천받은 것이 계기. 안 그래도 전라도의 맛집들에 대한 높은 기대를 갖고 있었고, 전북에 놀러 가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그 이후에 빠르게 숙소와 차편을 예매해서 군산으로 가는 기차들에 몸을 실었다.

강릉에서 군산으로 가려면 서울에서 기차를 갈아타고서 가야 하는 것인데, 마침 서울역에서 바로 환승을 할 수 있는 상품이 판매 중이어서 굳이 용산역으로 가서 호남선을 갈아타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나는 전라도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서울에서도 익산으로 가는 KTX를 타고서 익산역에서 장흥선으로 갈아타서 도착하는 곳이 바로 군산.


군산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군산의 구시가지로 가는 길에 바로 눈에 들어오는 갯벌, 아직 밀물이 들어오지 않아서 멋진 바다의 모습을 아니지만 탁 트이는 광경에 감탄하자 외지에서 온 손님을 맞이한 택시기사님은 본인의 핸드폰을 꺼내서 본인이 촬영한 멋진 해 질 녘 갯벌의 모습을 자랑하고 가는 길목에 있는 유명한 식당들과 관광지에 대해 소개하는 것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택시에서 구시가지에 들어서자 예고되어 있던 소나기의 굵은 빗방울이 대차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저기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곳이 이성당이에요."


"와, 오전 시간이지만 주말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엄청나네요."


수많은 가짓수의 빵을 파는 이성당은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빵집 중에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유명한 빵은 단팥빵과 야채빵. 오래된 빵집의 이름에 걸맞게 빵 중에서는 가장 보편적이고 단순한 빵인 단팥빵이 이성당을 또 다른 방법으로 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궁금하지 아니한가? 평소에는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며 식사하는 것을 싫어하는 필자이지만 이번만은 풍부한 인내심을 갖고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성당에 오는 모든 사람이 길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단팥빵과 야채빵을 사려는 사람들만 인내심을 갖고 줄을 서야 한다. 단팥빵과 야채빵이 목적이 아니라면 옆에 있는 큰 문으로 쉽게 들어가면 된다. 이성당은 원래 건물인 '구관'과 옆에 신축으로 브런치카페와 전시관 목적으로 지은 '신관'이 있는데 빵을 구매하려면 구관으로 가야 하고 브런치 카페를 즐기려면 신관으로 가면 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분 가득한 액체를 피해 나는 구관의 처마 밑으로 숨어 다른 손님들과 함께 단팥빵을 살 수 있는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줄을 오랫동안 기다리며 단팥빵과 야채빵이 팔려나가는 모습을 보니 이것도 퍽 재미있다. 빵의 구매개수를 제한하는 곳이 아니다 보니, 빵을 적게는 한두 개를 사가거나 많게는 빵이 구워져 나온 한판(대략 빵이 3~40개 정도 담긴듯하다)을 통째로 들고서 사시는 분들도 많고 한번 구워져 나올 때마다 수십 개의 단팥빵과 야채빵들이 수레 위로 옮겨져 나온다. 그리고 빵들은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사람들에 손에 담겨서 사라진다, 그러니까 줄을 길게 늘어설 수밖에. 바깥에서 긴 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빵들이 구워져 나오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후에 방문하고 싶은 식당들을 검색해 보며 사람들과 예의 바르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 보니 금방 나의 차례가 왔다. 구관에 들어가면 가운데에 온갖 빵들이 진열되어 있는 진열대가 있고 그 왼쪽에는 빵을 제조하고 굽은 제과제빵실, 정면에는 직원 5,6명이 계산을 하는 계산대, 왼쪽에는 그 외에 카스텔라, 케이크, 쿠키 등 선물용 제과와 과자들을 전시해 놓은 판매대, 문을 열고 들어가서 바로 왼쪽에서 야채빵과 단팥빵을 쌓아놓고 판매하는 판매대이다.


군산에 놀러오는 관광객들에게 이 종이가방은 흔한 물건입니다


주력으로 판매하는 것은 단팥빵과 야채빵이지만, 그 외에도 세월을 헤엄쳐 나아오며 개발하고 만들어낸 다양한 이성당의 빵들도 내 입에 군침이 돌게 하는 매력을 뽐내고 있었지만 그래도 군산에 또 언제 올 줄 알고? 단팥빵과 야채빵을 향해서 돌진. 키가 크고 건장한 직원이 손님들을 응대하며 빵들을 건네주고 있었다.


"몇 개 드려요?"


"단팥빵과 야채빵 2개씩 주세요."


크고 굵은 손으로 덥석 덥석 빵들을 집어서 능수능란한 손놀림을 발휘해서 비닐봉지에 각각 담아서는 휙휙 돌려서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게 묶어준다.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빠른 회전율을 갖는 원인 중 하나는 경력직 직원의 신속한 몸놀림이겠지.


"감사합니다."


"네, 저쪽에 계산대 있어요."


나는 바닥과 천장에 나처럼 처음 온 손님들을 위해서 계산대로 가는 곳을 안내하는 화살표들을 따라서 다른 손님들과 함께 계산대 앞에 섰다. 이 집의 빵이 얼마나 맛있길래, 많이 사가는 손님들은 거의 팥빵을 50개는 넘게 사가는 모습이었고 결제하는 가격도 남다르다.


'거의 마을을 이루고 있는 성심당보다는 규모가 더 작아서 그렇지 손님들의 규모는 성심당 못지않군.'


다시 계산을 위해서 잠시 동안 기다리다가 결제를 하고, 빵들을 가방에 담아서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신발이 촉촉이 젖을 정도로 소나기는 그치지 않고 있었다.


'이걸 어쩐다, 이다음은 비응항에 가기는 할 건데... 비응항에 가서 바다를 보며 빵들을 먹으려고 했지만 배도 고프고 날씨도 안 좋으니, 그건 취소.'


나는 잠시 계획을 바꿔서 브런치 메뉴가 괜찮다고 평을 받는 신관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1층은 이성당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을 광고하는 전시관과 선물세트를 구매할 수 있는 판매처가 있고 2층에는 브런치 카페가 있다. 브런치 카페는 미리 며칠 전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구경을 할 수도 없는 인기메뉴라서 나는 그저 잠시 앉아서 비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을 벌려고 하는지라 자리를 위해서 두리번거렸지만 유명한 이성당 신관에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있을 리가.


'흐음... 어디서 빵을 먹지.'


나는 2층을 돌아다니고 화장실만 들렸다가 자리는 못 찾고 헛물만 많이 들이키고는 다시 1층으로 내려오는데 창가에 텅 비어있는 간이식탁과 의자들이 보였다.


"헤헤, 여기서 먹으면 되겠군."


다른 손님들은 아직 찾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간이 식탁보다는 더 나은 식탁들을 원해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바깥 경관도 좋고 창가에 내리는 빗소리도 듣기 좋으니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간이 식탁에 앉아 단팥빵과 야채빵을 꺼내 그날의 첫 식사를 즐겼다.


반질반질하고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르는 야채빵


첫 번째 메뉴는 심심하고 담백한 맛이 날 것 같은 예상이 드는 야채빵.


"잘 먹어보겠습니다, 와앙"


한 입 베어 물어보니 갓 구워져 나온 빵이라 빵 겉면에 발려진 고소한 기름과 버터의 맛이 푹신하고 구수하게 입과 코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속이 조금 더 채워져 있는 안 쪽을 물어뜯어 공략한다.


아삭아삭


양배추, 당근, 양파, 대파와 작게 가루처럼 썰린 고기조각들의 혼합된 속이 서양식으로 만든 채소만두와 같은 느낌이다. 잘 익혀진 채소들의 양념이 담백하고 심심하며 육즙과 함께 버무려져서 고소한 맛이 채소들의 결 사이로 사각거리며 씹힌다. 빵이라기보다는 서양식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만두를 먹는 기분이다. 간간하고 고소한 빵을 먹었으니 이제 맛이 좀 더 달콤하고 강렬할 거라고 예상이 되는 단팥빵을 먹을 차례다.


채소가 가득하고 사이사이에 고기조각들이 펼쳐져있다


"흐음...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평범한 단팥빵."


단팥빵은 정말 어디를 가도 대부분 비슷한 외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먹어보기 전에는 차이를 모른다. 그래서 먹는다.


"...!!!"


단팥빵을 베어 물었더니 처음부터 강렬하고 달콤하며 입안을 정복하는 단팥의 맛이 그대로 직격타를 날린다. 일반적으로 단팥빵을 먹으면 단팥소가 적당히 있고 단팥을 담아내는 역할을 하는 빵이 두께가 조금 있는 편이라서 단팥의 단맛이 강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입안을 가득 채우는 달콤한 단팥소가 한 입만 먹어도 단팥소를 퍼먹은 기분이다. 혹시나 몰라서 단팥소를 덮고 있는 단팥빵의 피 두께를 보니 생각보다 많이 얇다, 역시나.


'단팥빵을 처음 먹으면 단팥의 맛보다는 빵맛이 더 많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단팥맛이 그대로 들어오네.'


달콤한 단팥소가 빵에 가득하다



그렇다고 해서 기성품처럼 단맛만이 강조되거나 느끼하거나 텁텁한 식감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단팥소의 결 하나하나가 부드럽고 쫀득하며 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설탕과 단팥의 조화가 훌륭하다. 단팥빵을 이 정도의 품질로는 만들어야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살아남는 훌륭한 빵집이 되는 건가 하는 자연스러운 생각이 든다.


'샌마르(강릉에 있는 필자의 단골피자집)에서는 고구마피자를 시키면 고구마를 주는데, 이성당은 단팥빵을 사면 단팥을 그대로 주는구나.'


입안으로 가득 찬 자연스러운 단팥소의 단맛과 풍부한 팥의 풍미에 황홀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 한번 단팥빵을 베어 물었다. 단팥의 고슬고슬하고 간지러운 식감과 팥의 풍미와 단맛이 파도처럼 다시 입안 가득히 밀고 들어와 채운다, 군산역에서 구시가지로 택시로 타고 오면서 보았던 갯벌에 밀려들어오는 밀물과도 같은 단팥의 묵직한 맛이다.


'거기다가 단맛이 지속되면 금방 질려버리기 마련인데, 심심하고 쫄깃한 빵과의 균형을 잘 맞춰져 있고 단맛이 강조되거나 느끼한 단맛도 없는 실력이 탄탄한 제조법이 이 단맛을 계속 즐기고 싶게 하는군. 입안 가득한 단팥의 풍미가 중독적이야.'


바삭하고 푹신푹신한 식감이 좋았던 카레맛 고로케


신관 1층의 벽을 두르는 통유리를 통해서 아직도 비가 쏟아지는 바깥을 보니 이성당 구관 앞에서는 내가 줄을 서있을 때 보다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긴 뱀과도 같은 줄을 서서 단팥빵과 야채빵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단팥빵과 야채빵을 먹고 나니 이 빵을 위한 기다림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잘 먹었으니 이제 바다 구경도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가볼까."


이성당에서 나온 나는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비응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비 오는 거리 속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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