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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Nov 04. 2023

[미식일기] 강릉초당콩감자탕, 강릉

콩비지 올린 고소함과 깔끔함, 깔끔한 된장맛의 등뼈

즐거웠던 포항에서의 식도락을 마치고서 나는 바로 평일 중에 샌마르의 피자대장님과 월간 점심식사의 약속을 잡았다. 주말 중에 여행을 다녀오고 여행을 또 떠나지 않는 주간에 지역 내의 식도락을 떠나는 것이 덜 부담스럽다고 생각되기에 급한감이 있지만 일부러 속전속결로 강릉 내에서 식도락을 가기로 한 것이다.

내가 피자대장님과 가기로 마음먹은 곳은 '강릉초당콩감자탕'이라는 감자탕집. 강릉에서는 제대로 맛있는 감자탕을 먹어본 적은 없다, 아직. 속초에서 살았을 때에는 뼈찜을 잘하는 '가마솥설렁탕해장국'이라는 집에서 곧잘 돼지등뼈를 즐겼었는데 강릉에 와서는 감자탕을 하는 식당이 그리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번에 강릉초당콩감자탕이라는 곳에서 감자탕 배달해서 먹었는데, 국물 맛도 진하고 고소해서 정말 맛있게 먹었었어요."


"초당에서요? 감자탕이요?"


"네, 그 집이 제가 듣기로는 원래 입암동에서 사장님의 외할머니로부터 집안 대대로 전수된 콩비지를 올리는 감자탕으로 장사를 했었는데 성과가 그리 신통치 않아서 두부가 유명한 초당동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크게 잘 되었다고 하더군요."


"호오, 그래도 부엉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방문해 볼 필요는 있겠군요."


내 주변의 친근한 지인분들 중에 대표적인 '육식요정'에 속하는 단골카페 '펌킨오울'의 바리스타 부엉님. 부엉님은 돼지나 소등 육고기로 된 음식을 주로 즐기시는 분이라 이전에 내가 추천해 드렸던 '돼갈'이라는 돼지갈비찜 집도 맛있게 드셨던 분이었다. 친근한 '육식요정'이 추천해 주는 감자탕 집이라, 그리고 감자탕에 콩비지를 올리는 음식이라, 이전에 가본 적이 없지만 상당히 그 맛이 궁금했기 때문에 대장님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나 혼자서 '검증'을 해보지 않았던 식당에 친한 사람을 데리고 간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모험이다, 내가 혼자서 갔을 때 '영 아니올시다'라면 반면교사로 삼는 경험으로 끝나겠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갔을 때 부정적인 결과가 나온다면 나를 믿고서 함께 와준 동행인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장님과 처음 가는 곳을 간다는 것은 향하고 있는 식당의 평가에 대해 신뢰해 볼 만하다는 것이다.


대장님과 나는 손님들이 몰려들기 전의 시간인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서 강릉초당콩감자탕에 도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알려진 집이라 관광객으로 보이는 젊은 손님들을 포함한 손님들이 이미 여럿 앉아있었다. 가게 안의 벽에는 전대 사장님들의 사진과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현했던 기록들, 그리고 실제 방영되었던 방송이 연속적으로 커다란 화명에서 재방영되고 있었다.


"여기 와보신 적은 있으세요?"


"아뇨, 저도 처음 와봐요. 하지만 펌킨오울의 부엉사장님이 몇 번 언급하시길래 괜찮을 것 같아서 온 거예요."


사람들이 많이 오는 홀의 운영을 쉽게 하기 위해서 식탁 위에 전자식 주문화면으로 우리는 콩비지감자탕을 각자에 맞게 주문하니 육수와 등뼈, 당면 그리고 새하얀 크림처럼 보이는 곱게 갈린 콩비지가 등뼈들 위에 올려서 나왔다.


"주문화면에 맛있게 드시는 법 있으니까 참고하셔서 끓여드세요~"


마구잡이로 먹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잘 끓여 먹지 않으면 생콩비지가 제대로 익지 않아서 콩비린내도 나고 맛도 고기, 육수와 잘 어울리지 않아서 주문을 하던 화면을 통해서 이러저러하게 불을 조절해서 잘 끓여 먹으라는 안내가 자세하게 나와있었다.


"저는 그래도 생콩비지의 맛이 궁금하군요."


크림이 아닙니다, 콩비지입니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서 등뼈 위에 올려져 있던 생크림 같은 콩비지를 퍼서 입안에 넣었다. 곱게 갈린 콩비지의 알갱이들이 고슬고슬하게 입안에서 씹히면서 생콩의 비린내가 살짝 올라오기는 했지만 깔끔하고 고소한 콩의 풍미가 기분 좋은 깔끔함.


"음, 생각보다 비리지도 않아요."


"그래요?"


내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자 대장님도 따라서 조금 생콩비지를 드셔보신다, 그의 눈이 커지면서


"그렇네요, 그리 비리지 않은데."라고 나의 말을 거든다.


나는 거기에 이어서 깻잎과 들깻가루, 등뼈등을 맨 밑에서 감싸고 있는 짙은 갈색의 감자탕 육수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전에 먹었던 모든 돼지등뼈 음식들의 양념이나 육수는 짙고 맑은 붉은색이었는데 이곳은 된장육수가 기본이었다.


"여기는 감자탕이 된장으로 육수를 쓰네요?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안 쓰나?"


"그러게요."


하지만 마침 이전 방송이 재방영되고 있던 화면에서 된장과 고추장을 일정 비율로 섞어서 육수를 만드는 장면이 나왔기에 그와 나의 호기심은 금방 해결이 되었다. 콩으로 만든 콩비지에 콩을 발효시켜만든 장을 주재료 한 된장육수로 끓여 먹는 감자탕이라, '콩감자탕'이라는 음식의 이름이 아쉽지 않다. 강하게 전기인덕션을 켜놓은지 얼마 안 되어 감자탕이 먹기 좋게 끓어올랐고 나는 숟가락으로 국물부터 먼저 떠먹는다.


후룩


깔끔하고 가볍지만 고기맛이 탄탄한 육수에 깊은 장맛, 그리고 끝이 없는 고소한 풍미, 된장과 들깨의 향과 맛이 뒤섞여 고소함의 파도가 더 고소한 콩비지의 거품과 함께 입안으로 혀뿌리까지 깊숙이 밀고 들어온다.


고소하고 깔끔한 국물에 익혀진 부추는 아삭하고 간간하니 맛이 훌륭하다


"크으! 감자탕이 이렇게 고소한 맛을 내는 것은 상상을 못 했는데. 대장님 국물부터 드셔보세요, 육수가 훌륭합니다."


이미 고기를 먼저 해체하는 수순을 밟고 계시던 대장님은 고기를 드시면서 끄덕끄덕하신다,


"네네, 이거 고기가 짭짤하니 좋네요. 맛있는데요."


"고기가 짭짤하다고요? 고기에도 육수랑 양념이 잘 배어들었다는 의미네요."


들깨와 콩비지로 인하여 지저분해 보일 수는 있지만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처음 맛을 보았던 콩감자탕의 육수가 맛이 좋아서 고기를 먹기 전에 숟가락으로 육수를 몇 번 더 떠먹고 나서야 고기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가볍고 깔끔한 맛이라 부담이 되지 않는데 된장의 짭짤함과 들깨의 고소함이 콩비지의 자연스러운 콩맛과 어울려 두부를 상당히 사랑하는 내 입장에서는 최고의 감자탕이었다.


국물로 어느 정도 입과 위를 적시고 나서야 나는 적당한 크기로 토막이 난 등뼈를 젓가락과 숟가락으로 먹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쫀득하게 잘 삶아진 등뼈 사이의 살이 여러 조각과 덩어리로 떨어져 나온 것을 다른 양념을 찍어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미 대장님이 '고기가 짭짤하다'라는 말을 하셨기 때문에 추가적인 간을 하지 않아도 이미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느 감자탕집의 등뼈속살처럼 옅은 회갈색으로 기름 섞인 빛을 영글거리는 속살, 입에 넣으면 어떨까?


돼지의 지방이 섞인 살코기가 치아 사이에서 압착될 때마다 돼지고기 본연의 고소한 육즙과 겉표면에 묻어있던 육수의 양념이 섞여 콩비지, 들깨와 섞여서 맛을 내던 고소함과는 달리 기름지며 무거운 고기의 맛이 인상적이다, 입안에 기름진 고기맛이 오래 남아서 혀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입안과 천장을 구석구석 닦아내며 잔여미를 즐기고 싶은 고기 맛이었다.


충분히 기름지고 고소한 육질이다


"감자탕 국물과 발라낸 고기를 같이 퍼서 먹으면 꿀맛이겠는데요."


이미 육수와 고기의 고소함에 빠져서 다시 등뼈 해체가 한참이신 대장님이 듣거나 말거나 나도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얘기하며 나의 미식을 지속한다. 숟가락에 고깃 조각들을 올리고서 감자탕의 육수로 살짝 적셔서 입안에 넣어본다.


촉촉하고 짭짤하지만 과하지 않은 부드러운 식감과 쫄깃함을 가진 돼지고기가 기름진 맛을 뿜어내면, 그 이후로 된장과 콩과 들깨의 식물성 단백질과 지방이 깔끔하게 고소함을 책임져준다. 고기를 씹을 때마다 견과류의 고소함이 입안에서 계속 펑펑 터지니 그 짭짤하고 고소한 잔여미 때문에 고기와 국물을 식도로 씹어 넘기는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대장님"


"네"


대장님과 나는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맛있게 먹다가 입을 열었다,


"이건 무조건 볶음밥을 볶아 먹어야겠어요."


"역시나 그렇죠."


이렇게나 맛있고 고소한 국물인데 쌀알에 스며들게 해서 가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큰 죄를 짓는 것일 테지. 국물요리 이후에 볶음밥을 꼭 먹는 사람은 아니지만 초당콩감자탕을 먹고 나서는 꼭 볶음밥을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식탁 위의 화면을 눌러 스스로 볶아먹는 볶음밥 재료들을 주문해서 쓱싹쓱싹 볶아 먹었다. 숙달된 볶음밥을 조리하는 요리사처럼 냄비에 잘 눌러 볶지는 못하지만 집에서 먹는 것처럼 모양새가 나와버린 볶음밥도 맛있는 냄새가 가득하다.


국물을 남겼다가 촉촉하게 볶음밥을 적셔먹는다


"그거 아십니까, 감자탕 볶음밥을 먹을 때에는 국물을 조금 남겨놨다가 볶음밥에 같이 적셔 먹으면 두배로 맛있습니다."


"그래요? 저는 국물 다 버렸는데, 아...."


내가 속초에서 자주 가던 뼈찜 집에서 먹던 볶음밥을 먹는 요령을 적용해서 먹는 법을 알려드리자 대장님은 자신에게는 국물도 없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탄식을 내뱉으신다. 초당콩감자탕의 국물이라서 더욱 그러신가 보다.


"제가 볶음밥을 잘 못 볶아서 바삭한 맛은 없지만 양념이 워낙 맛있어서 그런지 맛이 좋네요."


"맞아요."


고슬고슬하고 말랑하게 볶아진 초당콩감자탕의 볶음밥으로 든든하게 속을 채우면서 대장님과 나는 처음 경험한 콩비지를 곁들인 강릉초당콩감자탕을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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