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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Oct 28. 2023

[미식일기] 부산아구찜, 포항

포항 아귀는 생물이라고? 육식성애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신선한 바다

포항의 죽도시장에서 낮시간 동안의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나는 잠시 양학동의 '커피하우스향림'이라는 곳에서 향긋한 드립커피를 즐기고 예약해 두었던 게스트하우스 '오다가다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을 하고서는 해당 게스트하우스에서 운영하는 북카페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식도락을 좋아하는 미식가라도 식사시간 사이에 잠시동안의 휴식은 필요한 법이라 필자가 좋아하는 고양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포항에 온 목적인 '박군'을 만날 시간까지 기다렸다.


장기식당의 글에서 포항에 오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시피, 그는 내가 포항으로 직접 발걸음을 하게 한 장본인이다. 추후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내가 '카페정화'라는 곳에서 춤을 추는 영상을 SNS에서 접한 후 내가 운영하는 SNS계정을 들여다보니 자신과 같은 미식가인 것을 알게 된 후 개인적인 호기심과 흥미에 메시지를 보내어봤다고 한다. 박군은 나에게 만약 포항에 들를 일이 있다면 나와 저녁을 한 끼 하고 싶다고 하였고, 나는 흔쾌히 수락하며 안 그래도 한번 가보고 싶었던 도시에 (먹으러) 가야 할 구실을 만든 것이다.


박군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우리가 같은 시간대에 같은 부대에서 함께 근무했지만 병과가 달랐기에 서로를 몰랐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우연으로 시작한 우리의 인연이 생각보다 보통 인연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소름이 돋으며 박군과 나는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박군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미리 압축해서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박군과 함께 식사를 했던 음식인 '아귀수육'의 맛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즐거운 식사의 흐름을 일부러 끊고 싶지는 않다. 다시 포항으로 돌아와서, 나는 버스를 타고 포항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 식당들이 몰려있는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박군은 나에게 시간과 메뉴를 미리 예약해 놓았는데 날이 서늘해지기 시작했으니 먼저 식당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부산아귀찜'이라는 붉은 배경의 희고 굵은 진지한 필체로 크게 쓰인 식당, 정식 상호는 '부산아구찜'이지만 간판에는 옛날에 썼던 말 그대로 바뀌지 않은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네~ 몇 분이세요?"


주방 근처에서 서 계시던 홀을 담당하시던 직원분이 나를 맞이한다.


"그, 6시에 수육 예약했다고..."


"네, 먼저 들어와 앉아계셔도 됩니다."


SNS를 통해서 박군이 어떠한 사람인지 조금 확인은 했지만 실제로 이런 식의 만남을 하는 것은 상당히 오래간만이기에 약간의 두려움과 약간의 설렘으로 나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식당에 오면 항상 했듯이 분위기와 주변을 살펴본다. 이전에 많은 방송사에 출연을 했던 것을 증명하듯이 연예인들과 찍은 사진 그리고 방송화면들이 천장 가까이에 붙은 벽면을 채우고 주변에는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신 손님분들이 2, 3씩 매콤한 아귀찜에 소주를 기울이며 식사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궁금했다. 포항에서 먹는 아귀수육이 어떠한 맛이길래 박군은 굳이 포항에서 아귀수육을 먹어야 한다고 추천했을까. 그에 대해서 박군은 나에게 메시지로 미리 보여준 적이 있었다.


'포항에서는 다른 곳과 수산물을 경매하는 시간이 더 일찍이예요, 새벽에 조업한 생물 아귀를 그날 아침에 바로 경매해서 도매하니까 포항을 비롯한 일대 지역에서는 다 신선하게 생물 아귀를 쓸 수밖에 없어요. 오후에 경매를 하면 다음 날 아귀가 각 시장이나 식당으로 운송되니까 냉동이 필요하니 생물이 될 수가 없고, 생물 아귀에 비해서는 신선도가 떨어집니다.'


나는 수산물을 즐겨 먹지는 않는다, 식당이나 집에서 조리된 신선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으며 독특한 향미가 없는 음식이어야 한다. 그렇다, 나는 비린내에 대해서 민감하고 약하기 때문에 수산물을 좋아하는 이쁜 여자는 나와 있을 때는 수산물을 원하는 만큼은 잘 먹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박군과 먹기로 한 메뉴를 '아귀수육'으로 정했을 때, 나는 상당한 모험을 한 것과 같았다. 만약 아귀를 먹으러 갔는데, 아귀가 신선하지 않거나 비린내가 있을 경우 나는 음식을 잘 먹지 못할 것이 뻔한 것이다. 하지만 나를 초대해 준 사람에게 '비린내가 나니까 먹고 싶지 않아요'라고 하는 것은 대단한 실례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상황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박군이 들려준 포항의 신선한 생물아귀에 대한 이야기를 신뢰했고 포항에 온 김에 포항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수산물인 아귀를 꼭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실천했다. 그리고, 식당 입구에서 나보다 어깨 하나 정도는 더 큰 실루엣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 너 누구 아들 아이가! 그 박OO이 아들!"


"네, 맞습니더."


들어오는 길에 주방에 잠시 들려 요리를 하고 계시던 사장님들 내외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부모님들의 안부를 나누던 큰 사내, 덩치가 좋고 힘을 꽤나 쓸 것 같은 체구, 길고 굵은 구레나룻에 수염을 길렀지만 반짝거리는 얇은 안경테를 쓴 박군이었다.


"안녕하세요, 콤마입니다."


"안녕하세요, 박군이에요."


우리는 서로 악수를 나누고는 그가 나를 어떻게 포항까지 초대하게 되었고, 무슨 이유로 나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가 어떠한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지 끊어지지 않는 대화를 나눴다. 식사와 함께 반주를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그와는 술을 거의 잘하지 못하는 나도 천천히 여러 잔의 건배를 부딪쳤다.


얘기를 해보니 박군은 나보다 나이가 많이 어린 사내였다, 하지만 좋은 친구가 되는 것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가 나에게 말을 편하게 해달라고 하여 나도 그에게 말을 놓기로 하였다.


"그런데 나는 처음에 고깃집을 생각했다가, 나중에 아귀수육으로 메뉴를 바꿨는데 그 이유는 포항에 왔으니 그래도 한 번은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맞아요, 형. 저도 포항의 아귀가 신선하고 맛이 좋은데 꼭 한번 대접해드리고 싶었어요. 사실 포항에 왔으면 고기보다는 이걸 먹어봐야 하거든요."


"그건 맞아, 나는 포항의 대표적인 음식은 과메기랑 소머리국밥 외에는 몰랐으니까 이렇게 견문을 넓히는 것은 식도락가에게는 좋은 경험이니까."


빠지면 섭섭한 부산아구찜의 콩나물무침


우리가 아귀수육을 기다리는 사이에 밑반찬으로 함께 나온 콩나물무침은 머리가 크고 꼬리도 크고 길었다. 굵은 고춧가루와 짧게 썰린 부추로 버무려진 콩나물무침에서는 상큼하고 매콤한 냄새가 올라왔다.

"여기는 콩나물무침을 같이 주는구나? 내가 아구찜 집을 많이 안 가봐서 그러는데, 다른 집도 그러나?"


"저도 그건 잘 모르겠는데, 여기서는 이렇게 아구수육에 콩나물무침을 줍니다. 나중에 나올 수육과 함께 드시면 맛이 좋습니더."


"그래? 그럼 일단 한 젓가락 해볼까."


콩나물이 굵은 탓인지 나의 젓가락질이 서툰 탓인지 콩나물을 몇 가닥 못 잡고 입에 넣었다.


아사삭 사사삭


무침을 위해서 어느 정도 데쳐 나온 콩나물이지만 콩비린내는 없이 사각거리고 과일처럼 아삭거리는 식감이 훌륭하며 씹을 때마다 굵은 고춧가루에서는 매콤한 맛이 콩나물의 육질에서는 상큼한 식초의 맛이 짜릿하게 터져 나온다. 기름지고 살짝 비릴 수 있는 아귀의 살과 대창, 간의 맛으로 한쪽으로 치우쳐질 수도 있는 입맛의 균형을 잡아주는 훌륭한 사이드 메뉴라고 생각했다.


"야, 이 콩나물무침 대박이네."


"그지요? 저도 이거 아귀살에 잘 싸 먹습니다."


부산아구찜의 아귀수육, 푸짐하다, 크다, 맛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일찍 등장한 크고 푸짐한 아귀수육. 아귀의 살코기와 뼈가 붙은 토막들과 한입 크기로 썰려있는 아귀 대창 조각들 위로 내 손바닥보다 더 커 보이는 '바다의 푸아그라'라는 별명을 가진 아귀 간(일본어로 '안키모'라고 부르기도 한다)이 두 덩이나 막 쪄 나온 열을 펄펄 뿜으며 올라와 있었다.


"와, 아귀 간이 이렇게 큰 부위인지 몰랐는데."


"다른 곳보다도 여기 부산아귀찜이 가격은 많이 세지만 양과 품질은 확실히 좋습니다, 먼저 드시지요."


"이거 아귀 간은 엄청 부드러워 보이는데, 어떻게 먹어?"


"요거는 젓가락으로는 먹기가 어렵습니더, 숟가락으로 떠서 퍼드셔야 합니다."


아귀간이 다치지 않도록,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퍼서 먹습니다


나의 눈으로 보기에도 약간의 진동에도 찰랑찰랑, 흔들흔들, 커다란 젤리처럼 흔들리는 모습이 젓가락으로 살짝만 찔러도 부서질 것 같았다. 나는 박군의 조언대로 숟가락을 들어서 크게 뜨고 처음은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고 입에 넣었다.


부드러운 아귀 간의 식감이 앞니와 혀에 닿으면서 크림처럼 입안에 녹아내리고 천장과 볼을 덮는다. 약간의 바다맛이 섞인 신선한 향이 코로 올라오는 듯하더니 육고기와는 다른 무거운 느낌을 가진 끝없는 고소함이 입안을 덮는다.


고소해!! 엄청 고소하다!!


입안에 참깨와 참기름의 창고가 '열려라 참깨!'하고 열리는 듯한 맛이다, 처음 경험해 보는 잘 삶아진 신선한 아귀수육의 맛. 와, 아귀간이 이렇게 맛있는 부위라니.


"와! 이거 고소한 게 엄청난데! 대박이다!"


내가 활짝 웃으면서 숟가락을 들고 다시 아귀 간을 향해 돌진하자,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살짝 우려와 긴장으로 내 표정을 살피던 박군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핀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아귀간, 고소함도 일품


"그치요? 엄청 고소하지예? 입맛에 맞으셔서 다행입니다."


"아귀 간의 별명이 괜히 바다의 푸아그라가 아니었구나 싶어. 이 크림과 같은 식감에 고소함이 미쳤는데. 거기다가 내가 걱정했던 비린맛은 하나도 없어. 포항 아귀가 신선하다는 것은 진짜구나."


나는 아귀 간을 한번 더 퍼서 입으로 넣고 머릿속 가득히 퍼져나가는 고소함의 극치, 흥분을 즐긴다. 그리고 바다의 눅진한 맛을 살짝 더 즐겁게 하기 위해 매콤하고 상큼한 콩나물무침으로 사각거리는 식감을 더한다.


"이전에 먹었던 아귀에 대한 내 경험은 이제 다 포항의 생물 아귀로 바뀐다, 오늘부로. 아귀는 맛있는 음식이다."


"그렇습니까? 형님 좋아하시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자 건배 한 번 더 할까예."


"그럼, 아귀가 이렇게 맛있는데 오늘은 나도 조금 더 마셔야지."


그리고 맥주로 목을 잠시 축이고는 젓가락을 들어서 아귀수육 접시의 가장자리 쪽에 정리되어 있던 하얗고 동그란 원 모양의 아귀 대창을 잡아서 고추냉이가 살짝 섞인 간장을 찍어 입에 넣는다.


육고기의 대창에서 느낄 수 있는 쫄깃함에 더 담백한 맛과 신선한 바다의 맛이 어울려서 풍미가 좋다. 기름지고 고소한 쫄깃함이 아니라 담백하고 탱글거리는 쫄깃한 아귀 대창은 사각거리는 콩나물무침과 당연히 조화가 좋았다.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듣기로는 아귀의 간과 대창은 제대로 전처리가 되지 않으면 살코기보다 더 비린내가 나기 쉬운 부위라고 들었는데 (내장 부위이기 때문에) 그러한 부위들이 이렇게 비린내가 아닌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면 살코기는 내가 알던 그 아귀의 살코기 맛보다 더 좋을 것임을 확신했다.


아귀의 대창, 쫄깃하고 신선하다


"형님, 많이 드십시오, 입맛에 맞으셔서 잘 드시는 것 보니 제가 참 마음이 좋네예."


"고마워, 많이 먹을게."


나는 포항에서 경험하는 아귀수육의 맛이 극도로 훌륭하다는 것과 처음 만나서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는 식도락 동지가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포항에서의 식도락 경험이 참 좋았다.


그리고 아귀찜에서는 중심을 담당하는 아귀살, 수육에서는 제일 나중에 먹어야 할 것으로 분류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맛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커다랗고 뽀얀 살코기를 집어 들고는 나는 앞니로 크게 물어뜯었다. 나의 앞니가 탱글거리면서 솜처럼 부드러운 아귀살을 파고들었고, 쫄깃한 아귀살이 떨어져 나와서 나의 치아 사이에서 푹신 거리면서 씹힌다. 살코기 이전에 먹었던 아귀간과 아귀대창이 비교적, 압도적으로 맛과 풍미가 훌륭했기 때문에 솜털과 같은 맛의 살코기의 빛이 바랬지만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아귀의 살코기, 보드랍다 그 살결.


와, 내가 이전에 먹었던 아귀찜에서 먹던 살코기는 쫄깃하지만 주로 질긴 경우가 많았는데. 푹신한 식감을 선사하는 아귀살도 나는 처음이다. 포항에 '놀러' 온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맛있는 아귀를 먹는 것도 처음, 처음 먹는 음식이 맛있는 것은 식도락가로서 기분 좋은 경험이다.


나는 많이 먹으라는 박군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아귀 간을 마음껏 퍼서 입안으로 넣었다. 고소하고 눅진한 맛이지만 바다맛이 섞인 산뜻함이 있어서 느끼하지 않고 질리는 맛도 없었다. 쫄깃함과 신선함, 푹신함의 식감과 상큼한 콩나물무침이 끊임없이 어울렸기에 나는 분주하게 식사를 했다. 이렇게 뜻이 맞는 식도락가들과 맛있는 음식들이 만나면 음식 이야기도 할 것이 많고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도 할 것이 많아서 입을 두배로 더 많이 움직이니 식사였다.


아귀를 콩나물무침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형님, 평소에 식사량이 어떻게 되세요? 지금 어느 정도 차셨어요?"


"음... 지금 한.... 3,40퍼센트 정도."


내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하자 박군이 웃는다,


"좋네예, 저도 잘 먹어서요. 여기서는 수육만 딱 드시고 우리 또 다른 곳에 2차하러 가시죠."


"그러지! 나 아직 좀 더 먹어야 해."


우리는 아귀수육을 깨끗하게 비웠다, 박군이 다시 주방에 들려 사장님 내외분들께 살가운 인사를 나누고 나서 우리는 포항의 골목 속으로 더 친근한 사이가 되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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