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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Oct 21. 2023

[미식일기] 똥튀김과 할매호떡, 포항

원색적인 이름을 가진 수제어묵과 매콤단짠 매력적인 호떡에 관하여

나는 장기식당에서 만난 입에서 살살 녹는 소머리수육에게 육수 가득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건네고 식당 바깥으로 나왔다. 아직 날이 화창하지만 점점 먹구름이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기어 오고 있는 포항의 오후였다. 그렇다, 날이 아직 밝으니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마치기 전까지는 (마치는 시간이 있을까?) 계속 더 돌아다니면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죽도시장이 포항을 대표하는 시장이니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맛있는 명물이나 음식이 많으렷다...'


나는 스마트폰의 인터넷 검색창을 띄워서 '스마트'하게 음식을 찾기보다는 튼튼한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눈과 귀와 코로 오감을 발동하여 음식을 찾아보기로 했다. 인파들 사이로 조심조심 피해 가며 죽도시장의 먹자골목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좌우를 살폈다.


정육점들이나 고깃집들이 모여있는 골목에는 '간받이'라고 쓰여있는 고깃집들이 흔히 보였다. '간받이'라는 단어를 처음 보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는 고기 부위.


'간받이살? 부위가 어디든지 간에 이미 점심을 한 그릇 했으니 내가 혼자 고기를 구워 먹기는 조금 부담되는데...'


'간받이살'은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소고기 부위 중 토시살, 돼지고기 부위 중에서는 갈매기살을 의미한다고 하니 이미 체급이 초과되는 음식이었다.


'돼지갈비튀김...? 저걸 토막내서 통째로 튀긴다고?'


그렇다, 또 다른 곳을 보니 돼지갈비를 조각으로 토막내서 튀기는 돼지고기 튀김도 있었다. 내가 장기식당에서 곰탕을 한 그릇 하지 않았다면 먹었을 수도 있지만 튀김에 고기이니까 이것도 통과. 그렇게 지나가던 나의 눈에 얻어걸린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원초적이고 원색적이며 식욕을 단숨에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 만한 이름을 가진 그 음식의 이름이 보였다. 정확하게, 죽도시장 안에 있는 여느 분식집에 메뉴로 커다랗게 이름이 걸려있었다.





'??????'


내가 뭘 본거지? 무슨 튀김이라고...? 뭐? 또옹...? 튀김이라고? 하지만 내가 당황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듯이 작은 분식 마차에도 '똥튀김', 자그마한 분식집 점포에도 '똥튀김', 조금 더 커다란 분식집 메뉴판에도 '똥튀김'이라는 어린아이들이 들으면 웃으며 자지러질 그 이름이 걸려있었다.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뭘까? 대체 어떤 음식이길래 저런 비위생적인 이름을 붙인 걸까? 무슨 맛이 나는 음식일까?'


포항에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이름이다, '똥튀김' 위풍당당한 그 이름


똥튀김이라는 이 음식은 포항 죽도시장에 가면 볼 수 있는 명물이라는 것은 확실한데 나의 제한적인 경험과 지식으로는 어떠한 음식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똥튀김'을 검색했다. 여러 블로거들이 소개하고 있는 '그 음식'은 채소와 다른 부재료를 일반 어묵튀김보다 더 많이 넣어서 어른 손가락만 한 길이와 두터운 두께로 성형하여 만든 수제어묵튀김이었다. 시장이나 대형마트의 푸드코트에서 곧잘 사 먹던 그 맛있는 수제 어묵튀김의 이름이 포항 죽도시장에서는 상당히 무언가 재미있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어마어마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개당 1천원이고 채소, 깻잎, 떡, 소시지, 땡초고추 등을 넣어서 다양한 맛과 재료의 조합으로 이곳 죽도시장의 명물이라고 많은 블로거들이 소개하고 있었다. 실제로 죽도시장에 오면 많은 포항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똥튀김을 파는 점포를 두르고 서서 자유롭게 똥튀김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호오... 그렇단말이지, 그러면 나도 안 먹어볼 수 없지."


나도 똥튀김을 판매하는 수많은 분식집들 중 손님이 많이 안 서있는 한산한 곳을 골라서 섰다.


"드실 거예요?"


"네네, 야채튀김으로 두 개 주세요."


바삭바삭한 똥튀김의 자태


나는 똥튀김을 튀기고 있는 사장님께 돈을 건네어드리고서 서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사장님께 돈을, 똥튀김 2개에 해당하는 2천원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똥튀김을 건네주지 않으셨다. 깻잎이 말려져 있는 수제어묵을 묵묵히 튀기시는 사장님, 파박파박하면서 똥(?)이 바삭바삭하게 튀겨지는 소리, 내 옆에 길고 높게 쌓인 흰 종이컵들, 내 앞에 놓인 케첩과 머스타등 등 다양한 소스들, 그 옆에 스테인리스 통 안에 들어있는 사용 전과 사용 후의 스테인리스 집게들.


'뭐지...? 갓 튀겨 나온 걸로 튀김을 주시려고 그러시는 건가? 왜 튀김을 안 주시지?'


나는 온갖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꼬리에 꼬리에 물며 생각하다가 결국 5분 정도가 지났을까, 포항의 시민으로 보이시는 분께서 내 옆에 오셨는데, 자연스럽게 종이컵을 잡고 그 안에 원하시는 기호의 소스를 짜서 부으시더니 사용 전 스테인리스 집게를 잡고서 사장님께는 아무 말도 없이 똥튀김을 덥석 잡고 소스를 푹 찍어 드시는 게 아닌가.


"?!"


나는 잠시 생각하고는 내가 꽤나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사장님이 나를 무언가 한심한 듯, 이상한 사람인 듯 쳐다보는 이유가 있었구나. 손님이 알아서 집어먹는 것이 똥튀김집의 암묵적인 규칙이었구나.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니까.


필자는 혼자서 속으로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잽싸게 종이컵을 잡아서 케첩과 머스터드소스를 컵 안에 짜 넣고 일부러 5분을 기다린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며 집게로 채소가 가득한 똥튀김을 집어서 먹었다. 갓 튀겨 나온 튀김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5분을 기다렸다가 먹어서 그런지 똥맛(?)이 훌륭하다.


똥맛(?)이 훌륭하다


바삭한 어묵튀김의 겉면이 치아들 사이에서 사각거리는데 뜨끈 거리는 속살이 김을 펄펄 내뿜으면서 쫄깃하게 탱글거린다. 어묵 안에 다져서 들어있는 양파와 당근 등 온갖 채소조각들이 달착지근하고 부드럽게 입안에서 으깨지며 쫄깃하고 매끈한 어묵살과 어우러진다. 그리고 다시 어묵을 베어 물면 바삭한 겉면에서 말랑말랑한 속살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마음에 더 드는 점은 저렴한 가격과 원하는 대로 소스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고, 집마다 준비된 특별한 소스를 받아서 먹을 수도 있는 것이 재미.


'후불로 돈을 내는 거라, 한두 개씩 집어서 먹다 보면 배부를 때까지 계속 서서 멈추지 않고 주워 먹겠는데. 갓 튀겨 나온 튀김이라 더 맛있네.'


나는 양심이 곧은 선량한 먹보 시민답게 돈을 낸 만큼 딱 똥튀김을 두 개 먹고서 나왔고, 죽도시장을 떠나기 전에 똥튀김을 두 개 더 사서 주워 먹은 것은 절대 비밀이 아니다.


"그래도 짭짤하고 바삭한 튀김 종류로 식사를 마치기에는 아쉬운데. 달달하게 디저트로 먹을만한 길거리 음식이 없으려나."


말을 마치자마자 죽도시장의 출구를 나가던 나의 눈에 바로 들어온 간식의 이름 '호떡'. 연륜의 손기술로 호떡반죽과 숟가락을 빠르게 매만지시며 호떡을 굽는 어르신과 그 옆에서 손님을 응대하는 따님 혹은 직원분, 그리고 그 점포를 호떡 굽는 어르신만큼이나 세월을 쌓으신 손님분들께서 빙 둘러서 앉아 다들 호떡을 드시고 계셨다. 점포의 이름은 '할매호떡', 호떡 굽는 달인으로 방송사에서 선정해 준 가게라고 해서 방문을 했다기보다는 어르신들이 많이 드시고 계셔서 궁금함에 나도 그들의 호떡대열에 참여하기로 했다.


"뭐 드릴까요?"


"씨앗호떡, 치즈호떡 하나씩 주세요."


"컵에 담아 가실 거예요? 드시고 갈 거예요?"


"먹고 갈게요."


"그래요, 그래요, 거기 옆에 앉으셔요, 어묵 국물 하나 먼저 떠드릴게요."


기억하라, 치즈와 달달한 호떡을 한 장씩 시키고 땡초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호떡을 먹기 위해서 점포의 스테인리스 간이식탁 모퉁이에 앉자마자 따뜻한 기분으로 밝아지도록 어묵 국물을 먼저 컵에 떠서 주시는 직원분. 그 옆에서 '할매호떡'의 '할매'를 담당하고 계신 어르신 사장님께서는 손님은 안중에 없으시고 계속해서 들어오는 호떡 주문을 신속하게 응대하시는 모습. 내가 어묵 국물을 후루룩 마시자 따님으로 생각되는 직원분께서 물으신다,


"삼촌은 어디서 왔어요?"


"강릉에서 왔죠, 껄껄."


"오마나, 강릉에도 좋고 맛있는 게 많은데 어찌 여기까지 오셨네요."


"포항에 맛있는 것이 많다고 해서요."


"멀리서 와주셔서 감사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시장에 잘 안 오는데 젊은 분이 와주셔서 더 감사하네요."


얼떨결에 '젊은 분'의 한축을 담당하게 되어버린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 껄껄거리는 웃음으로 어묵 국물만 들이킬뿐이었다.


"호떡은 우리 가게 방식으로 잘라드릴게요~"


"네네, 그렇게 해주세요."


그러고 보니 할매호떡에서 호떡을 드시고 계시는 분들의 호떡은 모두 피자조각처럼 6조각으로 작게 잘라져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게에서만 해 먹는 방식이 있는데, 땡초 좀 드려볼까요? 맛있게 매콤해요."


"땡초요? 오? 네, 주세요."


이렇게 맛있는 조합을 포항사람들은 자기들만 알고 있었다니


호떡에 땡초라니,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여기서만 먹는 방식이라고 하시기에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 직원분께서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거 땡초인데, 간장에 절였거든요~ 호떡 위에 조금씩 덜어서 싸드시면 매콤 달콤하니 맛이 좋아요."


짭짤한 간장의 냄새와 매콤한 청고추의 냄새가 혼합되어서 코를 찌른다, 얇은 호떡피와 달콤한 설탕의 맛에 매콤 짭짤한 땡초절임이라 이미 상상이 되는 맛있는 조합이다. 나는 땡초절임을 치즈호떡과 씨앗호떡이 2층으로 겹쳐져 피자처럼 잘려있는 조각 위에 조금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밀전병 싸 먹듯이 먹었다.


쫄깃한 치즈와 달콤하고 바삭하게 씹히는 견과류와 설탕이 먼저 기름맛과 함께 고소함으로 혀 위에 들어온다, 그리고 코와 입안을 한꺼번에 치고 들어오는 땡초와 간장, 땡초의 껍질과 매콤한 씨앗들이 치아사이로 씹히며 목젖과 후두를 화끈하게 불 지른다. 달콤함과 고소함에 이은 매콤한 향기가 식감 이상으로 나의 후각을 만족시킨다. 호떡 반죽이 기름에 튀겨진 바삭함에 설탕과 견과류들이 주는 단단하게 부서지는 식감, 그리고 사각거리는 청고추의 과육과 견과류와 같은 식감을 매운맛과 함께 선사하는 고추씨앗의 조화. 아, 괜히 어르신들이 여기 모여서 호떡을 앉아 드시는 것이 아니구나.


바삭함, 고소함, 달콤함, 매콤함, 할매호떡의 호떡.


"이거 상당히 맛이 좋은데요?"


"그지요? 맛있지요?"


호떡은 기름으로 굽고 설탕으로 맛을 내는 것이라 느끼하고 금방 질리거나 너무 달달하기만 해서 맛이 진부해질 수 있는데, 거기에 짭짤하고 매콤한 맛을 더하니 호떡이라는 길거리음식이 아니라 잘 계획된 디저트를 먹는 기분이었다.


"우리 집이 이거 감주(식혜)도 직접 담가서 잘하는데, 먹어볼래요?"


"그래요? 얼마예요?"


"천원요."


"주세요!"


치즈호떡에 씨앗호떡에 땡초도 올려먹었겠다, 이 집에서 직접 담그신다는 식혜(포항에서는 감주로 불린다)까지 후회 없이 다 먹고 가야겠다는 것이 나의 결심이었다. 직원분께서는 문방구에서 아이들에게 슬러시를 담아줄 만한 기다란 컵이 거의 넘칠 만큼 가득 식혜를 담아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짙은 회색빛의 액체에 옅은 갈색으로 발효된 쌀알들이 둥둥 떠서 연못 안의 송사리들처럼 헤엄치고 있었다.


할매호떡에서 직접 담궈서 판매하시는 감주(식혜)


"잘 마실게요."


달콤하고 진한 곡류의 가벼운 질감이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식혜에 쌀알들이 어느 정도 떠다니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맑고 달달한 액체 사이로 쌀알들이 작은 휴지조각의 질감으로 씹히는 것이 즐거웠다. 이제는 먹을 수 없는, 할머니께서 해주시던 어릴 적 식혜 맛이 생각나는 맛이었다.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그리운 식혜의 맛.


나를 포함한 여러 손님들이 호떡집을 둘러싸고 호떡에 땡초를 말아서 먹고 있으려니, 손님은 또 다른 손님을 부른다고 하던가, 많은 관광객들도 어르신께서 구우시는 호떡을 하나, 둘씩 종이컵에 넣어서 먹는다고 사가거나 내 옆에 앉아서 먹는 사람들로 합류한다.


할매호떡의 '할매'어르신께서 가능한 오래도록 건강하게 맛있는 호떡을 앞으로 부치시기를 바라면서 나는 즐겁고 달콤한 호떡을 매콤하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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