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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May 11. 2024

[미식일기] 개미감자옹심이, 강릉

잠잠하게 맛있는 감자옹심이, 동네 노포의 깔끔한 손맛

김고로는 젊은 시절 금강산 근처의 어느 부대에서 군생활을 했었는데, 당시에 강릉 출신의 후배 부사관이 있었더랬다. 항상 밝은 성격에 농담하기를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한 번은


"야, L하사야, 강릉에는 어떤 맛있는 집이 있어?" 라고 물었다.


글을 정기적으로 브런치에서 연재하기 이전에도 맛있는 집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좋아하는 김고로는 '누군가가 어느 지방에서 왔다'라고 하면 말을 붙이면서 현지인으로부터 맛있는 식당에 대한 얘기를 듣기 좋아했다. 물론, 함께 군생활을 하며 친해진 L하사에게도. 잠깐 생각하는 시간도 없이 L하사 왈


"맛있는 집 한 개도 없습니다. 교동에 있는 짬뽕집들도 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강릉에서 유명하다는 집들에 대한 개인적인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하더니 마지막에는,


"터미널 근처에 '개미집'이라는 옹심이 가게가 있는데 거기 외에는 별 볼일 없습니다."라는 말로,


강릉에 있는 외식업체들에 대한 의견 개진을 마쳤다. 당시만 하더라도 강릉이 지금과 같은 많이 '힙'하게 변화된 분위기가 아닌 10년도 더 이전의 시기이기 때문에, 지금 만약 L하사에게 강릉의 맛있는 집들에 대해서 물어봤다면 다른 대답이 나왔겠지만, 여하튼 그때는 그랬었다. 그 이후로 강릉에 내려와 내가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강릉에서 나만의 단골집 지도에 대한 정보를 구축하게 되었고 그중에는 당연히 과거에 L하사로부터 들었던 '개미옹심이'라는 곳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공교롭게도, 정식 상호명은 '개미감자옹심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오래된 옹심이 가게는 김고로가 거주하는 곳에서 도보로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곳이었다, 김고로가 옹심이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기에 자주 가는 곳은 아니지만 강릉에 와서 '옹심이는 어디 가서 먹으면 될까?'라고 물으면 항상 김고로가 추천하는 집 중에 하나이다.


처음 개미감자옹심이 집에 가서 식사를 하며 홀로 4,5 식탁을 운영하시는 어르신 사장님께 이 식당이 얼마나 되었는지 물어보니 적어도 30년은 되셨다고 했다. 처음 개미감자옹심이 가게를 개업했을 무렵에는 가게가 자리 잡은 큰 길가에는 지금과 같은 큰 건물과 아기자기한 식당이나 카페들은 볼 수도 없는, 그저 '큰길'이었을 뿐이었다고 말씀만으로도 이 식당이 '100년 식당' 정도는 아니라도 이 동네의 터줏대감 정도는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김고로였다.


이전의 두세 번의 방문을 끝으로 한동안 가지 않았던 곳이었지만, 이쁜 그녀와의 짧은 데이트를 위해서 오래간만에 이쁜 그녀의 손을 잡고 집 근처 개미감자옹심이 가게로 향했다. 평일의 점심시간이라 근처 직장이나 가게에서 점심시간을 위해 나온 어르신과 직원들로 가게의 좁은 면적은 차지가 되어있었다.


가게의 겉 통유리벽은 반투명한 하늘색 문양이 장식된 바탕 위에 굵고 두꺼운 붉은색, 파란색 궁서체로 옹심이, 칼국수 등 이 집에서 취급하는 메뉴에 대해서 확실히 나타내고 있고 오랫동안의 세월을 나타내는 살짝 빛이 바랜 누런 벽면에는 타이타닉을 비롯한 이제는 '옛날' 영화가 되어버린 영화의 포스터들이 그때 당시 날고 기었던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의 모습을 증명해 주며 붙어있다. 입구 바로 앞에는 4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검은 스테인리스 식탁과 의자, 입구의 우측에도 8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평상이 2개가 놓여 있다.


입구 근처의 검은 식탁과 의자들 뒤로는 업소용 대형 냉장, 냉동고가 떡하니 부엌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작은 창문의 자연광과 형광등으로 공간을 비추는 것 외에는 어둑어둑한 회색의 바닥과 벽 위에서 사장되시는 어르신이 손님의 구역과 주방 구역 사이에 놓인 작은 텔레비전으로 쉬는 시간을 가지시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주방은 손님들이 식사하는 자리만큼 넓이가 있지만 식사를 하기 위해 개조된 곳은 아닌 먼 옛날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시절의 부엌 모습을 갖고 있기에 한쪽에 쌓인 감자들과 강판, 커다란 물을 담을 대야, 밀가루와 메밀가루 포대들이 가지런히 놓여 1인 수작업이 고됨을 꾸밈없이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쁜 그녀와 내가 가게 들어가자 식사를 하던 3 식탁 중 1 식탁은 막 식사를 마치고 나가시는 터라 김고로는 이쁜 그녀와 바로 그 식탁에 앉았다. 양반다리로 앉아 식사하는 위쪽 평상의 여사님들은 한창 뜨겁고 후덥지근한 옹심이와 칼국수로 땀을 흘리며 식사 중이고 근처 가게에서 나오신 한 어르신은 우리와 함께 주문을 받으신다.


나와 이쁜 그녀의 주문은 고민도 없이 '옹심이칼국수'다. 칼국수와 수제비 집에서 '칼제비'가 있듯이 강원도의 옹심이 집들은 옹심이만 넣은 '감자옹심이'나 거기에 밀가루, 메밀가루로 만든 투박한 칼국수면을 말아주는 '옹심이칼국수'를 많이 취급하는 편이다. 개미감자옹심이 사장님의 손맛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기에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망설임 없이


"선생님, 여기 옹칼 둘이요!"를 외쳤다. 평상에 따로 홀로 앉으신 어르신의 주문과 함께 '옹심이칼국수' 3그릇을 주문받으신 사장님은 옅은 미소로 끄덕이시면서 주방으로 들어가시고 다시 한낮 가게의 공기는 종편 뉴스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으로 채워진다.


개미감자옹심이에서 주문을 하고 나면, 때가 맞지 않으면 적어도 20분은 기다려야 한다. 어르신 사장님의 옹심이는 대량으로 미리 만들어 놓고 푹 떠서 바로 내놓는 음식이 아니라, 주문할 때마다 만들어진 옹심이와 칼국수를 육수에 넣고 적당히 익을 때까지 덥혀서 나오는 방식인데 혼자서 여러 명을 감당하시는 식당이 아닌 작은 동네 식당인지라 만약 바쁜 일정에 쫓기고 있으시다면 개미감자옹심이에서의 점심식사는 추천하지 않는다. 차라리 근처 교동식 짬뽕을 취급하는 짬뽕집들에서의 식사가 더 나을 것이다.


이쁜 그녀와 김고로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강릉에 휴일을 맞아서 놀러 온 듯한 4인 가족이 또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다. 누가 봐도 강릉의 현지인이 아닌 듯한 여행객의 분위기가 나는 그들은 서로 '엄마 옹심이가 뭐야?'라는 등의 얘기를 나누면서 가게에 들어와 강릉에서의 다음 일정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린다. 그리고 곧 기다리고 기다리던 옹심이칼국수가 김고로와 이쁜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감자옹심이(좌) / 반찬으로 나오는 깍두기와 얼갈이물김치의 시원함도 일품이다 (우)


멸치육수와 송고버섯이 가미된 투명한 갈색빛 육수 위에 반투명하고 오돌토돌한 표면을 가진 동그란 옹심이, 그리고 흰 곡선과 회색 곡선들이 구불구불하게 그 밑에서 헤엄치는 모습의 옹심이칼국수. 옹심이는 사실 감자로 감자전을 만들거나 그 외 감자를 가공할 때 나오는 부산물인 감자물을 받아서 서늘한 곳에 두면 감자물에 녹아있던 감자녹말이 물과 분리돼서 가라앉는다. 그 감자녹말을 감자에서 나온 물과 섞어 반죽하여 먹던 식품이다, 아마도 먹을 것이 많이 없던 시절 감자를 더 많이 활용하기 위한 궁여지책에서 나온 조상님들의 지혜가 탄생시킨 음식이겠지.


"아빠, 그런데 옹심이는 어떻게 만들어?"라는 아이의 질문에


옹심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잘 모르시는 듯한 부모님들 대신에 아이에게 답을 해드리고 싶은 불끈거리는 욕심은 접어둔 채로 나는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한입 떠서 마신다.


후루루룩


끈적하고 맑은 육수에서 짭짤한 감칠맛에 향긋한 송고버섯 특유의 향기가 섞인 맛이 입안에 퍼진다. 가끔 강릉에 송이버섯이 나오는 철이 되거나, 그 이후에 옹심이가게를 방문하면 송이버섯 조각으로 육수를 내는 진미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참고하시길, 개미감자옹심이 집도 그러하다. 지금은 송이버섯으로는 안 하시고 조금 더 독특한 향을 가진 송고버섯으로 육수 맛을 더하시는 듯하다. 거기에 육수에 보이는 냉이의 조각들, 냉이는 영동지역의 장칼국수를 취급하는 가게에서도 국물의 깔끔하고 시원한 맛을 위해 더하는 기본 재료 중에 하나인데 지역적인 특색이 반영된 맛이다.


옹심이와 함께 그릇을 장식하는 송고버섯과 감자채


"아, 역시 여기 국물 훌륭해. 착착 입에 감기는 감칠맛에 자극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짭짤함."


"여기 국물 맛있어."


가벼운 감칠맛의 국물에 쫄깃한 감자전분의 덩어리가 서걱서걱하는 감자의 식감에 어금니 사이에서 '쩍쩍'하는 소리와 함께 씹히는 옹심이의 맛은 '쫄깃함'이라는 식감을 사랑하는 한국민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맛이다. 식감과 맛이 워낙 좋으니 옹심이 한 알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크고 작은 옹심이를 두 알 숟가락으로 퍼올려 입에 크게 담고 국물이 뜨뜻하니 '허으허으' 숨소리를 내면서 씹는다.


쩌억쩌억 쫄깃쫄깃


찹쌀가루로 만든 떡이나 밀가루로 만든 다른 쫄깃함과는 다르게, 감자전분으로 만든 옹심이반죽은 특유의 쫄깃함과 식감 그리고 빛을 갖고 있다. 워낙 쫄깃함과 풍미가 좋다 보니 어느 대형 프랜차이즈 떡볶이 집에서는 자신들의 떡볶이 떡에 감자전분을 섞어서 생산하기도 하고 그 외 제과제빵 분야에서도 잘 활용되는 식재료가 아니던가. 감자라는 식재료가 시원하고 감칠맛 터지는 깔끔한 국물과 어우러져 입안에서 오랫동안 구류하며 씹히고 있노라면 감자전의 바삭 쫄깃한 식감과 풍미와는 다르게 조금 더 친근하고 뭉근한 감자의 별미를 즐길 수 있다.



"칼국수가 밀가루도 있고 메밀가루도 있네, 색도 이쁘고 좋다."


"나 이거 다 못 먹어, 고로야 내 거 조금 더 가져가."


"그래, 그래."


아침을 많이 먹었던 탓인지 이쁜 그녀는 한 그릇을 다 먹지는 못하고 그릇에 담겨있던 칼국수의 반 이상을 김고로의 그릇에 옮겨 담는다. 아침과 점심을 든든하게 챙겨 먹는 김고로는 함박웃음 지으며 칼국수면들의 이사를 돕는다. 칼국수전문점에서 먹는 탄탄하고 길쭉한 칼국수 면발과는 다르게 주름진 손으로 굴리고 눌러서 반죽한 칼국수를 칼로 숭덩숭덩 썰어내어 국물에 던져 익히면 짧은 칼국수면이다. 젓가락으로 집어서 먹기보다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함께 사용하며 건져먹는 칼국수.



후룩 후루룩


쫄깃하고 길게 가는 면발이 아니라, 국물과 함께 부드럽게 호로록하고 목구멍에 넘어가는 칼국수는 어차피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하는 옹심이와 잘 어울리는 단짝이다. 메밀의 구수한 풍미에 옹심이의 고소한 감자향이 함께 씹힐 때에는 뜨끈한 산맥의 향기를 온몸으로 먹는 기분이다. 어쩌면 이렇게 맛있는 구황작물 요리를 개발해 낸 것인지, 옛 선인들의 지혜는 깊고 오묘하다.


"끝까지 맛있다."


"응, 깔끔하고 가볍게 배가 든든해."


각자의 옹심이 그릇에는 감자 전분의 잔해들만이 낮하늘의 별조각들처럼 남았고,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식후 커피 한잔을 위해 교동 사거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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