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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ul 22. 2024

[미식일기] 명가네칼국수, 강릉

보글보글 마녀의 솥에서 뿜어져 나온 시원개운한 얼큰 칼국수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냉수처럼 여름의 폭염을 잠시 식혀주는 듯한 장마가 지나가고 나니, 그렇게 시원한 빗방울은 더욱 더운 햇살의 열기를 위함이었음을 증명하는 폭염과 열대야가 고개를 드는 강릉의 날씨. 오후 5시가 지나가는 시간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바람과 따가운 햇볕이 사라지지 않고 지나다니는 나그네들의 옷을 벗기려는 이솝우화의 해님처럼 사람들을 괴롭힌다.


"제일함흥냉면이나 시원하게 먹으러 갈까."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군."


"더우니까 시내까지는 버스 타고 가자."


뜨거운 오후이지만 새콤한 가자미식해에 쫄깃하고 시원한 면발을 기대하며 호기롭게 길을 나선 이쁜 그녀와 김고로는 '제일함흥냉면'에 오늘의 영업시간을 물어보고는 그 자리에 굳는다.


"오늘 여기 6시까지만 한데."


"엥...? 원래 7시 반까지 하는 곳인데?"


"재료 소진인지, 너무 더워서 그런 건지 여하튼... 그렇데."


"..........."


관공서에서 거리마다 설치해 준 햇빛가리개 아래에서 잠시 고민에 빠지는 이쁜 그녀와 김고로, 지방의 노포에 방문을 예정했던 사람들에게는 곧잘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 놀랍지는 않으나 갑작스럽게 저녁 메뉴의 기대를 접어야 하는 이쁜 그녀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럼 우리 저번에 S씨가 얘기해 준 펌킨오울 근처의 그 버섯칼국수 집 갈까?"


"..... 그래, 냉면은 내일 점심에 먹으러 가자."


다시 식사를 위한 목적지가 생긴 두 사람은 장칼국수와 교동짬뽕 집들과 카페들이 모여있는 교동사거리를 지나서 임당동으로 진입하는 좁은 골목의 펌킨오울을 지나서 오하이오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명가네칼국수'로 향했다. 깔끔한 초록색 배경에 흰색 글자로 '명가네칼국수'라는 이름을 크게 박아놓은 간판이지만, 신식 간판의 연식과는 다르게 이 명가네칼국수는 임당동과 중앙동이 맞닿는 이 먹자골목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외관보다는 오래된 식당이다. 펌킨오울에서 곧잘 마주치면서 친분이 생긴 S 씨와 펌킨오울의 펌킨님이 이곳에 대해서 괜찮다는 의견을 알려주면서 김고로의 마음에서는 한 번쯤은 방문해 볼 식당 중 후보였다.


오후 5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에다가, 더운 날이라서 펄펄 끓는 뜨거운 칼국수를 파는 명가네칼국수에는 아직 손님이 없었다. 통유리 벽에 아랫부분의 반절은 초록색 시트지와 메뉴 이름으로 덮인 벽을 보며 유리문을 열고서 들어가니 10팀은 조금 넘게 앉을 수 있게 짙은 원목빛의 식탁이 배치된 ㄴ자 모양의 홀에 안쪽에 자리 잡은 커다란 주방. 평소에 보자기로 음식을 감싸서 주변에 배달을 많이 가시는지 윤기와 형형색색의 빛깔이 반짝이는 보자기들이 손님들 대신 식탁들 위에 펼쳐져 건조하는 시간 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시간대에 젊어 보이는 커플이 손님으로 오자 조금 의외라는 눈치의 사장님은 잠시 쉬는 시간 동안 보고 계시던 종편 방송의 예능에서 얼굴을 돌리시고는,


"어우, 여기 앉으세요. 이리 오세요."라며 급하게 김고로와 이쁜 그녀를 맞이해 주신다. 버섯샤부샤부, 버섯매운탕 칼국수 등이 맛이 훌륭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김고로는,


"버섯매운탕 칼국수 2인분 주세요."


"버섯매운탕 칼국수 안 돼요, 지금."


"네? 여름이라서 안 되나요?"


칼국수 집이지만 여름이라 더우면 시원한 국수나 덥지 않은 메뉴를 하는 건가 생각한 김고로의 질문에,


"하하, 아뇨. 오늘 버섯매운탕에 들어갈 소고기가 다 떨어졌어요."


"아... 그러면 버섯칼국수로 주세요."


"얼큰하게 해 드려요?"


버섯칼국수는 얼큰하게 먹겠냐는 큰 몸집에 짧은 머리스타일을 유지하시는 여사장님께서 주방으로 들어가시며 크게 외치듯 물어보시자, 김고로는 잠시 이쁜 그녀에게 고개를 돌려


"얼큰하게, 괜찮아?"


"응, 좋아."


다시 김고로는 주방에 계신 사장님께 외친다, "네, 얼큰하게요!"


다부지고 장사와 같은 외모를 가지신 여사장님은 주방에서 커다란 진회색 솥을 꺼내어 불 위에 올리시고 커다란 국자로, 또 다른 커다란 솥에서 육수를 가득 푸셔서 담고는 끓이고 요리를 시작하신다. 더운 공기를 들이 마쉬며 걸어온 손님들은 스스로 물이 있는 냉장고를 찾아서 컵과 함께 가져와 천천히 시원한 물을 마시기 시작한다. 차가운 물은 잘 안 마시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이지만 더운 날에 잠시 몸의 열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하고 주방 근처에 놓인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산에 홀로 사는 자연인들에 대한 어느 방송국의 예능을 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잠시 보내고 있으니 짙은 회색의 커다란 양손잡이가 달린 작은 마녀의 솥과 같이 생긴 냄비에 팽이버섯, 느타리버섯, 새송이버섯, 섭(국산 홍합), 바지락과 칼국수면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 담겨서 나온다.


"불 좀 켜주세요, 한번 끓이고 드시면 돼요, 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식탁에 설치되어 있던 가스레인지에 사장님께서 칼국수가 가득 담긴 솥을 '끙차' 소리도 없이 가볍게 올려주시자 김고로가 가스레인지를 켠다, '타닥' 소리를 내며 불꽃이 칼국수를 덥히기 시작한다. 장칼국수와 같은 붉고 짙은 주홍빛이 도는 국물에 느타리, 팽이버섯들이 눈처럼 쌓여있고 그 근처에는 작은 홍합인 담치가 아닌 동해안에서 자생하는 섭국에 쓰이는 커다란 홍합인 섭들과 바지락들이 모여서 솥 안에서 갯바위와 갯벌이 섞인 작은 군락지를 이루고 있었다.



"와, 양 많다."


이쁜 그녀가 국자와 집게로 솥 안에 있는 내용물들을 뒤집고 섞어가며 솥 밑에 가라앉아있던 칼국수면과 바지락 등을 발굴해 내며 신나는 소리를 낸다. 김고로도 보글거리며 끓어오르는 칼국수를 보면서 기대치가 상승한다, 생칼국수면이 육수와 섞여 조금씩 피어오르는 구수하고 은은한 밀가루 냄새와 매콤한 향기가 피어오르자 없던 허기도 생기기 시작한다.



"이제 먹어볼까, 흥분되는걸."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각자의 그릇에 국자와 집게를 총동원해서 섭, 바지락, 버섯들과 칼국수면, 육수까지 담는다. 그릇에 각자의 양을 담기 전에 굳이 솥에 국자를 넣어서 국물만 따로 그릇에 담아 마셔보는 김고로.


후루룩


생면을 넣어서 그런지 잠시 밀가루의 구수함이 올라오지만, 그것은 잠깐, 짭짤함과 매콤함이 적절하게 균형 잡힌 육수의 맛 사이로 섭과 바지락에서 뿜어져 나오는 해물의 시원함과 개운함에 버섯과 채수에서 나온 깔끔한 마무리.


"크으, 와, 육수가 죽여주는데. 시원하고 개운해."


"국물 좋아?"


"응, 오랫동안 여기서 버티고 계신 이유가 있네."


뉴욕타임스의 어느 저명한 음식평론가가 한국 식문화에서 얘기하는 '시원함'에 대해


"나는 소화불량과 정확하게 반대 기분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볍고 아주 조심스럽게 균형이 잡혀있는 식사를 한 뒤에 느끼는 웰빙의 즐거움. 한국사람들은 이 감각을 '시원한 맛'이라고 부른다."


라고 평가했던 말이 바로 떠오르는 명가네칼국수의 버섯칼국수 육수 맛이었다. 뒤이어 김고로의 식사가 바로 시작이 되었다.


느타리, 팽이, 새송이 버섯을 연속으로 먹으면서 치아를 즐겁게 한다. 쫄깃하게 질긴 적당한 버섯의 식감에서 시원한 국물이 새어 나오면서 입안의 상피세포들이 화상을 입기도 하지만 상관없는 김고로, 맛있으면 그만이다. 쫄깃하고 탱글거리는 버섯의 맛이 미각과 촉각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그리고 이 육수의 감칠맛과 시원함을 담당하는 섭과 바지락을 잡아서 캐 먹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지중해 담치와는 다르게 굵고 튼실한 크기를 가진 섭의 속살은 성인 남성의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도 있을 정도로 크기와 식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버섯과는 또 다른 쫄깃하고 감칠맛 넘치는 풍미를 선사하는 섭과 바지락, 김고로는 몇 년 전 드라마 '도깨비'로 유명해진 영진의 바닷가에 줄지어 서있던 섭국집에서 먹었던 시원하고 얼큰하여 숟가락이 멈추지 않았던 어느 섭국이 생각이 났다. 그곳도 된장, 고추장이 섞인 장국 육수에 섭을 가득 넣어서 끓여내던 곳이었다. 명가네칼국수의 버섯칼국수는 버섯도 버섯이지만 깊고 얼큰한 장맛에 신선한 섭에 덤과 같은 시원함을 더해주는 바지락이 가득 들어서 개운한 섭국에 칼국수와 버섯을 말아서 먹는 기분의 김고로.


숨어있던 바지락과 섭들이 금광의 맥에서 쏟아져 나오는 금덩이들처럼 쏟아져 나오니, 식사가 끝났을 때에는 섭과 바지락의 껍질을 버리는 그릇에 바지락과 섭 껍질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칼국수도 생면이라 탱글거리는 식감은 없으나 쫄깃하고 탄탄하게 씹히는 두꺼운 면발이 섭국과 버섯이 섞인 묵직하고 진한 해물버섯의 매콤한 육수와 잘 어우러진다, 먹으면 먹을수록 입에서 씹히는 맛과 면발에서 나오는 진한 육수맛이 구미를 계속 당긴다.

이쁜 그녀도, 김고로와 마찬가지로, 처음 먹어보는 칼국수 재료의 조합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홍합과 바지락 살을 미리 다 발라서 자신의 그릇과 김고로의 그릇에 적절하게 던져주며 식사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돕는다. 김고로는 고개를 들어서 메뉴판을 바라본다, 버섯칼국수의 가격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저 정도의 가격에, 물론 2인분 이상 시켜야 하지만, 이 정도의 양이 나온다고... 가성비가 엄청난 메뉴야."


"그래, 저 가격에 이 정도 양이면 매우 저렴한 거지."


식사시간이 다 되어서 허기가 진 김고로와 이쁜 그녀도 건더기와 육수까지 다 긁어서 먹지는 못할 정도로 많은 양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식사를 마무리할 때쯤 식당으로 저녁식사를 문의하는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예, 명가네입니다. 네, 아이고.... 고기가 다 떨어져서 버섯매운탕은 안돼요, 그냥 칼국수라도 해드릴까? 지금 여름이라서 열무국수랑 열무냉면도 있어요... 아, 그거로 해드려? 네~ 열무국수 하나 갖다 드릴게요."


함께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시던 남자사장님은 일어나서 여사장님이 부탁하신 심부름들을 하시면서 근처로 배달을 나갈 준비를 하시고, 여사장님은 부엌으로 들어가 천천히 주문이 들어오는 저녁 장사를 준비하신다. 아무리 더운 날씨라서 시원한 음식들이 인기이지만 바다와 산의 시원하고 개운함이 담긴 얼큰한 칼국수를 찾는 손님들이 줄어들지는 않나 보다.


"후아... 잘 먹었다... 오랜만이야, 이렇게 맛있는 장칼국수."


"그러게, 배불러. 양이 생각보다 많았어."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주방에서 다시 바쁜 시동을 거시며 일하시는 사장님께 잘 먹었다고 인사를 드리며, 다음에는 버섯매운탕을 먹으러 오겠다는 다짐을 하며 가게를 나왔다. 칼국수가 워낙 시원했다 보니 여름날이 더 뜨겁게 느껴지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 얼른 집으로 도망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종종걸음으로 다시 교동사거리를 향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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