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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ul 29. 2024

[미식일기] 미니크테이블, 강릉

오일 파스타의 복병, 들기름의 역습은 깔끔한 고소

김고로는 마늘과 이탈리아 고추인 페페론치노를 넣고서 심심하고 담백하게 맛을 낸 마늘 오일 파스타인 '알리오 올리오'를 가장 사랑하는 음식 중 하나로 꼽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자극적이고 강렬한 맛보다는 담백하고 깔끔하며 원재료의 맛을 잘 살린 음식들을 선호하는 입맛 취향 덕분에 매콤 달콤이나 달콤 짭짤 등의 입맛을 즐기는 유행과는 거리를 두는 식생활을 하는 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먹는 식사도 잡곡밥 혹은 압착 귀리인 (이쁜 그녀는 '물에 불린 휴지'와 같은 식감이라고 표현한) 오트밀에 두부나 순두부를 먹으니 그 정도면 김고로의 평소 음식 취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충 예상할 수 있다.


수년 전 속초에 거주하던 시절, 단골 파스타 집인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된) 'Like Noodle'이라는 파스타집에서 예술가이자 남매였던 셰프분들이 해주시던 알리오 올리오가 퍽이나 맛이 좋았기 때문에 길들여져 버린 김고로는, 그 맛을 잊지 않고 지금 집에서 요리를 하는 알리오 올리오도 그때 먹었던 담백하고 고소하며 깔끔한 맛을 모방한다. 집에서도 토마토나 크림이나 오일, 바질 페스토 등등 여러 가지를 쉽게 요리해 먹기 좋은 음식이기에 밖에서 파스타를 사 먹는 일은 김고로에게 거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김고로가 밖에서 직접 사 먹는 파스타는, 김고로의 입맛 취향임을 감안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한 정말 맛있는 파스타. 지금은 '오하이오'에서 근무하고 있는 산치맨이 요리해 주는 산치맨 스타일의 파스타나 속초의 '벨라 쿠치나'의 파스타들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작년부터 강릉에서 생산되는 지역 재료들을 활용하여 여러 미식 축제나 행사에 참여하고 계시는 셰프님이 운영하시는 '미니크테이블'에서 감자 옹심이, 송고버섯, 들기름 등을 활용한 파스타가 호평이라 호기심이 생긴 김고로는 미니크테이블의 파스타들을 맛보기 위해 이쁜 그녀와 길을 나섰다.


미니크테이블은 이전에 '찬우식당'이라는 이름의 식당으로 시작을 하여 유천지구 먹자골목에서 계시다가 이제는 유천에서 산고개를 넘으면 있는 위촌리라는 마을 어귀에 외관이 세련된 양식집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살치살 스테이크와 최근 출시한 송고버섯 소스를 끼얹은 돈가스, 그 외 다양한 파스타와 곱창떡볶이를 주력메뉴로 삼는 곳이지만 김고로의 구미를 당긴 것은 사실 강릉에서 생산된 들기름과 마늘을 활용한 들기름 파스타.


이쁜 그녀와 택시를 타고 미니크테이블에  도착하니 큰 검은 석판 배경에 영어로 쓰인 미니크테이블의 상호명과 밝은 회색의 대리석판 타일, 통유리를 통해서 보이는 가게의 내부는 식물과 목재가구, 흰 커튼등으로 꾸며진 홀이 보인다. 가게에 들어가니 밝고 넓은 꽃가게에 온 기분이 들게 하는 플랜테리어의 내부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전체적으로는 흰 벽과 목재가구들을 두고 구석구석에 눈을 편하게 하는 진녹색의 잎사귀 식물들. 우측의 보이는 카운터와 주방은 카운터 뒤 작은 바 너머로 주방으로 들어가는 입구들 사이로 셰프님과 홀을 응대하시는 사장님의 분주한 모습이 보인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두 명이에요, 선생님."


"이쪽에 앉으셔요, 밖이 많이 덥죠? 시원하게 있으세요."


"감사합니다만, 아내가 추위를 많이 타서요 하하."


"어이쿠, 저런. 그럼 저쪽이 더 나아요."


"감사합니다."


홀을 보시는 사장님께서 안쪽 방에 있는 단체손님을 응대하시면서도 방문객에게 친절을 아끼지 않으신다. 배가 많이 고픈 김고로와 이쁜 그녀이기 때문에 2인분으로는 많아 보이지만 다 먹을 수 있기에 다른 종류의 파스타를 3가지나 주문한다. 일반적인 식당의 파스타 정량을 생각한다면 김고로에게는 부족한 양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문을 하고 나서 잠시 있으니 새콤 상큼한 향이 풍기는 콜라비와 오이 피클이 나온다. 채소의 물비린내를 싫어하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오이는 건드리지 않아도, 한국어로는 '순무'인 콜라비 피클을 김고로는 아삭거리면서 잘도 먹는다. 일반 무보다는 더 단단하고 사각거리는 식감이 김고로의 마음에 들었다, 오이의 물비린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리고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먼저 주문한 음식들이 완료되고 나서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기다리는 식탁으로 파스타들이 연이어서 나온다.


크림감자옹심이 (좌) / 미니크곱떡 (우)
미니크테이블 생들기름파스타

'양이 너무 많은가?' 싶기에 미리 남은 음식의 포장 가능 여부를 물었던 김고로였지만 그가 예상한 대로의 파스타 양이 제공되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다 먹을 수 있다는 확신에 찼다. 3가지의 파스타 중에서 가장 간이 심심하고 담백한 생들기름파스타부터 식사를 시작하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 강릉에서 생산된 마늘과 그 마늘로 만든 마늘편 플레이크, 그리고 초록색의 장대처럼 길쭉하게 누운 채소는,


아삭아삭


"음, 이게 그린빈은 아니니까 식감이나 겉에 보이는 주름이나 마늘종 같은데 알싸한 맛이 안 나고 달콤하네. 훌륭해."


"나는 그린빈인 줄 알았는데."


"마늘파스타니까 마늘종을 넣는 게 훨씬 어울리기는 하는데, 가열한 마늘종은 처음 먹어봐, 맛있네."


주로 장아찌나 매콤하게 버무려서 반찬처럼 먹을 줄이나 알았지, 마늘종을 파스타에 넣어서 가열하니 이렇게 달콤하고 아삭아삭한 채소가 있나 싶다. 파스타에서는 강한 들기름의 고소함은 나지 않는다, 다만 파스타를 포크로 살짝 돌려서 입에 넣으니 들기름의 향이 올라오지만 입안에서는 진득한 고소함이 아닌 아주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고소함이 난다.



"와, 이게 들기름인데 이렇게 깔끔하다고. 오일파스타라서 진득하거나 오래가는 고소함을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야."


춘천의 처가댁에서 주말농장을 활용하여 직접 농사지은 들깨를 짜서 갖다 주신 들기름에 고추씨기름을 사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깻묵과 마늘로 집에서 나름 들기름파스타를 맛있게 해 먹었다는 자신이 있는 김고로에게 깔끔하고 가벼운 식감과 풍미를 자랑하는 미니크테이블의 생들기름파스타는 적지 않은 충격. 사실 김고로가 집에서 요리했던 들기름파스타는 고소함과 들기름의 풍미가 농축된 잔여감이 오래가는 맛으로 먹었으니까. 미니크테이블에서 준 생들기름파스타는 들기름의 깊고 진한 향이 입과 코로 피어오르듯 전달되면서도 입에서는 사각거리는 마늘종이 김고로를 즐겁게 했다. 김고로는 파스타에 있는 기름의 맛이 궁금하다, 숟가락을 들어서 마늘과 마늘플레이크, 기름을 가득 퍼담는다.



후루룩


가볍고 깔끔한 기름에서 고소하고 짭짤한 맛, 거기에 고춧가루에서 터져 나오는 매콤함, 그리고 부드럽게 익은 마늘이 씹히면서 은은한 달콤함이 입안 전체를 감돌며 천천히 덮어나간다. 오일파스타를 먹었는데 입안이 미끌거리고 느끼함이 아닌 깔끔하고 개운하며 들깨의 고소함과 마늘의 달콤함은 놓치지 않는다. 훌륭하고 신선한 식재료와 미니크테이블 셰프님의 요리가 함께 조화되며 빛을 발하는 파스타.


"오일 파스타에서 이런 맛도 표현이 가능하다니, 감동이다."



이쁜 그녀가 원하는 양만큼 생들기름파스타의 지분을 나눠준 김고로는 그 이후 파스타의 면과 마늘 등 부재료까지 먹어치우고는 숟가락을 들고서 그릇을 빈접시로 삭삭 긁어먹고는 그릇을 들고서 다시 숟가락으로 싹싹 기름을 입안으로 밀어 담아 빵 없는 스카르페타로 설거지를 한다. 요리를 한 셰프에게 김고로가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 기립박수만 안 쳤지, 김고로의 진심을 담은 최고의 표현은 '입으로 설거지'하기.


즐거운 식사를 마친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강릉 유천에서 거리가 있는 위촌리기에 택시도 잡히지 않으니 덥고 습한 여름밤을 유유자적 걸어가기로 한다. 입에서 들기름의 고소함은 남아있지 않지만 혀와 코로 기억할 수 있는 그 고소함과 깔끔함의 맛을 되새김하기 위해 입을 쩝쩝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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