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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Aug 05. 2024

[미식일기] 삼산감자탕, 강릉

삼산이 대체 어디길래 이렇게 감자탕을 맛있게 하나

강릉은 지리적, 역사적 요건으로 인하여 지역 특유의 육고기 요리가 많이 발달하지는 않았다, 그중에서 몇 가지를 꼽자면 강릉시내부터 주문진까지 찾아볼 수 있는 소머리국밥과 뼈해장국 정도일까. 그나마 강릉시장이나 주문진을 제외하고는 노상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고 특히나 이러한 육고기를 활용한 뜨거운 국물요리를 하는 곳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강릉에 와서 감자탕 집 괜찮은 곳이 어디려나 하고 꼽아보면 입암동에서 장사를 하다가 초당동으로 옮겨와서 번영한, 필자도 찾아가서 맛보고는 반해버린 초당콩감자탕 집 정도를 지인들에게 추천할 정도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지역의 모루도서관에서 동호회를 운영하러 왔다 갔다 하면서 김고로의 눈에 들어온 '삼산감자탕'이라는 엄청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식당이라고 말하기에도 어려운 동네 감자탕 집. 평일이나 주말이나 김고로가 이 집 앞을 저녁에 지나갈 때면 항상 사람들이 적어도 전체 자리의 반 이상을 차지하거나 식당을 가득 메우고는 감자탕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한, 두 번도 아니고 거의 매번 목격되었다. 그렇다면 김고로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렇게 꾸준한 수의 손님들의 방문이 여러 번 보이면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식당의 맛을 어느 정도 보장해 주는 증거다, 방송 매체에 출연한 곳도 아닌 동네의 식당이 이러기는 쉽지 않을 일인 것이다. 그렇게, 삼산감자탕은 동네를 어슬렁 걸어 다니면서 골목이나 길가에 자리 잡은 식당 들어가기 좋아하는 김고로의 발걸음을 잡아당겼다.


"오늘은 저기 삼산감자탕 가보자."


"아... 거기, 나도 겉에서 보기만 하고 가 본 적은 없는데."


무더운 날의 여름, 열대야가 맹위를 떨치던 주말의 어느 저녁, 김고로는 이쁜 그녀에게 산책도 하면서 맛있는 저녁도 먹을 겸 걸어서 2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삼산감자탕으로 향했다. 삼산감자탕은 강일여고를 지나서 동쪽으로 더 향하면 강릉역, 북쪽으로 향하면 주문진, 남쪽으로 향하면 강릉 시내에 도착하게 되는 큰 사거리의 12시를 북쪽으로 기준으로 했을 때 5~6시 방향에 자리 잡은 감자탕 집이다. 그 옆에는 교자만두로 그 사거리의 터줏대감처럼 오랫동안 자리를 잡아온 한양만두 집이 함께 어깨를 마주대고 서있다.


초록색의 굵은 선으로 산이 3개가 그려진 연두색 배경의 '삼산감자탕'이라고 쓰여 있는 식당의 상징이 그려진 간판이 보이니 식당 외벽의 통유리를 통해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서 감자탕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행히도 식당 안쪽에 자리가 몇 개 있으니 자리를 기다려야 할 걱정은 사라진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두 명이예요."


삼산감자탕의 사장님들로 보이는 부부 내외가 순차적으로 우리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하시고는 자리를 안내하신다. 나무와 유리로 이루어진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는데 문 옆에 종이로 'SNS와 전화 예약 안 받습니다.'라고 쓰인 간단한 안내가 보인다.


'평소에 단체 예약 전화가 곧잘 오는가. 신기하네.'


사람들을 가능한 많이 받기보다는 동네에서 지역주민들을 주 고객으로 길고 꾸준하게 '동네 장사'를 지향하는 집으로 보이는 인상을 주는 안내문. 메뉴는 감자탕과 그 작은 형태인 '해장국' 두 종류에 우동, 라면, 야채, 등뼈 사리 등 추가 메뉴와 볶음밥이 전부이니 이 집은 등뼈로 만든 탕국 요리 하나로 지금까지 꼿꼿하게 등뼈를 세우고 살아온 곳임을 보여준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보이면 널찍한 주방이 알루미늄과 불투명 창으로 부엌이 가려져있고 4~5팀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홀, 그 뒤로 좀 더 가면 2팀이 더 앉을 수 있는 큰 식당은 아니기에 단체 예약을 받게 되거나 유명해지면 동네 손님들은 앉지도 못할 식당이라는 생각을 하는 김고로였다.


이쁜 그녀와 자리에 앉아 감자탕 작은 것을 주문을 하니 김치 3종 세트가 바로 식탁에 등장한다. 열무 물김치와 커다란 깍두기와 하얀 백김치. 마침 더웠던 참이라 물김치를 건져 씹으면서 김칫물을 들이켠다.


(위에서부터) 백김치, 깍두기, 열무물김치


"크으... 이거 고소하고 시원하네, 메밀풀이다."


"그래?"


춘천의 장모님께서 곧잘 해주시는 메밀풀을 넣어 만든 물김치를 먹어본 적이 있던 김고로는 장모님의 따님에게도 물김치를 권한다.


"진짜 이거 메밀풀이네."


"응, 어쩐지 더 구수한 맛이 있지."


그리고 깍두기와 백김치를 썰어서 연이어 먹어본다, 시원하고 매콤한 깍두기와 시원하고 개운한 백김치의 맛. 일단 김치만으로도 합격이다. 역시나 해장국집, 갈비탕, 곰탕, 칼국수 집들은 김치가 비장의 무기지. 거기에 식탁 위 가스불 위로 올라오는 감자탕. 눈처럼 쌓아 올려진 콩나물, 우거지, 깻잎에 그 밑은 얼마나 많은지 차마 보이지 않는 돼지등뼈들과 감자조각들이 묻혀있다. 이게..... 작은 거라고? 이게 '소'자야?



"양이 상당히 많은데, 기대되는구먼."


배가 고프기 시작한 이쁜 여자는 함께 나온 집게와 국자를 집어 들고는 고기들 위로 수북하게 올려진 채소들을 국물에 익히기 위해 살며시 올리고 내리고, 국물에 적시기를 반복하면서 감자탕이 더 빠르게 익도록 손을 움직인다, 고기들의 색을 보아하니 이미 감자탕 육수에서 한번 정도는 삶아져서 익혀져서 한번 더 끓이면 먹을 수 있게끔 초벌이 되어서 나온 것이다. 부글부글거리면서 채소들이 뭉근하게 익어서 부드러워지고 고기들도 데워졌으니 각자 그릇에 담아서 국물과 고기들을 맛본다.



후루루룩


"어우, 시원하고 고소해."


국물은 된장 베이스와 들깻가루 등으로 화려한 조미료 없이 단순하게 맛을 내었지만, 고소한 된장과 들깨의 풍미가 어우러지면서 콩나물과 우거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맛이 깊다. 그리고 무슨 마법을 부리셨는지 국물은 고소함이 입안에서 길게 이어지고 사라질 기미가 없다.


우적우적


알맞게 된장 육수를 머금고 익은 우거지가 부드럽고 탄력 있게 씹히며 고소함에 개운함, 다른 식감을 더한다. 콩나물과 우거지, 깻잎을 먹으면서 고소한 육수로 입안을 적당히 적셨으니 이제는 고기를 집어서 씹어볼 차례.


감자탕에 투입되기 전에 살이 튼실한 등뼈들은 양념이 가득한 국물 속에서 오랫동안 목욕을 즐기고 와서 다시 열탕에서 익힌지라 젓가락과 치아로 조금씩만 흡입하고 조각을 내려하니 금방 살덩이들이 덩어리째 뼈만 남기고 떨어져 나온다. 잘 삶아진 등뼈에서 나온 살코기의 그 맛과 식감은 묘사하지 않아도 상상이 금방 될 것이다. 부드러운 첫 식감으로 시작해서 그저 조각조각, 여러 개의 살결로 갈라지는듯한 육질이 쫄깃하게 어금니들 사이에서 쉼 없이 씹힌다. 조금씩만 씹고 또 씹을수록 고기들이 머금고 있던 들깨와 된장의 고소한 맛이 뼈에 붙은 속살에서부터 새어 나온다.


"고기에 간이 엄청나게 잘 배었어, 양념육수에서 잘 자다가 나왔네 고기들이."


고깃 조각들을 씹으면 씹을수록 육수의 고소한 맛이 그 결 하나하나에서 새어져 나온다, 육수에 젖은 고기의 겉면과 머금고 있던 속살이 입안에서 뒤섞이면서 길게 이어지는 고소함이 끝나지 않는다, 빠져나올 길이 없다.


"저기 사람들은 라면사리를 넣어먹네."


"그러게... 우리는 뭐 넣어 먹지...? 일단은 처음이니까 볶음밥으로 먹자."


"그래."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감자탕에 노란 봉투로 포장된 라면사리를 넣어서 먹는 모습이다, 이럴 때는 주변 사람들이 뭘 어떻게 먹는지 살펴보고 따라가는 것이 맞다고 나의 마음이 얘기를 하고 있지만 머리로는 '처음 와 본 곳이니 기본을 먹어보자'라고 하기에 김고로는 머리의 말을 따라갔다, 어차피 또 와서 또 먹겠다고 마음이 한마디를 얹었기 때문에.


볶음밥을 먹기 위해서는 채소와 고기를 포함한 건더기를 다 먹어야 하는데, 먹으면 먹을수록 감자탕이 담긴 냄비 바닥에서 고기들과 감자들이 계속 발굴되어 나오니 이것이 정말 2~3인분인가 싶은, 감자탕 '소'자가 정말 맞는지 의심이 가는 가격과 양이었다. 냄비 바닥에 깔려있던 감자들을 다 먹고 채소들과 고기까지 깨끗하게 비워서 먹은 이후에야 우리는


"사장님, 저희 볶음밥 1개만요."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감자탕에서 고기와 감자가 끝없이 나와서 2명으로는 볶음밥까지 가는데 오래걸린다

남아있던 국물을 퍼내고 밥을 넣어서 볶기 시작하는 아내 사장님, 주걱을 이용해서 밥을 볶으면서 밥알 사이사이를 조심스레 눌러보시면서 볶는다. 혹시나 작은 돼지뼈 조각들이 남아서 손님들이 씹을까 봐 신경 쓰시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김치와 김가루와 참기름을 넣고서 슥슥 찰진 볶음밥이 완성된다. 완성이 되자마자 이쁜 그녀가 한입을 떠먹고는,


"음~ 진짜 참기름이다."라고 말한다, 고소한 향기와 맛이 진하고 깊은 좋은 참기름을 쓴다는 말이다. 계속 먹으면서 이쁜 그녀가 한 마디 더 한다.


"쌀이 맛있어, 그런데 이거는 라면을 넣어 먹었으면 더 맛있었겠다."


"그래?"


김고로도 그제야 볶음밥을 한 숟가락 떠먹는다, 고슬고슬하면서 찰진 밥알이 고소한 맛을 내면서 씹힌다. 하지만 이렇게 고소하고 진한 국물이라면 정말로 라면 사리를 넣어서 먹는 것이 훨씬 더 맛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네 말이 맞네. 라면 먹었어야 했어, 어쩐지 다들 라면 사리를 먹더라니."


"다음에 오면 라면사리 넣어먹자."


"그래, 그러자."



고소하고 개운한 그 길게 입안에 맛을 남기는 국물에 탱글거리고 얇은 면발이라면 다른 사리들보다 당연히 훨씬 좋은 맛을 내겠다는 생각이었다, 역시나 나의 마음이 외치는 소리가 옳다. 여사장님이 잠시 근처에 오시길래, 말을 붙이는 김고로.


"사장님, 제가 여기 처음이라서 그러는데 영업을 얼마나 하셨나요?"


잠시 생각하시던 사장님은 금방 답을 주신다,


"한 10년... 되었나요? 그 정도 되었어요."


"아아... 그러셨군요."


꾸준하고 맛있는, 실력 있는 집들은 오래 살아남는다. 이 가게는 그동안에 코로나19 시대를 포함한 많은 시간들을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는 것, 식당으로서 그 뜻은 맛이 훌륭하고 고정적인 고객들이 떠나지 않았다는 말이겠지.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다음에는 꼭 라면을 넣어서 먹겠다는 다짐을 하며 삼산감자탕을 떠났다.



추신. 삼산리는 강릉의 최북단에 있는 연곡면에 포함된 행정 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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