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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Dec 16. 2024

[미식일기] 명동우미닭갈비, 춘천

매콤한 닭갈비, 시원한 동치미, 철판에서 박박 긁어 돌돌 말아먹는 누룽지

김고로와 함께 살고 있는 이쁜 그녀의 고향은 춘천이다. 즉, 김고로의 처갓집은 춘천에 있다는 얘기와 같기에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 전후나 이쁜 그녀의 생일 전후가 되면, 혹은 아무런 이유 없이 이쁜 그녀가 '엄마아빠 보고 싶어'라는 느낌이 들면 휙 하고 편한 마음으로 향할 수 있는 집이 있다는 말과도 같다.


마음으로는 소원하지 않지만, 물리적인 거리가 강릉과는 멀어 1년에 많아야 겨우 두어 번 갈 수 있는 김고로의 친지들이 모여사는 부산과는 다르게 버스를 타면 2시간이 조금 넘어서 도착이 가능한 춘천이기에, 이쁜 그녀와 김고로의 생일의 중간쯤 되는 일자에 처갓집에서는 생일상을 거하게 차려주신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마치 그날이 추석날 당일의 밥상과 같아 보일 정도로 거나하게 차려주시는 밥상을 장모님께 받노라면 황송하기 그지없다. 올해에도 11월과 12월이 교차되는 시기에 이쁜 그녀의 손을 잡고 춘천을 다녀온 김고로.


춘천을 갈 때, 닭갈비가 먹고 싶으면 항상 들리는 닭갈비집이 있으니 '명동우미닭갈비'이다. 1960년대 말 선술집에서 숯불에 구워 먹는 술안주인 '닭불고기'라는 이름으로 김영석 씨가 중앙로에서 팔기 시작한 것을 유래로 이런저런 브랜드의 이름이 붙어 널리 퍼지기 시작한 음식이 춘천의 '닭갈비'라는 것을 알지는 못해도, 춘천이라 하면 영서식 막국수의 수도이자 닭갈비의 원조라는 건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명동'이나 '우미'라는 이름의 브랜드도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는데, 김고로가 이쁜 그녀 그리고 처가의 식구들과 함께 가는 이 '명동우미닭갈비'집도 그중 하나이겠다. 외지인들과 관광객들보다는 식당이 자리 잡은 동네 근처의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동네맛집'이지만 근처에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다른 닭갈빗집들과 함께 동네 닭갈빗집들 중에서도 오래된 경력을 자랑하고 많은 연예인들이 오가기도 한 가게이다.


김고로의 기준에서는 '오랫동안 살아남은 동네맛집'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이상의 대중을 만족시키는 맛이 보장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기에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할만하다. 그리고 김고로가 결혼하기 이전에 처가를 방문했을 때, 처가 부모님들께서 이 집을 자주 데려와주셨는데 그때부터 이 집에서 닭갈비와 누룽지볶음밥을 먹으면서 명동우미닭갈비는 김고로의 머릿속에 그 맛을 각인시켰다.


김고로가 이쁜 그녀와 함께 춘천을 방문한 12월 초, 명동우미닭갈비를 방문하는 날 정오 즈음, 먹구름이 천천히 모여드는 꾸리꾸리한 빛의 하늘에서는 작은 눈발이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지만 그렇게 추울수록 뜨끈한 닭갈비와 시원한 동치미 곁들임은 더 맛이 좋지 않겠는가. 장모님과 이쁜 그녀의 사촌 동생인 D양, 그리고 이쁜 그녀와 함께 명동우미닭갈비로 입장했다.


몇 개월 전에 방문했을 때에는 바닥에 앉아서 먹는 좌식이었으나, 입식으로 깔끔하게 바뀐 식당과 활기찬 종업원들의 모습, 그리고 가득 찬 손님들의 웅성거림에 압도된다. 계산대에 앉아계시는 사장님은 그동안에 식당의 소유권자에 대한 변동이 있었는지 다른 분이 서계셨다. 이제 막 12시가 지난 점심시간의 시작이었지만 이미 식당에 자리가 잘 안보였지만 두 자리 정도가 남아있어서 겨우 자리를 사수하는 김고로일행.


옆 자리에는 서울에서 올라와, 춘천에 있는 이른 결혼식 행사를 마치고 만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낮술을 마시기 위해 의기투합하여 모인 젊은 남녀들이 이미 맥주와 소주를 말아먹으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애교스러운 목소리와 웃음 가득한 면면으로 술자리를 가지는 모습. 그래도 이 신사숙녀분들께서 옆에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신 어르신과 가족들이 앉으니 술자리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왁자지껄함을 낮춰서 노는 배려에 감사했다.


"닭갈비 4인분에, 누룽지볶음밥으로 먹자."


"누룽지 볶음밥은 일반 볶음밥보다 2천 원을 더 받네."


"누룽지 볶음밥을 만드는 수고비인가 보지, 그래도 이게 훨씬 맛있잖아."


"그건 사실이야."


잠시 일반 볶음밥보다 조금 더 값이 나가는 누룽지볶음밥에 대한 의문이 일었지만 철판에 바싹 구워서 먹는 볶음밥에 대한 의견은 모두 같았기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닭갈비를 주문하자마자 등장하는 닭갈비와 커다란 대접의 동치미, 동치미에 둥둥 떠오른 직육면체의 무조각이 마치 버터조각처럼 보이는 착각이 든다.


철판에서 볶아먹는 닭갈비 방식이기에 겉으로는 그 맛이 표현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맛이 괜찮은 집이다
맑고 달콤한 명동우미닭갈비의 동치미, 치킨무와 같은 탄산감이나 청량함은 없지만 목 넘김이 부드럽고 새콤하며 달달하다. 이 식당에서 물보다 더 많이 마시게 되는 마법의 약이다.

자리에 앉아서 가게를 둘러보면 커다란 철판이 올려진 나무 식탁에 드럼통과 같은 검은 의자들, 스테인리스와 화구, 깔끔한 타일로 무장한 주방. 검은 반팔과 긴바지 그리고 앞치마를 두르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닭갈비를 볶고 볶음밥을 뒤집는 젊고 건장한 종업원들. 형광등이 십자 모양으로 빛나고 벽면과 창문에 쓰인 연예인과 방송출연의 흔적과 전국택배가 가능하다는 안내판. 식당의 겉과 안의 인테리어와 사람은 바뀔지 몰라도, 다 볶아진 닭갈비를 한입 먹은 김고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한다, 이 맛은 바뀌지 않았구나.

닭갈비는 이름과는 다르게 볶음이든 숯불구이든 커다란 닭다리살을 손질하여 사용한다, 초기 닭갈비의 형태는 어땠을지 가늠할 수 없지만 (혹시나 아시는 분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달라) 볶음 닭갈비는 순살로 먹는 것이 훨씬 편하다. 그래서 처음에 닭갈비를 부르던 명칭인 '닭불고기'가 조금 더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싶지만 '닭갈비'라고 부르는 것은 그래도 귀한 갈비를 뜯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명동우미닭갈비의 양념은 살짝 매콤한듯하지만 그 뒤로 은은한 달콤함과 감칠맛이 확 치고 올라온다, 주변 동네 닭갈비집에서 느낄 수 있는 카레가루의 향과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달콤함과 적당한 짭짤함으로 혀와 입안을 콕콕 자극하며 자물쇠가 단단히 걸려있던 침샘의 빗장을 열고 침이 울컥하고 쏟아진다. 마치 소양댐이 그 물을 시원하게 방류하듯 막을 수 없는 식욕과 감칠맛이 침과 함께 혀와 치아 사이에 생긴 호수를 가득 메운다.

여기에 양배추의 아삭하고 부드러운 단맛과 고구마의 살짝 사각거리고 파삭한 식감, 쫄깃하게 구워진 떡의 식감까지 더해진다. 매콤 달콤한 양념을 가득 먹이고 오랫동안 재운 닭갈비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소하고 기름진 닭다리살의 육즙과 닭고기의 풍미가 다른 재료들과 함께 어울려 '닭갈비'라는 음식을 완성시킨다. 어느 식당에서 먹던지 적절한 양념과 부재료, 신선한 닭살이 더해진 닭갈비는 존재만으로도 식욕자극제이며 보양음식이라고 김고로는 강력히 주장한다.


김고로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국 어디서든 닭갈비를 찾아서 먹어볼 수 있을 만큼 국민들에게는 보편화된 음식이나 그중에서도 매콤함과 단맛에 이은 감칠맛, 그리고 신선한 닭맛을 선사하는 식당들이 더욱더 유명해진 이유가 아닐까 추측한다. 물론 닭갈비를 먹은 후에 별미로 먹는 볶음밥도 몇몇 식당들에게는 손님들을 더 끌어모으는 원동력이 되었겠지.


"닭갈비도 거의 다 먹었으니, 이제 슬슬 밥을 볶아달라고 해야겠네요."


한국인들의 후식인 볶음밥을 주문했던 김고로 일행은 이 집의 별미인 누룽지볶음밥을 먹기 위해 점원을 부른다. 닭갈비 양념이 눌어붙어있던 철판을 깨끗하게 비워낸 점원은 볶음밥 재료를 가득 담아와 마법을 부리기 시작한다.

부엌에서 대량 조리를 할 때나 볼 수 있을법한 도구들을 가져와서 상추, 김가루, 밥과 닭갈비 양념장 조금으로 밥을 척척 뒤집어 돌리면서 볶더니 일부러 철판에 밥을 꾹꾹 눌러서 넓게 편다, 그리고는 양념장에 함께 들어있던 기름과 철판 위에 남아있던 기름으로 밥을 전처럼 바삭하게 굽는다.


"이것도 따로 배우시는 건가요?"


"네, 여기서 직원으로 일을 시작하면 알려주세요."


20대 초반 정도로 앳되보이는 점원에게 김고로의 장모님이 묻자 점원이 멋쩍게 웃으면서 이 일도 나름 전문직임을 얘기한다. 철판에 볶음밥을 잘 눌러서 긁어 돌돌 말아 '누룽지롤'을 만드는 조리법도 쉽지 않아 보인다. 손재주가 없는 김고로는 감히 따라 하지도 못할 기술이다.

볶음밥을 넓게 눌러 지져 누룽지처럼 굽는다, 최대한 얇게 구운 누룽지볶음밥을 말아서 내놓는 누룽지볶음밥이 별미다

바사사삭


쫄깃


누룽지처럼 구워진 볶음밥이 과자처럼 바삭하게 씹히면서 양념장과 함께 서로 엉겨 붙은 밥알들이 쫄깃하게 늘어지면서 치아 사이로 씹힌다. 밥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매콤하고 달달한 양념의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바삭한 누룽지의 면들과 함께 과자가루처럼 혀위로 덧뿌려지는 기분이다.


명동우미닭갈비에서는 누룽지볶음밥이 있기 때문에, 일반 볶음밥을 먹는 손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고로가 식사를 하던 때마다 주변을 돌아봐도 항상 점원들이 돌아다니며 볶음밥을 롤형태로 돌돌 말고 있던 모습들이었으니까. 약간의 추가요금이 발생하고 누룽지롤을 만들 수 있는 점원들의 수고가 필요하지만 바삭하고 쫀득한 탄수화물을 선호하는 손님들의 입장에서는 이만큼 만족스러운 볶음밥이 또 어디 있을까. 거기다가 집에서는 만들어먹기도 쉽지 않은 형태의 음식이기에 누룽지볶음밥의 가치는 더욱 높다.

닭갈비와 볶음밥을 먹고 나서는 식사 중간중간에 퍼먹느라 사라진 동치미를 다시 채움 받아서 입가심으로 마시고는 '크으'하면서 입을 쓱 닦는다. 기름지고 강렬했던 닭갈비와 누룽지의 맛을 상큼하게 발효된 채소의 맛으로 갈무리 짓는 이 음식들의 구성을 누가 처음 개발했는지는 몰라도 역사적인 천재가 틀림없다.


명동우미닭갈비에서 평일에 즐기는 낮술과도 같은 즐거운 시간을 보낸 김고로 일행은 다시 눈발이 날리는 춘천의 시내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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