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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Dec 08. 2024

[미식일기] 콜롬보식당, 강릉

콜롬보 형사도 추리하다가 고기 구워 먹고 내장전골에 소주 한 잔 할걸?

일요일이라 아침과 점심을 대충 배만 부를 정도로 먹었다, 뜨끈한 방바닥에 온몸을 지지며 뒹구는 하루를 보내면 딱 좋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방바닥에만 누워서 하루를 쉽게 흘려보내기에 11월 말의 주말 하루가 아쉬웠다. 요 며칠간 갑작스레 추웠던 며칠에 비해서 따스한 해가 비치는 낮과 저녁의 사이, 아직은 해가 넘어가기 전에 나와서는 강릉의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좋아하는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서 산책도 하고 좋아하는 간식 집인 강릉달떡젤라또에 들려서 떡젤라또(고급진 찰O아이스라고 생각하시라, 김고로의 다른 글에서 소개를 드렸다) 몇 개, 이쁜 그녀와 사 먹고는 돌아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날이 생각보다 푸근했기에 걷고 또 걸어서, 오래간만에 시장에 나왔으니 강릉달떡젤라또에 들렸다가 새로 생긴 베트남 카페에 들러 반미와 한국화 된 베트남 커피도 한잔하고 계속 남대천 방향으로 걸었다.


강릉 중앙시장에서 남대천은 그리 멀지 않기에 잠시 잠수교를 건너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눈에 노포 식당이 하나 밟혔다. 음식기행가 및 만화가로도 유명한 ㅎ화백님이 들리시기도 했던 콜롬보식당, 이전에 잠시 지나쳤을 때에는 닫혀있었는데 역시나 평소에는 항상 열고 계신가 보다.


"오늘 저녁은 여기서 먹을까, 고기구이에 내장전골 어때?"


예정되어있지 않았던 저녁 외식이었지만 김고로는 한번쯤 가보고 싶었던 식당이었기에 이쁜 그녀에게 바로 건의한다.


"좋아, 난 상관없어."


판자로 기워놓은 듯한 오래된 건물에 어울리는 허름하고 때와 얼룩이 낀 붉은색 처마, 낡은 외벽과 내벽을 구분 지어주는 검은 철제 프레임의 다단 미닫이 문, 바깥에는 연탄을 뭉근하게 피우고 있는 드럼통의 노포 좌석들이 가게 천막을 따라서 3개 정도가 마련되어 있다.


"몇 분이세요?"


"저희 두 명이에요."


날씨가 점차 추워지기 시작했지만 드럼통 식탁마다 연탄을 피우고 있기에 따뜻했는지 미닫이 문은 활짝 열고, 드럼통마다 2명에서 4명 정도의 손님들이 둘러앉아서 고기구이에 소주를 기울이거나 이미 내장전골을 나눠 먹고 있다.


흰머리가 성성하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라 즐겁게 떠드시는 어르신분들과 김고로보다 몇 살은 더 어려 보이는 젊은 나이대의 손님들, 하루 일과가 끝나고 귀가 전에 동료와 소주 한잔을 따르는 중년  남성분들까지. 주인장 어르신의 깊게 파인 주름만큼 오래된 노포 콜롬보식당은 다양한 사람들을 품고 있었다.


주인장 어르신보다 수십 년은 어려 보이는, 주인장 어르신께 이름으로 불리는 따님으로 보이시는 분이 함께 조리와 홀을 도우시고 계셨다. 원래는 하얀색이었을 천장과 가게 내벽은 기름과 연기, 습기 등으로 얼룩지고 기울어지고 울룩불룩 주름져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손님들이 이 가게를 거쳐갔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홀과 주방 사이에는 사람의 허리정도 오는 스테인리스 조리대 정도만이 가로막고 있기에 주방에서 무슨 음식을 끓이고, 반찬을 꺼내는지 한눈에 보일 정도. 홀에는 격자 모양의 옷걸이와 활동을 쉬어가는 벽걸이 선풍기, 종이와 플라스틱 메뉴판등으로 덕지덕지 장식이 되어있고 이 가게를 다녀간 연예인들이나 방송프로의 흔적들이 손님들의 시선을 끈다.


형광등 아래에서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옷가지들을 정리하며 식사를 할 준비를 하니 젊은 사장님께서 반찬과 식기류를 내어오신다.


수확한 지 얼마 안 된 배춧잎 몇 장, 청고추와 편마늘, 푹 삭은 김치와 왕소금에 강원도식 까막장. 이 다섯 그릇이 고깃집인 콜롬보식당 반찬의 전부이다. 이런 구성을 어디서 봤었더라, 아 태백의 연탄구이 집인 할매곱창에서 봤었다. 찬은 이곳만큼이나 적게 나왔지만 고기와 곱창, 막국수가 어마어마하게 맛있었던 그곳.


적게 나오는 반찬의 가짓수만큼이나 주 메뉴인 고기구이의 맛이 훌륭할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 김고로. 소곱창, 삼겹살, 소고기, 갈매기살 중에서 주변 사람들이 많이 시켜 먹고 있는 메뉴는 갈매기살로 보이니 김고로도 갈매기살을 주문한다. 옆 테이블에서는 이미 내장전골을 먹고 있었는데 국물도 안 남았다. '고기를 구워 먹은 후에는 내장전골을 먹어야겠어', 김고로는 생각했다.


"이 김치 무지하게 맛있는데?"


아삭아삭


김고로와 마찬가지로 김치와 밥 없이도 식사가 가능한 이쁜 그녀가 김치에 대한 칭찬을 하자 김고로도 따라서 젓가락을 들어 올린다. 시큼한 묵은지의 신선한 냄새가 젓가락 끝에서부터 올라오니 안 먹어볼 수가 없다.


사각사각


김장항아리에서 적어도 삼 년은 있다가 막 꺼낸 묵은지의 맛처럼 시큼하지만 시원하고 깊은 맛의 김치가 입안에서 침샘을 폭포처럼 자극한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김치에 소주만 먹어도 맛있다고 할 만큼, 김치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도 콜롬보 식당의 김치를 서너 번은 더 달라고 해서 먹었다. 먼 옛날에 김고로가 대학생 시절,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김치냉장고 통에서 가득 썰어 주시던 맛이 나는, 추억을 자극하는 김치의 맛이었다.


"갈매기살 나왔어요~"


"감사합니다."


돼지고기 중에서도 쫀득하고 육즙이 가득하기로 유명한 갈매기살, 경북 지역에서는 돼지의 간 밑을 받쳐준다고 하여 '간받이'라 불리는 인기 특수부위이다. 대부분은 살코기이지만 지방이 적절하게 섞여있고 항상 움직이는 부위이기에 쫄깃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불을 제법 세게 틀어놓은 연탄 위로 두툼한 불판 하나 올리고 그대로 '치익' 소리 내면서 익어가는 고기의 뜨거움, 그리고 널찍하게 열린 빈 공간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상반되며 마치 캠프장에서 고기 구워 먹는 기분이 든다. 물론 정말 추운 날에는 문을 닫아두고서 장사를 하시겠지만 이 날은 문을 열어놔도 괜찮았다.


"연탄불이 강력하다 보니 센 불에서 고기가 금방 익네. 이전에 숯불이나 연탄불에서 고기 처음 구울 때, 불이 이렇게 센 줄 몰라 얼마나 애 먹었다고."


"홀라당 태웠겠구나."


"거기다가 탄 고기는 못 먹잖아. 태운건 둘째 치고, 슬펐지."


김고로가 고기를 구울 줄 몰랐던 시절의 썰을 풀며 고기를 몇 번 뒤집으니 갈매기살이 금방 쫄깃하게 익기 시작한다.


"자 먹자, 연탄 불은 금방이라니까."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완전히 바싹 익은 고기보다는 살짝 덜 익은 레어, 혹은 미디엄레어로 구워진 고기를 더 좋아한다. 완전히 익으면 질겨서 맛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육즙이 불빛에 비쳐 반짝거리고 기름기가 다 가시지 않은 촉촉한 고기의 단면과 겉면이 먹음직스럽다.


우적우적


바삭하게 익은 갈매기살의 겉과 육즙을 그대로 머금은 채 탄력적으로, 입안에서 역동적으로 씹히며 위아래로 저작운동을 돕는 턱이 만나 황홀한 식감을 만들어낸다. 쫄깃함을 사랑하는 떡의 민족인 한국인이 갈매기살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고기가 오르락내리락 씹힐 때마다 잘 익은 액젓과 같은 육즙이 물폭탄처럼 터져 나온다. 내 입안에서 고이고 흐르는 액체가 침인지 육즙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이다.


"아, 이 정도로 맛있으면 반찬 없어도 맛있지."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왕소금을 콕콕 고기에 박듯이 찍으면서 다시 고기를 한입에 털어놓고 씹는다, 우적우적하는 고기 씹는 소리와 맛이 바깥으로 다 새어 나올 정도이다. 육즙과 기름이 끝없이 흐르다 보니 입술이 이미 번들거린다.

작은 고기 몇 점에, 까막장, 마늘을 얹어 배추쌈을 베어문다. 달달한 배춧잎 위로 불맛과 달착짭짤한 장맛이 환상적이다

고기도 어느 정도 다 먹었겠다, 구운 고기보다는 펄펄 끓는 국물과 국물을 머금은 단백질로 배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다 시켜 먹는 소내장전골을 주문하니 부엌에서는 따님께서 큰 무쇠 편수솥에 육수와 재료들을 수북하게 담고는 펄펄 끓이시기 시작한다.


"당면 넣어드릴까요?"


전골이 어느 정도 끓기 시작하니 부엌에서 사장님이 물으시길래 김고로는 당연히 '그럼요'라고 답해드린다. 맛난 육수를 머금은 당면은 맛이 없을 수 없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드세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찬공기와 만나니 대중목욕탕에 들어간 내 안경렌즈처럼 카메라렌즈에도 김이 가득이다. 투박하게 썰린 대파와 곱창이 '소내장전골'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파반 고기반으로 푸짐한 양의 전골이 등장한다.


"와, 무슨 양이 이렇게 많아."


"양 많으니 잘 되었지. 나는 아직 배고프거든."


김고로는 참지 못하고 국자를 들어 이쁜 그녀에게 먼저 한 그릇, 자신의 것을 한 그릇 뜨고는 숟가락부터 집어 들어 국물을 맛본다.


후루루룩


"크으!"


매콤하고 알싸한 향기와 맛이 처음 혀에 닿더니 진득하고 깊은 고소함과 육수의 구수함이 입안을 가득 덮는다. 따끈하면서 온몸을 녹이는 내장육수의 구수하고 달콤한 맛이 심장과 내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온몸을 녹인다. 탱글거리는 당면에 야들야들한 곱창 몇 점을 집어서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이미 뇌가 강제하는 식사다.


소내장전골에 들어가는 곱창이 크고 많다

우걱우걱


쫄깃쫄깃한 내장이 그 속에 머금고 있던 국물을 놓칠세라 젓가락과 숟가락을 모두 사용해서 뜨끈한 국물에 소곱창을 적셔서 협업을 추진한다. 껌처럼 끊임없이 씹히는 식감의 곱창과 진한 육수가 흐르는 그 텅 빈 공간 사이로 말랑거리는 당면이 찰지게 말렸다. 구수한 고기와 탄수화물이 들어온 이후에는 알싸하면서 달달한 대파가 함께 씹히고 매콤한 국물이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전골이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전골로 밤새 마시겠는데."


"그러게 말이야."


술을 잘 마시지 않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도 '여기에 맥주 한 병 시원하게 먹으면 죽이겠다'라는 농담을 서로 하면서 초록병에 맑은 액체를 기울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참을 소내장전골을 퍼먹는다. 콜롬보식당에서 내어주는 소내장전골의 양이 워낙 많은지라 고작 두 명이서 먹으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곱창의 양이 많아서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어 한참을 먹는다.

결국에는 전골냄비 바닥에 약간의 국물과 파조각만이 조금 남을 때까지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는 수저를 식탁에 내려놓는 일은 참 쉽지 않은 것이다. 식사를 다 마치고는 사장님들께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 김고로, 어르신 사장님께 묻는다.


"여기는 언제 쉬세요?"


그러자 두 분 다 피식 웃으면서 답해주신다.


"우리는 쉬는 날이 없어요. 매일 열어요."


그 대답에 김고로는 역시나 노포 식당이다 싶었다. 어르신과 따님이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면서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다시 강릉 중앙시장의 거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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