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바삭, 푹신한 튀김옷. 청출어람 닭강정의 정석
설 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토요일이었다. 전날 늦은 저녁에 부전역에 도착하고는, 다음날 아침은 재송동 어머니댁 근처의 양산왕돼지국밥에서 모닝막걸리와 함께 국밥을 뜨끈하게 해치운 김고로와 이쁜 그녀.
"고로야, 나 떡뻥(떡국떡을 뻥튀기한 과자) 먹고 싶어."
"그래? 주변에 시장 없나?"
재송동의 저지대에서 어머니댁이 있는 고지대로 걸어가던 그들, 마침 삼거리 골목에 있는 '재송한마음시장'을 발견한다. 전통시장임을 확인한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당연히 홀리듯 한마음시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의 예상대로 아직 설 당일이 되지 않았기에 시장은 설 차례를 지내기 위한 식재료를 사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뻥튀기 등 옛날과자들을 파는 가게들도 문을 다 열고 있었다.
과일가게랑 떡집이 있었는데 그중에 다행히도 과일가게에서 떡뻥을 팔고 있으니, 이쁜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길고 커다란 떡뻥 봉지를 품에 안았다.
"시장 온 김에 한번 둘러보자."
김고로는 이쁜 그녀와 함께 시장을 따라서 길을 걷던 중 금방 '통큰닭강정'을 발견했다. 이제 오전 10시 반을 향하고 있는 시간이었지만 이미 튀김옷을 만들고 닭을 썰면서 준비하고 있는 사장님들이 계셨다.
흰 간판에 검은 글씨로 '통큰닭강정'이라고 쓰인 상호 아래 노랑 바탕 검은 글씨로 '옛날통닭, 순살강정, 양념치킨, 후라이드치킨'이라고 적혀있고 위에는 간판을 밝히는 조명들이 더듬이처럼 나와있었다. 초록색 어닝 아래에 높지 않은 나무데크 위로 점포가 있고 조리실과 손님들이 주문하고 기다리는 성인 허리 높이 정도의 칸막이가 전부다. 칸막이에는 파란 바탕의 메뉴판이 커다랗게 붙어있다. 앉아서 먹기는 어려운 작은 점포라 포장과 배달만 가능한 가게.
이미 국밥을 한 그릇 크게 먹었지만, 메뉴 중에서 가볍게 먹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닭똥집튀김'이 가격이 매우 착했다. 이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메뉴들의 가격들이 합리적이었다, 당연히 김고로의 관심을 끌 수밖에.
"사장님, 닭똥집튀김 하나만 될까요?"
"네? 아, 조금만 기다리세요."
닭과 튀김옷을 준비하시던 사장님 부부 중 아내분께서 '내가 할게'라고 남편분께 얘기하시고는 생 닭똥집을 튀김옷에 버무리고는 금방 튀겨내시기 시작했다.
김고로는 그 사이 이쁜 그녀와 함께 주변을 돌아보며 재송한마음시장을 구경했다. 호떡집, 떡볶이집, 횟집, 과일집, 떡집, 정육점 등등 전통시장에 있을만한 가게들이 많았지만 아무래도 설차례상 장보기에 관련된 집들만 주로 열려있었다.
"닭똥집 나왔습니다, 소스 같이 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그냥 가면서 먹으려고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사장님께서는 가게에서 무료로 주시는 소스를 권하셨지만, 걸어가면서 먹고 싶은 김고로는 소스에 찍어먹는 일이 불편하겠다 싶어 거절했다. 집까지 올라가는 길이 오르막에 조금 걸어가야 해서 소스까지 찍어먹으려면 무언가 거추장스러울 듯했으니까.
김고로는, 휴게소에서 통감자를 담아줄 때 쓰이는, 일회용 종이사발에 담긴 윤기 나는 닭똥집튀김을 이쑤시개로 집어 먹어본다.
바사삭
쫄깃
"오?"
김고로의 눈이 번쩍 뜨인다. 한국에서 주로 먹던 닭튀김의 두껍고 바삭한 튀김옷을 기대했던 김고로, 그 기대와는 다르게 바삭하고 가벼운 질감의 튀김옷이 어금니 사이에서 부스러지면서 푹신한 튀김옷이 잇몸을 덮는다. 그리고 기름에 의해서 함께 익은 닭똥집이 쫄깃한 식감을 부드러운 튀김옷 사이에서 뽐낸다.
"와, 튀김옷이 미쳤네. 이렇게 가볍고 푹신하냐. 이것 좀 먹어봐."
동네 전통시장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맛이 나오자 김고로는 신이 났다, 이쁜 그녀도 배가 불렀지만 김고로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는다. 서로의 입안에서 들리는 튀김옷 부서지는 소리가 경쾌하다.
"맛있네? 여기 맛있다. 정말 바삭해."
김고로는 닭똥집튀김이 심히 맛있어서 재송한마음시장을 빠져나오기 전에 다 먹어버렸다. 배가 부르지 않았다면 후라이드닭강정도 먹었음이 분명하다.
'부산에 머무르는 동안에 꼭 닭강정도 먹어야겠어.'
김고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짐했다. 그리고 그 기회는 바로 다음날 찾아왔다. 김고로의 저녁 식도락 일정이 끝나고서 집에서 편하게 배달음식 종류를 먹자고 결정이 되면서 김고로는 바로 재송한마음시장에 있는 통큰닭강정에서 닭강정을 사서 먹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노란 지도 어플에서 찾아보니 동네 사람들의 인기 닭튀김 집이었는데, 전화로 미리 주문도 가능하다고 팁을 알려주는 분이 계셔서 김고로도 바로 시행했다. 전화를 걸어서 순살 닭강정을 후라이드 하나, 양념 하나 주문했고 후라이드에는 찍어먹는 소스도 추가했다. 찍어먹는 소스와 양념 소스는 다른 맛이라고 하셔서 그 맛이 궁금한 김고로였다.
저녁 7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전통시장을 가니 불을 켜놓은 상점들은 많이 없었지만 통큰닭강정은 간판에 LED등을 환하게 비추며 계속 닭을 튀기고 계셨다.
"저 아까 전화한 순살 후라이드 하나, 양념하나요."
"이제 막 나왔어요, 찍어먹는 소스 따로 넣어드렸어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시장 앞에서 내린 김고로는, 버스정류장에 바로 잇따라 들어오는 버스로 환승을 해서 편하게 어머니댁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원하시는 식사를 하시러 밤마실을 나가시고, 어머니께서 잠시 없는 어머니댁에서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그 집이 자신들이 주인인 듯 거실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 온 무알콜맥주를 곁들여 치맥을 시작한다.
문구점에서 팔던 두꺼운 종이 재질의 닭튀김박스 2개를 연다.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닭튀김의 냄새가 고소하게 피어오르며 김고로의 코를 간지럽힌다. 한쪽에서는 황금빛의 튀김옷과 떡볶이떡, 나머지 한쪽에서는 갈색의 양념 옷을 입은 닭강정이 거실 형광등의 빛을 받아 윤기를 반짝이며 달착지근한 향기를 뿜는다.
약간의 무거운 질감이 있고 투명한 빛깔은 나지 않으니, 전분만 들어간 튀김옷은 아닐 터이다. 동네 전통시장에서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집만의 기술이겠지.
우선적으로 간이 약한 후라이드부터 먹어보기로 한다. 입술과 치아, 혀의 표면에 막 닿는 질감은 여느 치킨집과 같은 단단한 느낌. 하지만 이 바위는 치아에 으스러지는 동시에 솜사탕 같은 푹신한 튀김옷.
바사사삭
튀김옷을 지나고 나면 그 밑에 숨어있던 덜 익은 반죽과 같은 식감의 튀김옷이 잇몸 위에 질척거리듯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뒤이어 따라오는 닭다리의 쫄깃함 식감과 육즙 가득한 속살. 바삭함과 푹신함, 거기에 탱글거리면서 고소한 닭의 육질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거를 타선이 없이 풍족한 미식이다.
"와, 역시 엄청나다. 닭강정 안 먹고 강릉 돌아갔으면 후회했을 거야."
김고로는 연이어서 하나를 더 집어 따로 주신 소스에 찍어먹는다. 가게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마늘양념소스, 후라이드닭강정 조각을 소스 그릇 바닥까지 푹 담가서 양념옷을 입힌다. 길고 잘게 다져진 마늘 조각들이 튀김옷 위에 걸려 올라온다.
바사사삭
후추와 간장, 설탕의 맛이 확 올라오는 친숙한 맛에 한국인의 사랑이 가득한 마늘도 듬뿍, 살짝 느끼할 수도 있는 닭강정의 기름진 맛을 깔끔하게 잡아주면서 감칠맛과 알싸함이 혀 위에서 폭발한다.
"이 마늘소스도 어마어마하다. 달콤하면서 구미를 확 당겨, 마늘 풍미도 살아있고."
후라이드에 소스를 묻혀 먹으니, 아직 사라지지 않은 뜨거운 열기에 마늘과 설탕이 손을 잡고 코까지 올라오며 후각세포들을 자극한다. 마늘, 설탕에 간장 조합을 어느 한국인이 참을 수 있으랴.
바삭 푹신한 닭강정에 마늘소스가 지나간 김고로의 입안은 침샘 폭포에서 나온 타액들로 이미 축축할 정도로 흥건하다. 편의점에서 사 온 레몬맥주의 산뜻함과 깔끔한 탄산으로 목젖과 식도까지 싹 씻어 내린다.
"캬아! 이 맛이지!"
그리고 김고로는 양념닭강정으로 손을 돌린다. 후라이드의 맛을 충분히 확인했으니 이제 양념닭튀김의 순서다. 후라이드에 찍어 먹는 소스와는 맛이 다르니, 어떤 맛일지 호기심과 함께 젓가락을 움직인다.
양념옷을 입고 금색으로 번쩍거리는 닭강정을 씹는다. 촉촉한 속살과 튀김옷 사이로 응축되어 있던 육즙이 확 튀어나오며 매콤 달콤한 양념과 만나 서로의 강렬함을 중화시키며 고소함과 매콤 달콤 사이의 적절한 합의점을 찾는다.
'닭고기의 쫄깃하고 기름진 맛이 소나기를 뿌리면, 달착지근한 매콤함으로 덮어주는구나. 이 또한 매력적인 파괴력의 조합이다.'
김고로는 자동차 대시보드 위의 머리가 커다란 인형처럼 고개를 계속 끄덕이면서 닭강정을 씹는다. 씹으면 씹을수록 끊임없이 나오는 닭고기와 양념, 튀김옷의 딱딱 맞아떨어지는 삼박자에 흥겨운 미식 콘서트는 지속된다.
'닭강정을 이렇게 맛있게 먹어본 적이 언제일까? 적어도 이렇게 고전적인 닭강정은 요 근래에는 없었는데.'
확실히, 재송한마음시장 통큰닭강정의 닭튀김은 강릉이나 속초에서도 먹어본 일이 없는 종류다, 적어도 김고로에게는 말이다. 대부분이 살짝 두께가 있는 단단한 튀김옷에 바삭함을 강조하고 빈틈없이 강렬한 양념을 추구하고 있기에 가벼운 바삭함과 푹신한 튀김옷은 속초와 강릉에서 거의 볼 일이 없다.
"우리 집 근처에 있었으면 나도 한 달에 서너 번 먹었을 거야."
"그래, 가격도 엄청 착하잖아."
김고로가 강릉에서 제일 좋아하는 닭강정은 중앙시장의 '외계인닭강정'이지만, 통큰닭강정의 스타일과는 많이 다르다. 외계인닭강정의 강점은 바삭한 튀김옷에 매력적인 양념인데 반해, 통큰닭강정은 가볍고 푹신한 튀김옷 자체가 핵심이다.
"다음에 부산 오면 또 먹어야겠어. 한 번만 먹기에는 아쉽다."
"응, 또 먹자."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그렇게 통큰닭강정으로 설날의 두 번째 연휴를 마무리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