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미 사람들은 이렇게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자기들만 먹고, 부럽습니다
부산 중앙동에서 복국으로 맑은 식사를 마친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다음 일정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쁜 그녀는 전날의 일정이 많이 피곤하였는지 집으로 돌아가서 쉬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였기에 숙소로 삼고 있는 김고로의 어머니댁으로 돌아갔고, 김고로는 전날 울산에서 만난 H군이 추천해 준 망미동의 카페로 커피를 한 잔 하러 부산 1호선과 3호선에 몸을 맡겼다.
1호선의 연산역에서 내려 3호선으로 갈아타면 부산 병무청이 있는 망미동으로는 금방 갈 수 있었다. 중앙동에서 망미동까지 가는 시간이 조금 있지만, 그동안에 지하철에서 잠시 책도 읽을 수 있기에 김고로는 부산에서 지하철 타는 시간을 즐긴다.
망미역에서 지상으로 나오니 화창했던 오전의 날씨는 어디 가고 회색의 공기와 하늘이 가득한 찬바람에 울고 가는 기러기가 나올 듯 비가 한 방울씩 투둑투둑 떨어진다. 본격적인 소나기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김고로는 걸음을 빠르게 옮겨 망미동의 고가대로와 컨테이너 사무실 지역들을 건너 아파트 단지 근처의 골목상권으로 들어갔다.
오후 망미동의 하늘빛과 같은 연한 회색빛으로 1층을 꾸미고 2층부터는 붉은 벽돌로 꾸며진 건물들이 즐비한 길을 지나니 그런 건물들 중 하나에 같은 연회색이지만 오돌토돌한 질감의 벽과 아기자기한 창문에 더 아기자기한 장식품, 화분들이 놓인 카페가 있다.
'모티커피 앤 뮤직'이라는 카페의 상호가 붙어있지는 않다, 다만 창가에서 보이는 카페 내부의 바와 테이블, 그리고 브런치 메뉴 홍보 포스터를 보고 '아, 여기 카페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게에 들어가니 정면에 바로 'ㄱ'자가 거꾸로 된 모양의 기다란 검은색 바와 검은색 바의자. 그리고 유리로 된 진열장이 화려한 과일들로 장식된 '베리케이크'를 선보이고 있었다.
H군은 '모티커피 앤 뮤직'을 김고로에게 추천할 때, '모티커피 가면 베리케이크를 꼭 먹어, 거기서는 그걸 먹어야 한다고.'라고 했었다. H군이 의미했던 종류의 베리케이크는 플레인 스펀지케이크로 만들어진 케이크였지만, 김고로가 카페에 갔던 때에는 초콜릿 스펀지케이크로 된 베리케이크가 나와 있어서 김고로는 우선적으로 머릿속에 베리케이크를 주문하겠다고 생각했다.
메뉴판을 보니 세계 3대 유명 원두를 포함하여 김고로가 평소에 볼 수 있었던 원두나 잘 볼 수 없었던 원두를 포함한 다양한 원두들이 있었다.
'하아, 고민되네. 이야... 코나를 언제 또 먹을 수 있을까. 아... 그런데, 여기까지 왔는데 코나를 먹기는 조금 그렇기도 하고... 음...'
그러다가 김고로가 주문한 커피는 컵프로파일 중에 멜론 맛이 난다고 쓰여 있는 커피. '파푸아뉴기니 블루마운틴 오카파 워시드'를 따뜻하게 주문한다. 아일랜드 특유의 리큐르가 섞인 커피들도 하시는지 설탕과 우유거품과 크림과 알코올의 느낌이 나는 메뉴 이름들도 여럿이다. 거기에 더해서 칵테일이나 주류들도 판매하시는지 바에는 커피 종류는 물론이고 술병들도 즐비하다.
김고로는 'ㄱ'자에서 짧은 작대기 부분, 좌석이 단 2개만 허락된 구석에 앉는다. 혼자서 온 손님인데 큰 공간을 차지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고, 바에 계신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과 약간의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바에 있는 자리들 외에는 4인용, 6인용 등의 여러 인원을 고려한 자리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설 연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손님들의 회전이 계속되었고, 그중에서는
"어? 아까 퇴근하고 왜 왔노?"
"가족들이랑 커피 마시러 왔죠."
활달하게 웃는 젊은 여성분이 가족들을 이끌고 커피 한잔 하러 왔다면서 바 내부와 부엌에 있는 사장님 그리고 다른 직원분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음료를 주문한다. 김고로는 그 모습을 보며 평소에 직원들과 사장님의 관계가 상당히 좋겠거니 예상했다, 김고로가 바에서 책을 잠시 읽으며 바 내부와 부엌을 힐끗힐끗 보면서 '모티커피 앤 뮤직'의 분위기를 살펴보니 상당히 화기애애한 느낌이었다.
"커피랑 케이크 드릴게요."
김고로는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덮고 사장님께서 내어주시는 다과상을 받는다. 살짝 열린 하얀 꽃봉오리를 닮은 드립커피잔에 검은 꽃술과 같은 커피를 담고, 하얀 접시 위에 딸기, 블루베리 등 베리류 등이 넉넉하게 크림과 스펀지시트 사이에 담긴 베리케이크.
김고로는 드립커피 향미를 잠시 즐긴다. 산미가 섞인 시트러스의 상큼한 맛이 입안을 덮더니 그 뒤로 달콤한 멜론과 설탕의 단맛이 올라와서 비강의 후각세포들을 적신다. 얼굴 전체를 커피 수증기가 가득한 사우나에 넣고서 덥히는 기분이다. 어느 카페의 어느 원두의 커피를 마시는지에 관계없이, 훌륭한 커피는 컵프로필에 있는 풍미들을 마시는 이에게 온전히 전달하고 생각하는 김고로이기에 모티커피 앤 뮤직에서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김고로는 커피로 한 모금 목을 축인 후에 케이크를 포크로 잘라 한입 먹는다.
우적우적
달콤한 코코아의 맛이 코로 훅 올라오면서 입안에서는 꾸덕한 크림이 먼저 혀 위로 착지하며 유지방이 고소하게 섞인 달달함이 가득 퍼진다. 거기에다가 상큼한 딸기와 라즈베리, 블루베리가 불꽃놀이처럼 터진다. 세 가지의 다른 달달함들이 서로 손을 잡고서 치아 사이에서 널을 뛰니 김고로의 눈이 번쩍 떠진다.
"우와, 이게 뭐람. 이게 뭐라고 이리 맛있나."
김고로는 다시 커피를 호록, 한입 가득 담아 마셔본다. 커피 한잔에 담긴 복합적인 풍미들이 김고로의 멱살을 잡고 당긴다, 조금 더 식어가면서 견과류와 초콜릿의 향기까지 올라오며 커피의 맛이 더욱 진해진다. 그리고 또 케이크 한 입, 김고로는 맨 위에 올려져 있던 큰 딸기부터 씹어 먹는다.
이번에는 체리잼(?)이 잔뜩 섞인 크림층이었는지 다크포레스트 케이크를 먹는 기분이다, 묵직한 초콜릿의 맛에 새콤함이 팍 튀어 오르며 입천장을 치고 지나간다. 예상치 못했던 레몬과 같은 산미에 즐거워진다. 살짝 덩어리가 진 함박눈 크림이 치아 사이로 구르다가 폭삭 무너지며 달콤한 우유맛을 던지고 터트린다. 고소한 유지방과 함께 과일맛이 휘몰아친다.
케이크 한 조각에 응축된 코코아, 우유, 설탕, 과일 등의 진한 맛들이 한꺼번에 터지고 스펀지시트는 스펀지보다 부드럽게 썰리고 씹히는 맛. 이렇게 맛있는 과일크림케이크를 먹어본 적이 언제였더라, 마지막은 알로하케이크(현 강릉 루아흐)에서 먹었던 다크포레스트 케이크였나.
'망미동 사람들은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를 자기들만 먹는 건가, 이렇게 맛있는 카페를 자주 올 수 있는 건가. 부럽네.'
모티커피 앤 뮤직의 음료와 디저트에 감명을 받은 김고로는 사장님께
"커피 맛이 훌륭하고 케이크는 환상적이네요. 정말 맛이 좋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과일케이크는 오랜만이에요."
"감사합니다, 입맛에 맞으셔서 다행이네요. 여기 분이세요?"
"아니요, 강릉에서 왔어요. 이 동네 사는 친구가 추천해 줘서 들렸습니다."
"강릉에서요? 아유, 감사합니다."
사장님은 목례를 살짝 하시며 멀리서 왔다고 하는 김고로에게 감사를 표한다. 김고로도 함께 맞목례를 하며 사장님께 품질 좋은 음료와 디저트를 만들어주심에 경의를 표했다.
커피는 일부러 미지근하게 식었을 때의 풍미와 질감을 느끼고 싶어서 마지막까지 남겨둔 김고로였지만, 베리케이크는 손이 가고 구미가 당기는 충동은 참을 수가 없었다.
'케이크를 이렇게 맛있게 먹었던 때가 언제였지. 이쁜 그녀도 같이 와서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망미동 사는 H군이 이렇게 부러울 수가 없군.'
김고로는 자신의 책과 함께 느긋하게 흐린 부산의 오후를 모티커피 앤 뮤직에서 보내고 저녁식사를 위해 이쁜 그녀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