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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Feb 01. 2022

[픽션] 닭내장탕과 아버지

꿈의 식사

그는 하루 종일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환자였다, 하루 24시간, 1주일 그리고 365일을 내내 그저 누워서 초점이 잡히지 않고 댕글거리며 움직이는 눈을 뜨거나 주변 사람들의 말소리와 라디오의 지지직거리는 대화들을 듣고, 누군가가 자신을 씻기고 돌보기 위해서 뭐라고 말을 걸면 그에 따라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움직이고 기분이 좋거나 재밌으면 자신 외에 주변 사람들은 잘 알아차릴 수 없게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키도 6척이나 될 정도로 훤칠하고 누가 봐도 미남형의 얼굴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주 면도하지 못하여 텁수룩한 수염을 빼면) 왜, 어떤 사연 때문에 그가 여기에서 이렇게 큰 몸을 이끌고 무기력한 옷과 몸짓으로 누워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주변에 함께 눕고 앉아있는 사람들에 비해서 현저히 적은 나이인지라 안타깝다는 의미를 담은 끌끌거림만을 더 얻을 뿐.


내가 그를 돌보며 옆에서 농담을 던지면 슬며시 미소를 짓고, 손과 발을 열어달라고 하면 그것도 슬그머니 열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이 사람이 만약 다른 사람들처럼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그의 인상착의로만 봤을 때는 나는 그와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느 날 아침, 그의 병실과 침대를 방문했을 때는 나의 30년 넘는 인생을 뒤엎을 만한 그러한 일이 일어나 있었다. 그는 침상에서 스스로 일어나 양반다리를 하고서는 간이부엌에서 가져다준 믹스커피 한잔을 호로록 마시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팝송을 들으며 콧소리를 흥얼거렸다. 눈을 감으며 음악을 즐기다 그의 침상 앞에 서서 떡 벌어진 입을 닫지 못하고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나를 향해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을 때에도 나에게 웃어주던 것처럼 빙그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콤마씨 왔어요? 놀랐죠? 내가 '멀쩡히' 있어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침상에서 일어나 그 두툼한 손으로 나의 어깨를 도닥이면서 말을 이어갔다. 나의 반응을 예상했던 모양인지 그의 행동을 놀랍도록 자연스러웠다.


'오늘 새벽에 갑자기 몸에 힘이 돋고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일어나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있어요, 나를 돌봐주던 사람들과 밥 한 끼 하고 싶었거든요. 퇴근 후에 용지각 쪽에 있는 낡은 닭내장탕 집으로 와요. 거기서 봅시다.'


내가 그를 돌보는 시간에 용지각의 어느 닭내장탕 집이 참 맛있다고 중얼거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기억한 것일까. 그가 멀쩡한 것은 둘째치고 그것을 기억하고, 그리고 깨어나서 첫 번째로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이 나였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다.


그날 하루의 조명이 서서히 어둡게 변할 무렵 용지각의 닭내장탕 집으로 들어서니 이미 그날의 노동을 마치고 일급을 받아 전골과 소주를 시키고 왁자지껄 자리를 차지한 거룩한 영혼들 사이로, 그는 평상에 앉아 이미 닭내장탕을 덥히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에 계신 사장님께 우동사리를 추가하고는 그와 마주 보고 앉아 그에게 소주 한잔을 따라주었다.


'콤마 선생도 이 집을 알고 있었다니, 사람 관계라는 것이 이렇게 음식으로 가까울 수도 있죠? 껄껄... 닭이라는 새는 사람에게 이토록 이로운 존재예요. 자신의 살과 뼈, 피를 내주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속을 다 들어내서라도 우리에게 미각의 기쁨을 선사합니다. 아, 방아잎 넣는 것 잊지 마세요.'


상큼하고 톡 쏘는, 입을 독특한 이국의 향으로 감싸는 방아잎을 그가 닭내장탕 속으로 밀어 넣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생각하건대, 처음부터 닭 내장이나 염통을 굽거나 끓여서 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지. 그저 비싼 부위들은 높디높은 양반들이 사 먹거나 뺏어먹거나 해서 없어지고 남은 내장들, 그 냄새나는 부위들을 매콤하고 알싸하게 향 입혀 끓여먹는 식문화가 지금의 내장탕이 되었을 테지? 그의 말처럼 닭은 자신의 속을 희생해서 우리의 속을 따끈하고 매콤하게 채워주는 이로운 조류인 것이다.


내 앞에서, 닭내장탕 너머로 소주 한잔을 가볍게 입속으로 털어 넣으며 그는 웃었다.


'크으... 매콤한 이 맛. 닭 비린내가 설령, 조금 난다고 할지라도 방아잎의 향과 후춧가루가 적당히 입안에서 감돌고요, 닭 내장이 이렇게 쫄깃한지는 먹는 사람들만 아는 것입니다, 낄낄.'


그의 말에 함께 웃으며 맞장구를 치고는 나도 닭 내장과 우동사리를 내 앞접시에 가득 담아 후루룩 흡입한다. 입안에 닭의 냄새가 살며시 퍼지다가도 그 쫄깃한 육질과 매콤한 후추 냄새에 잡아먹힌다. 소나 돼지의 그것들과는 다르게 비교적 연하고 부드러운 맛이 있다, 적어도 질겅거리지는 않는 것이다.


사실, 그가 이렇게 길고 지루하며 잠들 수 없는 꿈속에서 깨어나게 된다면 이런저런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이전에는 무슨 일을 했었고, 가족들은 있었는지, 어떠한 일 때문에 그 큰 몸에 의식이 갇혀있을 수밖에 없게 되어서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는지 등등.... 그에게는 실례가 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무릅쓰고서라도 알고 싶었다, 인간적인 궁금함과 호기심으로.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한 질문들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그와 그저 음식과 신변잡기식의 수다만으로 우리만의 공간과 분위기, 그 시간을 채웠다.


그는 보기보다 쾌활하며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책임감 있고 따뜻한 아버지며 남편이자 아들이었다. 그 무엇보다도 그는 정 많은 '사람'이었다. 미각을 갖고 심장과 혈관이 꿈틀거리며 의식이 살아있는 '사람'.


'콤마씨 오늘 이 시간을 함께 보내주어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서로 잘 알지 못하지만 그저 이 식사 한 끼를 같이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속 깊은 친구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해요. 수십 년 전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이 닭내장탕. 누워 지내면서도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먹을 수 있다니... 기뻐서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저는 이 시간을 눈물로 보내지 않을 겁니다. 당신과 함께 웃으며 보내겠습니다, 식사는 따뜻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는 황소와도 같은 그 큰 눈알에 나는 알지 못할 촉촉한 이슬을 머금고 한 단어, 한 문장 꾹꾹 감정을 눌러 담아 말을 이어나갔다.


'언젠가 나의 가족들이 면회를 온다면 꼭 전해주십시오. 나는 언제나 나의 부모님을, 아내를, 자식들에게 모든 속을 다 내어줄 정도로 사랑하고 고맙게 여기지만 그럴 수 없음이 너무나 미안했다고. 꼭 따뜻한 식사 한 끼 같이 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


'이제 일어납시다, 오늘 계산을 내가 하겠습니다, 하하... 그동안 돌봐준 값입니다. 다음에는 콤마씨가 하세요. 잘 있으십시오.'


그리고 천천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식당의 환경이 가루가 되어서 흩날리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마지막 미소와 함께.


눈을 떠보니 알람은 아침 7시를 가리키며 울고 있었다.


'이게 무슨 실감 나는 개꿈이람'


혼자 중얼거리며 출근해서는, 나도 모르게, 제일 먼저 그가 누워있던 병동과 병실로 발걸음이 향했다. 오늘 아침의 꿈처럼 정말로 그의 침대는 비어있었다, 꿈과 다른 것은 그의 이름이 그 서랍장과 병실 문에서 사라져 있었다는 것.


'여기 누워 계시던 분은 어디 가셨어요?'


'대관령 넘어갔어, 오늘 새벽에.'


'아.....'


모든 것이 명료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나는 알 수 없었다, 그가 나에게만 찾아왔는지 아니면 그의 가족들에게도 다녀갔는지. 마지막 그 말을 전할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터인데, 그랬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가 닭내장탕에 어떠한 추억과 마음이 얽혀있었는지는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떠나가기 전에 꼭 전하고 싶은, 하지만 말할 수 없었던 속 깊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얼마 후, 웃으며 떠난 그가 생각나 들린 용지각의 그 닭내장탕 집에서 나는 무시할 수 없는 소리를 엿들었다.


'아버지가 참 좋아하셨는데.'


'그래, 함께 있었으면 참 좋았겠지'


'좋은 일이 있으면 항상 이곳만 와서 짜증 났는데, 이제는 그 짜증도 낼 수 없어 슬프네요.'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내 눈을 나도 모르게 돌렸을 때, 그 자리에 키가 큰 훤칠한 미남이 희미하게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애꿎은 내 눈만 비비적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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