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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Feb 02. 2022

김치찌개, GOP의 추억

취사병에게 감사를, 병영식당의 인기 짬밥

김치가 한국의 대표음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부정할 한국인은 몇 없을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음식 중에서는 '두유노우?' 클럽에 제일 먼저 가입했을 만큼 역사적으로도 오래되었으며 채소를 오랫동안 보관하며 식량이 적은 시기를 이겨내기 위한 강한 힘과 우리 겨레의 정신력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먹고 살기 그나마 편해진 요즘에 들어서는 김치가 이전만큼 귀한 음식의 대접은 받지 못하지만 적어도 김치를 담그지 않는 가정이나 1,2인 가정에서는 꽤나 귀한 대접을 받는 몸이다.


나와 이쁜 여자가 함께 사는 가정에서는 김치가 그리 인기 있는 음식이 아니라서 1,2포기 정도가 아직도 냉장고의 저장고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가끔씩은 칼칼한 김치를 넣은 김치찌개가 생각나거나 말캉거리는 도토리묵, 고소하고 부드러운 메밀묵을 썰어 넣은 묵사발이 생각날 때는 자고 있던 이 포기들을 깨워서 깨소금과 약간의 설탕, 참기름에 살짝 버무려 고명을 얹고 따뜻하게 우려낸 다시마 육수를 끼얹으면 묵사발 한 그릇이 뚝딱이다.


아주 가-아-끔 김치를 꺼내 먹고 싶은 기분이 들 때면 나는 마트에서 큰 참치캔을 하나 사 오는데 왜냐하면 내가 끓이는 김치찌개는 삼겹살과 김치를 주재료로 한 전통적인 김치찌개가 아니라 참치, 김치, 양파, 고춧가루만을 털어 넣은 고소 하면서 깔끔한 맛이 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요리라는 것이 참, 재료를 많이 넣을수록 맛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너무 적게 넣어도 맵시가 나지 않는 것이라 재료와 맛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야 제맛이 난다.


냄비에 참치 기름을 따라내어 붓고 썰어놓은 양파와 김치, 참치를 냄비에 넣고 볶다가 고춧가루를 두어 스푼 넣어서 매콤하게 볶는다. 거기에 물을 자작하게 붓고서 끓여내면 끝. 김치찌개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김치의 맛이라고 믿기에 가능하면 잘 익은 김치를 사용하는 것이 내 김치찌개다. 좀 더 맛있게 하고 싶다면 참치 대신 삼겹살을, 거기에 어느 요릿집들에서 많이 쓴다는 김치찌개용 양념장을 따로 만들어서 넣고 대파도 추가하고 마늘도 좀 더 추가하고 이것저것 더 넣어서 끓여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여태까지 먹어왔던 우리 집 스타일의 김치찌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은 어릴 적부터 먹어오던 입맛을 따라가기에, 나도 그렇다, 내가 끓이는 김치찌개는 어릴 적 엄마가 부엌에서 자작하게 끓이고 졸여서 만들어내던 칼칼한 참치김치찌개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다. 다만, 나는 적당히 짭짤한 간을 좋아하기에 찌개를 팔팔하게 졸여내지는 않고 적당히 슴슴한 간을 맞추는 식이다.


그러한 김치찌개를 선호하던 나의 입맛과 요리법의 세상에 약간의 충격을 주었던 김치찌개가 있었으니 그것은 어느 유명 레스토랑이나 한식집에서 장인이나 셰프가 끓여낸 김치찌개가 아닌 군대의 어느 에이스 취사병이 끓여낸 칼칼한 돼지김치찌개였다.


같은 군사령부, 군단, 사단, 여단, 연대, 대대들은 기본적으로 매일마다 거의 같은 메뉴를 공유한다. 맨 위에 별들부터 맨 아래 계급인 작대기들까지 다 같은 메뉴를 먹는 것이다 (물론 부대마다, 개인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 가령 바깥에서 외식을 하는 상황이라던가..) 하지만 같은 메뉴라도 취사병들의 기량과 요리실력, 그 짬의 깊이에 따라서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리고 그것은 소수의 인원이 취사를 하게 되는 최전방 GOP와 GP에서는 더 큰 차이가 나는데, 예를 들면 똑같은 닭고기와 재료를 갖고 치킨을 튀긴다고 해도 요리를 전공하거나 실력 있는 취사병이 있는 부대의 치킨은 거의 밖에서 배달시켜 먹는 수준보다 더 맛있는 치킨이 탄생하는 경우도 있다. 같은 재료가 주어지더라도 그 외에 갖고 있는 재료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김치찌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근무했던 곳은 최전방의 본부였는데 다른 초소에 비교하면 조금 더 많은 인원이 근무했고 취사병도 조금 더 많은 수준이었지만 당시에 근무했던 취사병들의 실력이 당시에 급식으로 나온 메뉴들의 맛의 질을 눈에 띄게 향상시켜 놓았다. 공급해야 할 인원들의 수가 많을수록 조리되는 음식의 품질이 하락하는 편이지만 (주로 그렇다,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하여) 요리하는 인원들의 실력이 월등하다면 그 폭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입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최전방 본부에 근무했던 취사병들이 가장 잘했던 메뉴들은 김치찌개, 제육볶음 등 고춧가루, 고추장들이 들어가는 매콤하고 감칠맛이 터지는 메뉴들이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중에서도 김치찌개를 가장 좋아했다. 대충 썰어놓은 것과도 같은 크기의 삼겹살과 김치, 그리고 대파가 주된 재료로 김치찌개를 꾸미고 있었고 시뻘건 양념이 돼지기름에 어울려 건더기들과 함께 찌개의 수면을 물들이는 그러한 찌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찌개 속으로 군용 포크숟가락을 찔러 넣어 한입 뜨면 칼칼한 김치와 고춧가루의 풍미가 혀뿌리와 울대를 따끔하게 지지고 그에 뒤이어 감칠맛, 신맛, 우유맛과 고기의 기름과 풍미가 김치와 뒤섞인 맛이 입안을 가득히 채우던 그 맛. 함께 식사를 하러 갔었던 나이 지긋한 부사관들이나, 젊은 나이의 장교들, 입맛 까다로운 군의관, 어린 병사들 등 나이를 가릴 것 없이 그 김치찌개 한 입에 이렇게 외쳤다.


'크으! 여기 소주 1병!'


갓 나온 찌개가 뜨거워 입속에서 국물을 '호로록'거리면서도 맛있어서 차마 뱉지는 않고 그 칼칼함을 함께 즐기던 시간. 특히나 눈이 3,4미터씩 오던 그 힘든 겨울날에 제설작업을 마치고 와서 먹던 그 김치찌개 맛을 사회에서는 느껴볼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잠깐, 잠깐만이라도 군대를 다시 갈 수 있다면 (그 음식을 먹기 위해서 재입대라거나 재입대, 논산 같은 소리는 꺼내지도 마라,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나는 그 최전방에서 그 취사병들이 조리하던 그 김치찌개를 먹으러 가고 싶다.


내가 당시에 지금보다 더 요리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 취사병 전우에게 당시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의 요리법을 받아왔을 텐데 그때 당시 그러지 않았던 과거의 나는 머저리임이 틀림없다. 물론, 군대이기 때문에 미원이라던가, 다시다라던가, 뉴슈가라던가, 합성조미료 등을 많이 썼을 수도 있고 '어둠의 백종원'등이 사용할만한 요리법으로 음식을 조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뭐 어떤가, 김치찌개가 그렇게 군 시절을 잠깐이라도 좋게 추억할 만큼 맛있다는데 요리법이나 사용하는 재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음식에 관해서는 '맛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시공간에서 아주 약간의 편법을 쓰면 돌아가신 그리운 가족을 잠깐이라도 볼 수 있다는데 그 편법을 안 쓰겠는가? 지금 내가 얘기하는 김치찌개가 그렇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젊음과 피, 땀으로 수고해주시는 모든 군장병분들이 매일 따뜻하고 (가끔은 시원하고) 맛있는 밥을 드시기를 바라고 감사함을 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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