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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Feb 03. 2022

시작, 미식의 추억

나는 왜 미식을 쓰게 되었나

그것은 2020년 봄의 어느 날, 이쁜 여자와 잠시 차를 빌려 속초로 향하던 길 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네? 폐업하셨다고요? 이제 가게 안 해요?"


이쁜 여자는 우리가 좋아하는 속초의 어느 라면 가게가 영업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려고 가게의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이윽고 스마트폰에서 들려오는 사장님의 김 빠진 목소리는 나의 탄식을 자아내었다.


"뭐? 폐업했다고? 아이고..."


강릉에 오기 전, 속초에 머무르던 그때부터 자주 가던 속초중앙시장 입구 골목, 이전에는 락카페였던 곳에 개업을 했었던 일식 라면 집. 그곳은 나의 단골집이었고 나는 그곳의 단골손님이었다. 비 오는 날 아주 우연히 라면을 먹으러 들어갔었던 그 일식 라면집의 돈코츠라면은 돼지국밥의 국물 맛이 났다.


이틀에 한 번꼴로 8시간을 40도가 넘는 뜨겁게 달궈진 부엌에서 큰 양철 솥에 돼지뼈를 우려낸 육수를 고으고 고아서 라면수프를 직접 만드시고, 오겹살로 두툼하게 간장 졸여 입안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 없어지던 비계를 자랑하던 사장님의 시그니쳐 차슈와 따뜻할 때 먹으면 입안에서 육즙이 가득 흘러나오니 너무 맛있어서 모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냉동 'ㄱㅎ만두'라고 오해를 받던 수제 교자. 그 외에 사장님은 누가 먹어도 입이 즐거운 음식들을 손님들에게 제공하셨었다, 그 작은 가게에서.


자주 갈 때에는 1주일에 1번, 드물게 갈 때는 1달에 1번 꼴로 그 집 돈코츠 라면을 먹으러 갔었고 속초에서 알던 주변 사람들도 나의 추천으로 많이 방문했었다. 사장님이 음식을 하시던 부엌 앞에 기다랗게 깔린 바 테이블에 앉아서 후루룩 면을 치다가 요리에 바쁘시던 사장님이 잠시 여유를 가지실 때면 나보다 서너살 더 많으시던 젊은 사장님과 음식과 서로의 인생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강릉에 이사를 오고 나서도 최소 분기에 1번은 나의 이쁜 여자를 데리고 속초까지 그 라면을 먹기 위해 일부러 가서 라면을 먹기도 했다, 나와 함께 미식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안사람도 이 라면집을 퍽 좋아했다.


하지만, 속초 맘카페의 일본 불매운동의 잘못된 표적이 되어 홍역을 치르고,  그 이후로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그 전부터도 이미 '힘들어 죽겠다, 너무 힘들다'라고 하소연하시면서도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가게를 운영하시던 사장님은 결국 가게를 내놓으셨다고 했었다. 그래도 폐업까지는 좀 더 오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나의 단골가게가 사라질 줄이야.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


"아... 너무 슬프다... 어떻게 그렇게 사라질 수가 있나.."


애석함과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운전대를 잡고 속초로 향하던 나의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하자 나의 이쁜 여자는 나를 조심스럽게 위로했다.


"너, 정말 진심이었구나. 그렇게 슬퍼하는 것은 오랜만에 봐."


그렇다, 나는 나의 단골가게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표하는 나의 애도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미식에 대한 나의 마음은, 진심이다, 항상.


그때부터였던 것이다, 내가 미식과 음식점 그리고 그 메뉴들에 대해서 진지한 글을 쓰고 진지한 후기를 길게 작성하기 시작한 것은. 강릉에 와서도 여러 곳의 미식을 접하고 그 집의 미식에 매료되어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더 이상 나의 단골가게가 사라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가게들이 폐업을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가게들이 사라지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막고 싶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유명한 셰프나 저명한 음식평론가나, 막강한 재력과 사업수완을 지닌 요식업자도 아닌데. 나는 그저 일개 손님일 뿐인데.'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나 이외에도 더 많은 손님들이 나의 단골가게를 찾아와 가게가 유지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결론 내렸다. 이전부터 조금씩 끄적이던, 별 주목받지 못하는 글솜씨라도.


사람들은 비대면으로 음식점과 음식을 보고 그곳에 찾아간다, 사진과 영상으로 받아들인 음식의 이미지를 접하고 그 음식의 맛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저거 맛있겠다'라며 설득시킨다. 영상과 사진은 그 작업이 매우 쉽게 이뤄진다, 그저 보여주면 되니까 (다만 영상과 사진 편집 작업은 어렵다, 매우). 나는 그러한 재주는 없기에 나의 글로 음식을 직접 먹는 듯, 그 맛과 식감을 최대한 세세하게 묘사하여 글을 읽으면 쉽게 음식의 맛을 상상할 수 있게 되고 군침이 싹 돌게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며,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나의 모자란 글이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나 자주 나의 소중한 단골 맛집에 더 방문하게 할지는 잘 모르지만,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대부분의 자영업 요식업자분들은 상황이 비슷할 것이라고 본다, 프랜차이즈를 활용하던 개인의 아이템을 활용하던. 본인이 매우 부유한 상황이 아닌 이상 본인이 끌어모을 수 있는 유동자금을 다 끌어모아서... 대출, 퇴직금,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로부터 빌린 돈, 투자, 이전 사업으로부터 남은 돈 등등...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힘들게 돈을 모으고 준비해서 건물을 임대하고 인테리어와 브랜딩, 소품, 주방기구, 홍보, 식재료 등등.... 영혼을 쏟아부어 탄생시킨 소중한 나의 가게. 그 가게를 가능하면 오래도록 지키고 싶으실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가게들을 이용하는 손님으로서 손가락 밑에 낀 때만큼이나 마 마음을 얹고 싶은 것이다, 나에게도 소중한 가게가 되어버린 그곳을 함께 지켜드리고 싶은 것이다.

  

설령 처음에는 규모가 작고 손님들이 적었던 곳이라도, 점점 성장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어 손님들이 바글바글 거릴 정도로 많아져서 정작 내가 사 먹지 못하게 될지라도 괜찮다, 적어도 그 가게가 오래도록 존재하는 한 내가 즐거워하는 그 미식은 사라지지 않고 즐기게 될 것이니까.


그러한 마음이기에, 언젠가부터 어느 밥집에 갔는데 그 집의 요리가 나에게는 '미식'이라면 항상 사장님이 되었든 그 집의 종업원이 되었던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고 칭찬을 건넨다. 자신이 정성을 들여 탄생시킨 가게에서 판매하는 메뉴, 그것이 누군가를 기쁘게 만족시켰다는  사실을 꼭 알려드리고 가게 운영에 대한 힘을 드리고 싶기에. 가게가 오래도록 있게 되는 원동력이 될 테니까. 처음에는 작았던 그 가게가 점점 성장하고 손님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내 일처럼 기쁘다. 나는 전처럼 그 가게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미식을 즐긴다는 것, 그것을 변함없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한다.


가게와 음식에 대해 쓰는 나의 글은 무료 광고다. 글의 출처만 남겨주신다면 내가 쓴 가게와 메뉴에 대한 것을 홍보 목적으로 사용하시는 것을 반갑게 환영한다. 물론, 그러한 글을 쓰는 나만의 주관적이고 엄격한 기준이 있다. 그중 하나는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아주 티끌만큼이라도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면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글이나 악평을 남기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각자의 취향과 주관이 있는 것이니까, 나의 입맛에는 맞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그것으로 인해 즐거워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적어도 공개된 공간에 글로 남기는 일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일기장에 쓰거나 지극히 사적인 대화에서 언급할 수는 있겠지).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에도 해당 가게의  서비스나 상품의 품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느낀다면 굳이 내가 부정적인 글을 남기지 않아도 그 가게는 자연스럽게 시장의 생태에서 도태되고 소리 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지금도 노력과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극복하고 이겨가시는 모든 요식업자분들과 자영업자분들께 나는, 내가 처음 방문한 가게가 매우 만족스러웠을 경우 남겨드리는 극찬으로 글을 마무리하겠다.


사장님, 오래오래 장사하십시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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