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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Mar 26. 2022

[픽션]극락식당

1-10

상걸이 고향의 큰아들로부터 명순의 좋지 않은 병세에 대해 전보를 받은 것은 1달 전이었다. 공장의 남은 잔업을 겨우 마치고 달고 단 저녁 한 끼를 겨우 목구멍에 집어넣고 직장 숙소에 들어오니 작업반장이 그에게 집에서 우편이 왔다고 사무실로 상걸을 끌고 들어갔다.


[아버지, 어머니가 많이 아프세요. 몇 달 전부터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약 먹는 것도 힘들어하셨어요. 어머니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꼭 아버지가 아셔야겠어서요. 동네 의사 선생님이 읍내나 근처 시내의 병원에서도 모를 거라며 서울의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시는데 어머니가 너무 아파하셔서 일어나지도 못하세요. 어머니가 아버지를 많이 찾아요. 일하느라 바쁘실 테지만, 아버지 꼭 내려와 주세요. 아들 준이 올림]


덜컹


상걸의 마음속에서 커다랗고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멍했다, 명순이 큰 병에 걸리다니. 오직 명순과 세 아이들만을 위해서 이렇게 돈을 벌어 살아가고 있는데, 그 목적들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상걸은 쉽게 고향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고향에 다녀오는 데는 꼬박 3일 정도가 걸리는데 그렇게 하려면 일을 그만두고 가야 하는 것이었다. 아내만이 아닌 자녀들의 앞날도 달려있는 이 금전적인 문제가 그의 내면적인 갈등에 불을 붙였다.


'조금만 더 벌자. 몇 주만 더 벌어서 주급을 모아서 내려가자. 그러면 다시 일을 구할 때까지 괜찮을 거야. 고향에 내려가서 다시 농사일로 돈을 벌 때까지 여유자금도 만들어둬야 해.'


자신이 고향집을 도망치듯이 떠나오던 날, 자신을 붙잡던 명순의 일그러지는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상걸은 자신의 약한 마음을 다그치며 마음속의 경보 버튼의 'off'를 강하게 눌렀다.


"이씨, 얼굴이 왜 그래?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집에서 온 편지를 읽으며 검게 굳은 상걸의 표정을 보던 작업반장은 혹여 걱정되는 마음이었다, 이에 상걸은


"아, 아닙니다, 반장님. 집안 식구들이 조금 어렵다고 돈을 더 부쳐달라네요, 하하." 멋쩍게 웃어넘겼다. 아닐 거야, 에이 아닐 거야, 명순이가 아무리 많이 아파도 죽거나 그러지는 않을 거야. 이전처럼 아프다고  하다가 금방 또 나아지겠지. 상걸은 속으로 자기 최면을 걸었다.


"허 싱거운 사람."


그렇게 어두워지는 저녁을 어깨너머로 웃어넘긴 상걸에게 명순의 상태에 대한 마지막 연락이 온 것은 그로부터 멀지 않은 몇 주 후였다. 이번에도 여김 없이 그의 작업반장이 그를 저녁에 호출하여 사무실로 올라갔지만, 상걸이 마주하게 된 것은 고향집 준이로부터의 우편이 아니라 유선전화였다.


"그래, 준아. 잘 있고? 엄마는 이제 좀 괜찮지?"


"흑흑.... 아부지..."


기분 좋은 '네'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상걸은 대답이 아닌 눈물소리가 먼저 들림에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왜, 준아, 무슨 일 있는가?"


"엄니가... 엄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


"뭐... 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들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상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며칠 전에 의사 선생님이 오셨었는데... 엄마가 병이 이미 전부터 많이 심했어서 손 쓸 수 없다고 하셔서... 아부지...."


"마, 인마! 처울지 말고 얘기해라!"


상걸은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화가 났다, 모든 것의 시작은 자신이라는 생각에. 자신을 붙잡던 명순의 얼굴이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그러셨어요...엉엉....아부지, 이제 그만 내려와요! 엄마가 아부지만 계속 찾아요, 돈도 좋지만 엄마가 없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어요!"


"아, 알았다! 내 내려간다!"


"빨리 와요, 아부지! 엉엉.... 엉..!"


통화하던 중 눈물에 목이 매여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아들의 목소리에 상걸의 후회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편지가 왔었을 때 갈걸.... 편지가 왔었을 때 가야 했었는데...'


"작업반장님, 저 아내가...!"


옆에서 상걸과 아들의 통화를 보고 있던 작업반장은 두툼한 가마솥 같은 손으로 그의 등짝을 내리쳤다.


쩌-억!


"악!"


상걸이 그의 욱신거리는 어깨를 움켜쥐며 소리를 내자 작고 단단한 몸을 가진, 거뭇한 피부를 가진 그의 작업반장의 얼굴이 붉어진 채 그를 보고 있었다.


"아이고, 이 사람아! 지금 돈이 문젠가? 일이 문젠가? 그렇게 심각한 일이 있으면 나하고 얘기도 못했는가? 얼른 내려가게! 아내가 죽어가는데 왜 여기 있는 게야! 내가 공장장님이랑 사장님께 잘 말씀드려놓을 테니 걱정 하덜말고!"


멍하니 작업반장을 바라보던 상걸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작업반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가! 얼른 가라고! 나가!"


작업반장이 그에게 소리를 치며 등을 떠밀자, 상걸도 그제야 발을 움직이며 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는 마음에 급하게 작업반장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며 밀려나갔다.


"아, 예! 네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반장님!"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급하게 옷가지와 간단한 짐을 가방에 챙겨서 그는 밖으로 나와 번화가로 빠르게 걸으며 택시를 타고 고향으로 가야만 하는 급박한 일정을 시작했다. 겨우 택시를 하나 잡아탄 상걸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었고 밤에야 고향 근처의 읍내 터미널에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방의 읍내, 자신의 가족들과 이웃들이 살고 있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택시는 보이지 않고 교통수단도 없는 상황. 하지만 상걸은 집으로 가야만 하는 여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마침 달과 별이 밝은 밤, 그는 찬바람을 뚫고 무작정 걸었다. 적어도 이른 새벽에는 집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가지 말아요, 우리와 함께 있어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오기 전 자신을 붙잡기 위해 눈물로 얘기하던 명순의 말이 어두운 밤길을 걸어 나가는 그의 귓가에 끊임없이 맴돌았다. 한시라도 아내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자신의 잘못과 결정으로 인해서 이러한 상황까지 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었다.


자신이 읍내에 내렸던 시간보다 더 어둑해진 밤이 될 무렵 그는 자신이 살던 고향 마을의 입구에 도착했고 컴컴하게 불이 꺼진 집들 가운데 유일하게 방에 불이 켜져 있는, 자신의 집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명순이, 기다려! 조금만 더 버텨줘!'


읍내에서부터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며 지친 그는 마지막으로 빠른 뜀박질을 시작했다. 가까이 갈수록 자신의 세 아이들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것들이 집에서 쇠어 나왔고 그의 두려움과 암울한 예상이 눈앞에서 그대로 펼쳐질까 공포감이 그를 점점 덮쳐왔다.


벌컥!


"명순이! 얘들아!"


집 안으로 들어간 상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이불에 누운 초췌하고 파리해져 눈을 감고 미동이 없는 명순의 모습, 하얀 피부 사이로 마른 얼굴과 손, 팔의 뼈들이 보였다. 그들이 그 주위에 둘러앉아 울고 있는 준, 훈, 연, 그의 세 아이들.


아이들의 곡소리가 넘쳐흘러 방안에 가득 차 울리는 시공간이었지만 상걸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 것 같았다. 상걸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보지 못했다. 아니, 듣고 싶지 않았고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확정적인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명순아! 나여! 나 여기 왔어! 어어!! 눈 좀 떠봐!!"


아직은 온기가 돌고 있는 명순의 몸이었지만 그곳에서 삶의 흔적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눈물이 얼굴을 덮고 자신의 잘못에 대한 회한이 자신의 머릿속을 덮었다. 옆에서는 솜방망이와도 같은 아이들의 손이 자신의 등을 때리며 외치고 있었다.


"아빠 왜 이제 왔어! 엄마가 아빠를 그렇게 찾았는데! 엄마 방금 전에 죽었단 말이야!! 아빠 나빠!! 엉엉!!"


평소에는 장난스럽게 아무리 때려도 아프지 않던 막내딸인 연이의 주먹질이  너무나 아팠다. 아려왔다. 아들인 준이와 훈이는 그저 울고만 있었다, 준이가 눈을 부릅뜬 채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그의 등으로 느껴졌다. 준이는 그래도 맏아들이라고 눈물을 옷소매로 쓱쓱 닦으며 입을 열었다.


"아부지...편지 쓰던 날에 엄마가 쓰러졌어요... 아버지가 그래도 언젠가 내려오겠지 하면서 부엌에서 아버지 좋아하는 열무김치 담그다 갑자기 배를 잡고 쓰러졌어요."


"할 말이 없다, 아부지가....너희들한테 할 말이 입이 열개라도 없어..."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내가 빨리 와달라고 했잖아요, 아버지...."


상걸은 명순의 얼굴과 손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미안해... 미안해, 명순이... 미안해.. 내가 이 말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명순이 눈을 감고, 자신과 자녀들의 마음을 추슬러 장례식을 치른 지 얼마 후에, 상걸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자식들을 돌보며 농사일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반찬을 꺼내기 위해 집 뒤 장독대를 연 상걸은, 안에 고이고이 자신을 기다리며 담겨있던 열무김치를 보며 그 위에 소금 방울을 다시 흘렸다.


명순과 자신이 제일 행복했던 그 시절, 함께 그리고 이웃들과 농사를 지으며 명순의 손맛이 가득 들어간 새참들로 웃으며 끼니를 보내고 하루하루를 지내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고, 명순이 했었던 요리들을 다시는 먹을 수 없었다. 매일 마다 밥상의 즐거움이었던 밑반찬들도 장독대 안에서 고이 잠들어있다 깨어난 이후, 또 다른 밑반찬들이 들어왔지만 이전과 같은 맛을 내지는 못했다.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걸이 자신이 명순의 마지막 길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치자 그들이 앉은 식당의 분위기는 더욱 고요해졌다.


"미안해, 명순이... 내가 너무 늦었어... 내가 나쁜 놈이야... 죽어도 싼 놈이야... 미안해.... 나를 용서해주게..."


".........."


진심의 사죄와 후회, 그리고 그리움이 담긴 그의 말에 명순도 자신의 마음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녀의 맑은 눈에도 작은 유리구슬들이 맺히기 시작했다.

 

"자네의 반찬들... 그리고 여름마다 먹던 열무김치가 그리웠어. 나나 애들도 나이를 먹고 나서 해보려고 했지만 자네가 하던 그 맛은 안 나더라고... 아아, 내 말을 오해하지 말아... 음식 때문에 명순이를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음식들이 명순이를 더 그립게 하더라고...


미안해... 보고 싶었어.... 사랑해, 명순이... 나 죽을 때까지도 자네가 보고 싶고 미안해서 재혼도 안 하고 혼자 애들 셋 다 키워 대학 보내고 결혼시켰어..."


세상에서 제일 진한 정은 미운 정이라고 하던가, 애증도 사랑이라고 하던가. 명순은 그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상걸에게 의자를 당겨 앉고는 그를 꼭 안았다.


"흠..... 실례."


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음성에 잠시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던 상걸과 명순은 화들짝 놀라 서로에게 떨어졌다. 자신들을 만나게 해 준 저승사자가 이전보다는 덜 무서운 눈을 하며, 눈을 비비고 있는 마스터와 함께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열무비빔면은 얼른 드시지 않으면 불어서요... 후후... 그리고 두 분이 가셔야 할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답니다."


사자가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던 디지털시계를 가리켜 보였다. 정확하게 1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을 재회한 커플은 알 수 있었다.


"아, 그,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그래요, 여보, 어서 들어봐요. 그리워하던 그 맛이 나는가."


후루룩.... 후룩.... 아삭...


"맛있어요? 천천히 먹어요, 잘못 체하면 죽.... 아, 이미 죽었구나."


"응.... 맛있어.... 맛있어... 정말 맛있네... 농막에서 먹던 그 새참 맛이야..."


상걸은 입으로는 우물거리며, 눈으로는 다시 눈물을 흘리며 수십 년 만에 다시 맛보는 아내의 요리들을 음미할 수 있었다. 이대로 저승으로 간다고 해도 여한이 없었다.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어요...? 손주는 봤어요?"


상걸은 씹던 열무를 삼키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준이는 자네와 같은 사람이 또 없으면 좋겠다며 열심히 공부해서 내과 의사가 되었어... 훈이는 그 조용하던 놈이 뭐 어디 식품회사에서 영업사원이 되었고... 연이는 간호사가 되었어... 삶에 마지막이 다가오니 준이랑 연이가 나를 자신들이 일하는 병원에 모셨는데..."


"아이들이 당신 가는 길을 배웅해줬나요...?"


상걸은 씁쓸한, 미안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늘에서 정하신 것인지 그 애들이 오기도 전에 내가 사자님을 따라와 버렸네... 나도 당신을 배웅하지 못한 마당에 배웅을 받으면 당신에게 미안하잖나..."


"그런 게 어딨어요, 애들이 들으면 웃겠어."


"허허.... 그런가..."


그 이후로 부부의 다 하지 못한 대화는 그들이 식당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만큼,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길고 또 길었지만 저승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자요, 마스터님. 이거 받아요."


명순은 마스터에게 자신의 글씨가 빼곡하게 담긴 쪽지를 건넸다. 마스터는 눈을 크게 뜨며 미소 지었다.


"어머, 이건...!"


명순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가 생각하는 그것이 많다는 대답이었다.


"네, 맞아요. 제가 특별히 마스터님께만 알려드리는 것이니 우리 바깥양반 말고도 더 많은 분들에게 대접해주세요... 호호.."


마스터의 손바닥 위, 여러 종이쪽지들 맨 윗장에 쓰인 첫 단어는 바로 '열무김치'였다.




[픽션]극락식당 EP1 - 열무김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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