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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Mar 30. 2022

육개장, 삶과 죽음의

육개장을 통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해외에서 유학을 하며 커다란 셰어하우스에서 여러 사람들과 삶을 부대끼며 살았을 무렵이었다, 내가 머물렀었던 나라는 농산, 수산, 낙농, 정육 등의 식자재가 지역 시장에서 대체적으로 1차 공급자들에 의해서 저렴하고 풍부하게 공급되었던 나라였기 때문에 식자재들을 잔뜩 사서 음식을 한솥 만들어 나눠먹었던 그러한 때가 있었다.


돼지 척추를 킬로에 2,3천 원으로 아주 값싸게 팔던 것을 활용하여 집에서 만드는 감자탕에 성공했던 자신감을 발판으로 나는 감자탕에 버금가도록, 한솥 만들어놓으면 오래 묵혀 먹어도 맛있는 한식 중에 하나인 육개장에 도전했었다.


이런저런 고기와 양파, 대파 등은 지역 시장에서 사고 토란대와 숙주 등의 한국적인 재료 등은 시내의 한인 상점에서 공수해서 같이 살던 나이 차 많지 않던 어느 형님과 요리를 해서 먹었었다. 소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어 찢고, 마른 재료들을 물에 불리고, 양념장을 만들고 등등.... 그때만큼 자주 요리를 했던 적은 잘 없었다, 그리고 그때만큼 한식이, 다른 나라의 음식들보다 더더욱, 손이 많이 가는 방식의 음식이라는 것을 깨달은 적이 없었다. 정말 '손맛'이 가득 담겨 정성으로 요리를 하면 '요리법을 잘 따른'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시간이었다.


내가 그렇게 유학 시절에도 육개장을 직접 재료를 공수해 해먹고 싶었던 이유는 어렸을 적 어머니의 야밤 드라이브를 좇아다니며 양평과 팔당댐 부근의 민간 휴게소와 식당에서 언제든지 한 그릇씩 담아내어 팔던 그때 그 육개장의 맛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10, 11살의 작은 체구를 지닌 소년이었는데, 뜨끈하며 매콤하고 찐한 고추기름 국물과 소고기의 조화가 만들어낸 한민족 맛의 매력에 빠진 내가 위에 고명처럼 올려진 커다란 대파와 실타래처럼 듬성듬성 풀어진 달걀을 숟가락 후후 불어대며 후루룩 아삭 건져먹는 모습을 보며 육개장 전문점의 사장님이 놀란 듯, 신기한 듯 쳐다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다, 육개장은 어떻게 끓여 나오든 손이 맛이 가고 정성이 가득 들어간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음식이다, 어린아이가 먹어도 만족스럽게 한 공기의 밥을 말아 후루룩 삼키며 '이거 맛 죽인다'라고 말할 만큼.


여름이 되면 동네의 식육견을 잡아서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만들던 '개장'이라는 음식은 나중에 늙거나 병든 소를 잡아 끓이기도 했기에 오늘날은 소고기로 끓여낸 매운탕이 되었고 그것에는 강국으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위치에서도 나라의 얼과 정체성을 지키고 살아온 조선의 혼이 담겨있다. 그래서 (영화 식객에서) 조선의 마지막 대령숙수는 순종 임금에게 조선 인민의 정신이 담긴 육개장을 진상하였나 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육개장 전문점과 휴게소들을 제외하고, 생동감과 활력과 기력이 담겨있는 우리 전통 한식 육개장을 제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바로 장례식장이다. 애통, 슬픔, 한, 후회, 죽음, 삶의 끝을 기념하는 의식이 응축된 그곳에서 손님들은 상주 혹은 상조회사의 직원들에게 약간은 묽게 끓여진 육개장과 머리 고기, 떡 등을 대접받는다. 이미 이승을 떠난 사람에게는 제사로 드려지는 것이 아닌 이상, 음식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기에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잘 먹으라는 의미일까. 항간에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대접하는 이러저러한 의미와 얘기는 허울 좋은 얘기일 뿐, 육개장은 한번 끓여놓으면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기에는 안성맞춤이고 가성비가 좋은 음식이기에 장례식장에서 자주 보일뿐이다, 머리 고기도 마찬가지인 거고. 그 음식들을 조리하는 데에 투자된 시간과 비용, 노력 등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실적인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뿐.


그렇게 문상객들에게 대접이 되는 주류와 육개장을 보면서, 만약 이미 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그곳에 잠시라도 머물고 있다면 그 장례식의 주인공이 되신 분은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생각해보는 바이다. 그래도 당신을 위한 손님이니, 마지막으로 떠나가는 당신을 위해서 직접 찾아오신 분들을 잘 먹여서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일까, 아니면 자신은 이미 죽었는데 살아서 밥 먹으러 온 손님들을 보며 억울해할까.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들 것 같은가?


위와 같은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새벽 6시에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가 집 앞에서 허망하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어느 분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날, 매콤한 소고기 뭇국처럼 끓여져 나온 장례식장의 육개장과 머리 고기를 곱씹으며 떠오른 생각이었다. 상주와 인사를 하고, 향을 꼽고, 절을 한 후 위로의 말을 건네고는 식당에 앉아 일회용 접시에 담긴 식사를 받아서, 저 한쪽에서 울리는 돌아가신 분의 가족들이 울부짖는 소리에도 불구 육개장은 내 식도로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에. 나는 돌아가신 분과 유족들에게 유감을 표했지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식사를 할 수 있는 나의 마음에 민망함이나 죄송함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나의 이런 모습은 돌아가신 분에게 어떻게 비추어질까? 궁금했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밥이나 싸게 싸게 처먹고 집에 가라고 할 것 같기도 하지만, 만약 나라면, 나는 나의 장례식에 오는 문상객분들이 죽음과 슬픔이라는 분위기에 끓여 나온 뜨겁고 매콤한 육개장을 먹으며 삶에 대한 활력과 새로운 다짐을 하며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내 소원과 한을 다 풀지 못하고 장례식의 영정사진으로밖에 웃지 못하는 그런 초라한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당신들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잖아, 할 수 있는 몸이 있잖아. 뜨겁고 매콤하고 '찐'하게 후회 없이 살아, 밥 먹고 나서 '아, 한 그릇 더 시킬걸 혹은 곱빼기로 시킬걸'후회하는 인생 살지 말고. 가끔 차가운 국밥처럼 밥맛 없는 일도 인생에 있을 수 있겠지만 펄펄 끓어오른 육개장과 뚝배기처럼 오랫동안 뜨겁게 살아.


그 한 그릇을 이마와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땀을 뻘뻘 흘리며 먹고 나서 냉수 한잔 들이켜면 '시워-언하다!'라고 마음 응어리 없이 외치도록 살다가 후회 없이 가, 우리 함께 지내는 동안 참 즐겁고 좋았지? 그 추억과 이 육개장 한 그릇을 연료 삼아서 '잘' 살기를 바라.'


나는 나의 장례식이 있다면, 오는 문상객들에게 말을 해줄 수 있을 거라면,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육개장은 장례식장의 단골 메뉴이지만 살아있는 자들에게 힘과 내일을 위한 희망을 얘기하는 음식이 되어야 한다. '나는 딱히 그렇게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아'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에게라도, 적어도 당신이 오늘 살고 있는 이 시간은 저 영정사진 속의 인간이 어떤 연유로 죽었는지 상관없이, 조금은 더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었거나 더 살고 싶었던 시간이라는 것을 얘기하는 음식, 그런 매콤하고 강렬하고 힘이 나게 하는 음식.


인생에 대해서 절망을 얘기하는 사람에게도 희망을 불어넣는 음식이 육개장이었으면 좋겠다, 망국의 끝을 맞이하는 일국의 왕에게 바친 궁중 요리사와 그에 담긴 백성들의 얼처럼.


조만간 육개장 칼국수나 한 그릇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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